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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Oct 28. 2020

나도 샤넬백 사줘! 애들 둘 낳았잖아.

나 슈퍼우먼 그만할래

한국에 있는 친구는 남편한테 백 선물 받았데.
걔도 나처럼 아들 둘 낳았어.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남자는 샤넬 백을 사는 이유와 내 출산과의 연관관계가 이해가 안 되는 프랑스 남자이다. 저게 지금 무슨 정신으로 하는 얘기인가 싶은가 보다. 오늘 안 마셨고 맨 정신에 하는 소리 맞다. 그러고선 니 아들을 낳은 거 아니고 우리 아들 낳았는데 왜 샤넬 백을 사야 되며 그리고 너네 나라 여자들이 너무 물질만능주의 아니 냔다.

'뭐라고? 너네 나라?'


그다음 가타부타 말이 없다.  

하다못해 '얼마 짜린데?'  '아님 어떤 모델을 원하니?' '생각이라도 해보자.' 뭐 일언반구도 없다. 

순진한 남편이 귀엽긴 한데 가끔 너무 순진만 해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냥 사주지 못할지언정 허언증 있는 남자처럼

'너 사고 싶은 거 다사! 오늘 내가 사주께!'

하며 카드를 내밀어도 내가 안 살 사람란 걸 왜 모르나.




슈퍼우먼처럼 산지 6개월이 다되어간다.

둘째 아들이 벌써 만 5개월이다. 시간이 참 잘 간다. 

밤잠 못 자고도 벌떡벌떡 일어나고 꾸벅꾸벅 졸면서 새벽 수유하고 그리고 고꾸라져 기절하고 또 일어나고.

혹시나 아기 들을까 봐 '힘들다. 죽겠다.'부엌에서 혼자 조용히 뱉었다.

첫아들 학교 갔다 오는 시간에 맞춰서 손수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답시고 밥은 엄마가 해먹여야 된다며 저녁때 뚝딱뚝딱 이것저것 만들어 내놓는다. 그리고도 총싸움이며 칼싸움 상대가 되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둘째는 대충 키우겠다고 해놓고선 그래도 하던 가락이 있어 장난감이며 가제손수건은 뜨거운 물에 뽀독뽀독 씻고 잘 마르게 나란히 널어두었다. 2개월에 알게 된 사두증 때문에 물리치료사와 소아과를 뻔질나게도 돌아다녔다. 접힌 부위(이를테면 목, 그리고 겨드랑이, 무릎 뒷부분)에 피부 습진이 심한 데다 요즘 이가 올라오려는지 침도 좔좔 흘려대는 통에 크림을 온종일 돌아가며 발라야 한다. 이유식 시작하고부터 티셔츠는 기본으로 하루에 3장씩은 쓰니까 이틀에 한번 꼴로 세탁기를 돌리다 보니 거실에는 매일 빨래널이가 나와 있다. 빨래널이가 항상 현관 근처에서 까꿍 하고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안 그래도 좁은 집이 집이 더 좁아 보인다.  


나는 때아닌 글쓰기에 늦재미가 들어 잠을 줄여가며 글을 적었다. 원래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못 자는 게 큰 일은 아닌데 글을 쓰다가 뇌가 가끔 과부하로 인해서 깜빡 거리는 커서 앞에서 한참 멍을 때리고 나서야 '아참. 글을 쓰고 있었지' 할 때가 많다. 

잠을 못 자서 머리는 띵한데 지금 안 적어두면 머릿속 미로에서 영원히 그 문구가 잃어버릴까 봐 메모만 한다는 게 쓰고 쓰다 보면 한 시간 두 시간은 기본으로 훌쩍 넘긴다. 자려고 눈은 감더라도 머릿속에서 계속 적어야 할 말이 빙빙 돈다.


그런데 내가 요즘 번아웃(Burnout)인 거 같다.

단거리를 빠르게 달려도 숨차고 힘든데 장거리를 엄청 빠른 속도로 계속 달린 것 같이 이젠 조금 지친다.

난 나를 잘 볶아댄다. 생겨먹은 성격 자체가 좀 밀어붙여야 희열 같은 걸 느끼는 불도저 같은 면이 있다.

그리고 쉬는 걸 잘 못한다. 사부작.. 사부작.. 내 별명이 '이사부작'일만큼 혼자 뭘 계속해야 된다. 나를 빨래방에 있는 세탁기처럼 덜덜 덜덜 계속 돌려야 이상하리 마치 마음이 편하다. 20대에는 그게 젊은 혈기로, 오기로 다 했는데 이젠 나이가 들었는지 감기 증세가 스멀스멀 오면 이제 멈추어야 되나 보다 하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현명함이 늘었다. 나이가 들긴 했는데 생각만큼 몸이 다 안 따라주는 게 이제 하드웨어가 슬슬 손을 좀 볼 때가 됐나 보다.


슈퍼우먼 이제 그만하련다.

육아에서 퇴직이란 게 안되니까 빨내널이에 널어놓은 옷이며 벌여놓은 설거지 3일 쉰내 날 때까지 내버려 둬 보련다. 매일 어질러진 장난감 각 잡고 치우지 말고 그냥 폭탄 맞은 집처럼 놔도 보련다. 아들도 방학인데 햄버거, 피자 그냥 먹으라고 해야겠다.



나보다 먼저 출산을 한 친구가 남편에게 백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둘째를 출산할 때 한번 빙의해서 생각해보았다. 수박이 항문에서 나온다는 그 고통을,  3톤 트럭이 배 위를 지나가는 것 같다는 그 출산고통에서 샤넬 가방을 내게 안겨준다면 내가 힘이 더 날까 어떨까. 그래도 아마 10%는 더 힘낼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한국에서 친구들 얘기로는, 출산 후에 수고했다고 남편들이 백 선물을 종종 한다고 하더라만은 그런 유행이 프랑스에도 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샤넬 백은 일종에 내게 메타포다.

그런 메타포를 못 알아듣고 남편이 흔쾌히 지갑을 연다면 "오! 득탬인데' 하고 덥석 받기야 하겠지만 지금 내가 번아웃이니 어깨를 토닥여주며 '많이 힘들지. 주말은 푹 쉬어. 내가 애 둘이 책임지고 볼게.'  이런 대답이 더 듣고 싶다. 샤넬 백이라는 뜬금없는 물음에서 '마누라가 많이 힘드네' 이런 답을 찾을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되겠냐만 - 그건 아마 2050년까지 AI가 최첨단으로 발달한다 해도 여자들의 의미심장한 물음은 아마 영원히 못 풀지 싶다.

여하튼 나랑 5년을 살아본 이 남자라면 내가 샤넬백을 들고 다닐 여자도 아닐뿐더러 카드를 주면 '됐어. 넣어둬.' 할 사람인 걸 정녕 모르나 보다.


쉬엄쉬엄 가야겠다.

따끈한 김치찌개에 소주나 한잔 '똿' 마시면 노곤 노곤하니 좋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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