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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Feb 24. 2021

육아 휴직을 끝내고

상사복이 많다 

오지 않을 거 같던 시간이 드디어 왔다. 

길고 긴 육아의 터널 속에서 9개월 동안 어찌 저찌 둘째를 키웠고 이제 제법 두 아이 엄마라는 타이틀이 익숙해져가고 있을 무렵, 내게는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하나의 숙제가 남아 있다. 

육아 휴직을 끝내고 빠릿빠릿한 업무 스킬이며 동시 다발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능숙함이 바로 돌아올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아기 엄마이니까..'라는 직장 상사로부터의 이해를 바란다거나 그리고 나 스스로도 엄마가 아닌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업무를 착실하게 잘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산후 휴직 그리고 육아휴직 통틀어 10개월 동안에 많은 게 변했다. 

간간이 주워들은 얘기로 사업부문이 많이 줄어 일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다고 듣긴 했어도 육아휴직 동안에 나의 업무를 일임해준 분의 얘기만 얼핏 들어도 잔업이 한 200%는 더 는거 같다. 

어쩜 어딜 가도 이렇게 일복이 많은지 참. 

코로나 19로 인해서 직원들 얼굴을 직접 못 본 지도 거의 10개월이 넘었다.  

출근하고서 회사 카페테리아에 삼삼오오 모여 주말 가족들과 보낸 이야기를 나누며 따끈한 커피를 내려마시던 그런 정감 있는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부활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다 같이 모여 도란도란 선물 제비뽑기를 하던 그런 재미도 더 이상 없다. 

실로 많이 아쉽다. 

너무 당연하게 해왔던 모든 것들이 그때가 마지막이란 것을 아니, 한동안 이렇게 다시 마주하지 못할 현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지나가던 말이라도 더 정있게 나누었을 텐데. 

지나간 과거는 늘 되뇔수록 아쉽다. 




나는 직장상사복이 많다. 


독일에서부터 지금까지 도합, 4번째 옮겨서 다니는 회사이지만 함께 일했던 상사분 중에서는 단연 최고다. 

일의 추진력이나 사업을 바라보는 비전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의 온화한 성품은 내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부분이다. (참고로 지금 직장상사분은 외국분임)


처음 입사를 하고 나서 첫째를 보모에게 맡기고서 1주의 적응 훈련 기간을 가졌음에도 아침마다 눈물바람으로 적응을 잘 못하는 첫째를 두고 보모가 한 주만 더 같이 적응 훈련기간을 가져보자고 제안을 했다. 남편이 첫째 주 적응 훈련 기간에 이미 휴가를 다 낸 터라 또 2주째 휴가를 내기가 어렵다고 내게 얘기를 했다. 나는 갗 취직을 한 터라 휴가일수도 없거니와 일을 떠듬떠듬 배우는 중이라 일주일씩이나 휴가를 낸다는 것을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였다. 


마침 점심을 보스와 함께 먹고 보스에게 이 사안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일주일은 바라지도 않지만 단 며칠 만이라도 휴가가 가능할지에 대해서였다. 


그럼 일주일 휴가 내면 되지. 
아직 아기가 어리잖아.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일 때문에 가족을 희생시키지는 마. 
가족이 먼저지.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아기 엄마라고 일을 등한시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밤새도록 엄청난 고민 끝에 어렵게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내 고민에 그분은 너무 심플하게 대답했다. 


난 아직도 기억한다. 

길거리에게 그렇게 내게 대답을 건네었던 그분에게서 난 후광을 보았다. 

그리고 그 말이 너무나 가슴 뜨겁게 고마웠다. 

회사 사무실로 올라와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울어서 두 눈이 팬더처럼 마스카라가 범벅이 된 것을 보고 쪽팔려서 다시 한번 눈물이 났다. 이씨...


아이 엄마라서, 

아이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일찍 데리러 가야 돼서, 

.......

일에 한해서 이 "아이 엄마"라는 이유만큼은 읊고 싶지 않았다. 

백번 일을 잘해왔어도 이런 이유로 갑작스럽게 업무를 못하고 가게 되면 그 낙인이, 주변의 시선이, 또한 내가 느끼는 일의 프로의식이 한 번에 와해되는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배가 아파서 - 그렇게 핑계를 댔으면 그랬지 내 입으로 "아이 때문에..."라는 말을 하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분은 되려, 앞으로라도 아기 때문에 급박하게 가야 되면 언제든 가도 된다고 덧붙였다. 

 

'에이씨, 언제까지 일할 지 몰랐는데 여기 내 살과 뼈를 묻어야겠네.' 

그분은 그게 의도였던지는 몰라도 그게 계획된 의도였다면 나를 잘 구워삶으신 거다. 

그 일 하나로 나는 평생 충성을 맹세하였으므로. 


다시 복귀를 하게 되면 

갑작스레 아이 때문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회사에 통보를 할 일이 생기면

에라 모르겠다, 이젠 그냥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강심장이 생겼다. 

난 두 아이들의 엄마이니까. 

그러면서도 일을 하고 있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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