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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Feb 13. 2021

프랑스에는 설날이 없다

떡국 대란

구정을 맞아 떡국을 끓여보리라 마음을 먹고 국물을 우려내려고 사골뼈를 샀다. 

원래같으면 멸치 다시마 우린 물이나 일반 고기에 담백하게 끒여도 될것을, 요 며칠 내가 몸상태가 안좋다보니 몸보신도 할겸 뽀얀 사골 국물에 떡국이 좋을 거 같아 특별히 정육점에 들러 장만해두었다.


오후에 첫째가 돌아오면 저녁에 온가족이 함께 먹을 떡국을 떠올리며 아침부터 사골고기 핏물을 빼두느라 부엌에서 분주했다. 계란이 없어서 지단을 못부치긴 한데 잔파에 다른 고명을 올려도 다 같이 함께 먹으면 맛이 더 날거 같다.

오늘 저녁은 떡국 먹을거야.
국물 준비해두고 있으니까 저녁에 함께 먹자.


얼마전 아기를 출산한 친구 집에 아기 옷을 가져다주고 얼굴도 볼겸해서 재택근무하는 남편이 홀로 점심 식사를 하게 된게 못내 미안했다.

아줌마 수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다가 둘째를 찾아야 할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집으로 자전거를 몰고 도착했다.


가기전에 핏물제거를 한다고 담가두었던 고기를 펄펄 끓는 물에 삶아서 불순물 제거를 한 다음 찬물에 한번 찰랑찰랑 씻어두고 큰 냄비를 꺼내어 본격적으로 국물을 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고기가 좋은지 금방 뽀얀 국물이 쫙 올라온다.

뼈에 붙은 고기도 듬성듬성 잘라 쌈장이든 참기름장에 찍어먹으면 기가 막힐거 같다.

국물을 많이 우려내서 국물이 남으면 냉동고에 차곡차곡 채워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반찬 거리가 없을 때 소면이라도 씻어서 후루룩 말아먹어도 그만일 거 같다. 

하아. 마음이 벌써 든든하다. 


이미 집에 도착했어야 할 첫아들은 오늘부로 2주 겨울방학을 맞아 아빠와 함께 공원에서 더 뛰어놀고 오는 모양이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파리 및 근교 지역 사람들이 점차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첫아들 반 친구 2명도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그 중 한명이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여서 아들 마음이 쓸쓸할텐데 추운 날씨에도 둘이 얼싸안고 마지막으로 둘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밖이 꽤나 추웠는지 들어오는 아들 뱜과 코가 빨갛다. 


오늘 저녁 메뉴는...
햄버거에 감자 튀김을 먹자.
방학 첫날이니까 맥도날드 버거, 오케이?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남편이 운을 띄우자 햄버거라면 환장하는 아들이 그새 좋다며 맞장구를 친다. 내가 떡국 끓여두려고 재료를 다 준비했다며 다음에 시키라고 눈치를 주었지만 이미 '오늘 저녁 햄버거'를 들은 아들은 메뉴 바꾸기에 심드렁한 눈치다.


"너는 한국 설날하고 우리는 아메리카 설날!"


이미 기분이 상할때로 상했는데 불난데 기름을 붓고 계신다 아주.


단촐하게 끓인 1인분 떡국이 영 설날같지가 않다.

한국이였으면 각종 나물에 고기 산적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따끈한 떡국을 함께 먹었을 것인데 여기에 내 가족이라고 있는 사람은 앞에서 열심히 우적우적 햄버거를 드신다.  

설날은 나 혼자인것만 같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떡국은 내일 또 먹어도 되지" 남편이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못내 한마디 한다. 

내일 너님이나 많이 (쳐)드세요 그럼.  


떡국 하나 때문에 그 동안 한 3개월치 쌓아두었던 것을 내가 저녁상 앞에서 또 읊기 시작했다. 반은 한국인인데 프랑스에서 태어나 너무 프랑스 스럽게(?) 자라는 아들이 못내 아쉽고 섭섭한데 남편이란 사람이 이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도와주기는 커녕 지네는 아메리카 설날이란다. 

진정 미칠 노릇이다.




프랑스에서는 '설'의 개념이 음력으로 새는 새해라는 뜻도 있지만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중국 새해' 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새해를 맞아 이런 저런 한국과자며 이런 저런 물품을 챙겨서 둘째를 봐주시는 보모와 옆집에도 갖다주니 '한국에서도 중국 새해처럼 음력을 새니?' 이렇게 얘기한다. 


얼마전 학교에서 '중국 새해'를 배워온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니하오',' 씨에씨에' 를 왼다. 

그리고 젓가락을 사용하며 중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품이라 한다. 

'너는 반은 내 핏줄인데, 어쩜 이렇게 가끔 낯서니.' 


내년에는 아예 부엌에 하루 종일 들어앉아 전을 부치던지 고기 산적을 굽던지 해야겠다. 

설사아니 또 '나혼자 명절'일지라도 그렇게 몇시간씩 음식을 해놓으면 미안해서라도 한두개 같이 먹겠지. 

아니면 온가족이 한국을 가서 내년 설을 함께 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때까지 코로나가 끝났으면. 

'나홀로 명절' 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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