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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Feb 05. 2021

해질녘 노을처럼

부모님도 나이가 든다.

내가 스무 살이 되고 어느 정도 철이란 게 들었을 때, 엄마는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었다.

어림잡아 계산해 보았을 때 내가 어린 나이에 사고를 쳐서 임신을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적정한 나이가 되어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삼대가 오손도손 여행을 함께 할 일은 우리 부모님이 70이 다 되어서야 가능하리란 것을 그때 알았다.


내를 좀 더 일찍 낳지 그랬노?
엄마가 내를 서른이 넘어 낳았으면 그땐 쫌 늦은 거 아이가?


그렇게 철이 들었을 때 시간이 내 생각처럼 천천히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인생에서 안정을 잡고 나서 부모님께 제대로 된 효도를 한다고 할 때는 부모님이 그때까지 진득하니 기다려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되게 바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는 것도 없는데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내가 외국에서 산다고 결심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말린 것은 우리 오빠였다.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하면 혼자 그 감당을 하기가 어려워서 그러나? 지금 두 분 다 건강하게 잘 계신데 왜 그런 고민을 지금부터 할까? 그땐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때 스무 살의 나에게 이렇게 지금처럼 마흔이란 것이 찾아오리란 것을, 우리 부모님이 70이 넘은 나이가 된다라고는 상상 자체를 못했다.


독일에서 만난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오랜 외국 생활 이후에 60이 넘으셨을 때는 남은 여생은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고들 말씀하셨다.

'이렇게 한번 나오기도 힘든 곳에 언어도 모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몇십 년 어렵사리 사시다가 이제 누려야 될 나이가 되면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실까?'

그땐 잘 이해가 안 갔다.

마흔을 문턱에 앞둔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가 간다.


비행기 12시간 그리고 KTX 3시간 - 정오 넘어 파리에서 비행기가 출발하면 17시간 꼬박 뒤에 저녁 늦게서야 부산에 도착할 수 있다. 20대야 거뜬한 마음으로, 건강한 몸 하나로 그렇게 잘도 비행기를 타고 다녔지만 이젠 그 긴 여정이 조금 지친다. 선뜻 '한국을 간다' 이런 마음이 잘 안 선다.

일본 중국도 아닌 이렇게 먼 곳에 살게 되니 늘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많다. 한국에 있었다면 매해 생신이면 밥도 함께 먹고 손자 얼굴도 더 자주 보여드리고 할 터인데 아무리 기계나 영상통화가 발달한다 해도 몸 가까이 살 맞대고 옆에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단 몇 개월이라도 길게는 2년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이들의 한국어 습득 문제도 그렇지만 부모님께서 더 나이가 들시기 전에 더 많은 추억 쌓기를 더 해두고 싶다. 언제가 야 현실 가능할까?




"나는 노을이 지는 게 너무 싫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 해는 지면 다시 뜨지만 인생은 가면 다시 안 오잖아"

2017년 <윤식당>이란 프로에서 윤여정씨는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이렇게 얘기했다. 나이가 70이 넘은 그 배우에게 노을의 의미란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것.

이 오묘한 양가적 감정을 나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붉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 마음이 한없이 풍성하게 행복할 것만 같지는 않다. 왠지 마음 언저리에 슬픔이 왈칵 나올 거 같다. 그 슬픔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사람은 찰나를 살고 그래서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것이다.

지나가는 시간은 영원한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지금의 순간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내게 육아로 사투를 보내는 그 시간은, 그리고 아이가 커가면서 변화는 그 모습은 그때만이 간직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가끔 한국을 가서 보는 부모님의 얼굴에선 주름이 하나 든 이마가 보인다.

슬프지만 그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누워있던 아기가 걷고 말을 하고 -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면 우리 부모님께도 그만큼의 세월이 동등하게 흘러갔을 터. 우리 아이에게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우리 부모님께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든다.


지금 내가 두 아들을 서른 중반에 낳았는데 나중에 그 아이들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면 나는 70시 훨씬 넘은 나이가 되겠지. 그때 내 이마에도 내 눈가에도 세월의 흔적이 지나가 있겠지.

그때 즈음에 노을을 바라본다면 말없이 그냥 울 거 같다.

당연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흘러가는 시간은 그저 속절없이 흐르는 것.

우리는 순간을 살고 그 잠깐의 행복에 머무르다 떠나는 것이라는 걸

그땐 체감할 때가 오겠지.  


한국 갈 채비를 해야 될 거 같다.

원 없이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들어야겠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계셔주세요, 엄마 & 아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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