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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Aug 13. 2020

출산, 그 영광의 자국들 - 잠잠이 출산기

브이백 (VBAC) 성공기

2020년 5월, 첫째 출산을 한 지 3여 년이 지나고 잠잠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모든 출산을 앞둔 산모들이 그렇듯 나도 출산 전 자연분만 후기를 부지런히 찾아보았다. 맘스 카페, 네이버 출산 후기며 그리고 유튜브 브이로그 등  "출산 그리고 둘라의 생생한 이야기" 등이 주요 검색어였다. 어떻게든 이번만큼은 꼭 자연분만을 해보고 싶었다. 고집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자로서 겪어볼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에 대한 일종의 갈망이긴 했다. 

튼튼이를 제왕 절개로 낳은 케이스라 둘째 출산은 자연분만으로 시도할 경우 거의 초산이나 다름없으므로 그 긴장도는 배가 됐다. 흔히 그런 사례를 브이백(VBAC : Vaginal birth after cesarean)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제왕 절개로 출산을 한 산모가 이후 질식 분만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병원 담당의사가 브이백을 하게 될 경우 이미 복부에 절개했던 부위 조직이 약하므로 출산 시에 자궁 파열의 위험도가 다소 있다고 알려주었다. 7개월 이후 매달 진료 때마다 정말 브이백을 시도할 생각인지 나의 의사를 확인하면서, 은근히 쉽게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지 않냐는 투였다. 둘째를 출산한 곳은 12구에 위치한 트루소 (Trousseau) 라는 병원인데 출산 시에 위급 응급 제왕이나 기타 수술도 가능한 곳이라 그런 병원에서 조차 브이백으로 출산을 하겠다는 나를 시험하는 것이 다소 의아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내가 무리를 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이 됐다.  

둘째 때 역시 임신 당뇨 판정을 받은 상태라 여전히 그 리스크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임신 당뇨가 되면 일단 출산에 있어서 아기의 몸집이 다른 일반 산모의 아기에 비해 커질 수 있고 그것은 자칫 자연분만으로 시도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이다. 튼튼이 때에도 잠잠이때도 그래서 식이요법은 물론 운동을 매일 했다. 하루 기본 100분은 걷고 런지 그리고 스쿼트도 매일 2세트씩 했다. 그래서인지 두 임신 모두 막달까지 통틀어 10kg 이내로 몸무게가 늘었다.


 


9개월 진료 때 나의 담당의사가 자리에 없어서 마침 대타로 다른 선생님이 나의 막달 진료를 봐주었다. 지금까지 담당의가 (제왕절개를) 권했던 것과는 달랐다.


" 산모만 준비되어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한 줄기 희망과 같은 그분의 말씀.... 

무엇보다 출산에 있어 산모의 강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지만 주변에서 듣는 의료진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초심이 흔들릴 수 있다. 그것은 경험에서 우러난 일종의 팩트이기도 하니까..  막달 전 초음파에서 잠잠이 몸무게가 3.8kg는 될 거라 예상하였기 때문에 자연분만을 하게 되다면 그 날은 고생은 꽤나 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날짜를 잡고 수술을 해야 하나 반반이던 나의 결심에 그분이 그렇게 한 말씀해주신 것은 꺼저가던 장작에 작은 불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또 하나의 복병이 있다. 난데없는 코로나로 출산도 병원에 혼자 가서 해야 할 판이다. 코로나가 유럽에 상륙한 이래로 나는 초음파이며 병원 진료도 남편 없이 혼자 가야 했다. 출산 직전까지도 출산 시에 남편이 함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가 확실치 않았다. 파리 내에 건너 아는 분은 4월에 제왕 절개로 출산을 하였는데 남편 없이 홀로 출산을 하고도 (코로나로) 병원 인력이 모자라 이틀 만에 퇴원 조치를 했단다. 허걱......

찹찹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왜 늘 내 인생은 도전과 같은가.



다행히 5월 11일 격리 조치가 해제되고 출산 때 만큼은 남편이 곁에 있을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병원에 있는 동안은 남편만 면회가 가능하다고 병원에서 이야기해주었다. 13일 새벽 1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첫째를 유도 분만을 했던 터라 병원에 가는 것도 다 사전에 계획이 되었던 거라면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첫째를 맡기려면 시부모님께 미리 전화를 드려야 하고 오시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병원 출발하기 2시간 전에는 전화를 드려야 했다. 생리통처럼 살살 아픈 진통은 7분 간격이었다. 새벽 3시, 어차피 애뭉하게 2센티 정도 열였을 때 가면 병원에 잡혀 유도를 또 하자고 옥시토신을 투여할 게 뻔하다. 더 기다려야 한다...

새벽 4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새벽에 시어머님께 남편이 전화를 드리고 새벽 5시에 자는 아들을 깨워서 병원에 다 함께 갔다. 배속에 아기가 나올 거라고 누누이 말해뒀던 터라 첫째는 병원 가야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잠결에도 "아기 나오는 거야?" 했단다. 


"이 산모 4센티예요!" 


병원에서 이미 꽤 진행이 된 걸 보고 지체하지 않고 분만실로 안내해 주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데굴데굴 굴러서 병원에 오긴 했어도 오늘 안으로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시어머니께 첫째를 인계하고 한 시간 반쯤 지나서 다시 나타났다. 무통 주사 바늘을 꽂고서 예전의 기억처럼 차가운 약발이 몸을 통과한다. 첫째 때와 다르게 양말도 두둑한 걸로 챙겨 입고 나는 이제 힘을 줄 때 잘 만 주면 되는 거다. 무통 주사는 내게는 그저 감통이 되는 정도였다. 약이 잘 안 통하는 몸인가 보다. 첫째 때에도 안 듣더니만 -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단다.

무통 버튼을 매번 누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무통빨이 막판까지 가면 힘을 줘야 할 때 막상 힘이 안 들어갈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감각을 살려두는 것이 나을 거 같았다. 아기가 자리를 잘 잡았다고는 하는데 이상하게도 아기 심장 박동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쥐팜이 들어와서는 진행이 빨리 되고 있지만 아기 심장 박동수가 떨어진다는 것은 오래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일러줬다. 그 날따라 새벽에 도착한 산모들이 많아서 의사 얼굴을 보기도 전에 사쥐팜이 자기와 함께 힘을 줘 보잖다. 네??  

진통이 줄어드는 그 시간은 최대한 힘을 빼고 다음 진통에서 온 힘을 다해 아기를 밀어내야 했다. 무통 주사의 기운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감이 안 왔다. 남편에게 힘을 줄 때 열을 세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힘주기를 한 시간 정도 했을까, 사쥐팜은 아기 심박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30분 더 해보고 안되면 수술을 할지 결정을 해야 될 거 같단다. 

두둥...... 이런 

첫째 때처럼 자궁문을 다 열어놓고 다시 차가운 수술대로 가는 것은 끔찍하기도 하지만 다시 한번 더 배에 칼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30분, 사활을 걸어야 된다. 

그러기를 한 다섯 번 더 힘을 줬나? 수술대로 가야 되는구나 머리가 복잡하던 중에 사쥐팜이 힘을 빼란다. 엥? 


따뜻하고 빨간 두부 같은 것이 가슴 위에 턱 얹어졌다. 빼에 빼에 우는 것은 10개월을 기다린 우리 아기다. 무게를 달아보지 않았지만 감으로 3킬로가 안될 거 같았다. 고놈 손톱은 길어서 가슴팍을 긁어대는 게 꽤나 아프다. 

어떤 돌팔이가 3.8킬로라고 했나. 잠잠이는 무게를 달아보니 2.8킬로였다. 내가 그 초음파 돌팔이 의사 말만 믿고 제왕절개 날짜를 잡아서 출산을 했더라면 천추의 한이 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수고했다 아가야. 그리고 고맙다, 나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줘서...


후속 조치를 하고 이런저런 사항을 전해 들었다. 약을 처방할 것이고 병실은 어떻게 이동을 할 것이며.... 블라블라 말이 많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해석해서 다 듣고 이해하기에 내 머리는 지금 과부하다. 

'들리는 것은 프랑스어요. 나는 잠시 귀를 닫아둡니다.. 남편님이 알아서 들으세요.'

기쁘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에 감사했다. 무사히 잘 끝나기도 했고 아기와 나 둘 다 모두 건강하다. 무엇이 더 필요하랴.. 병실에 도착해서 자그만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난 이렇게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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