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가 빨간 사람. 피부색과 대비될 정도로 코가 유독 빨개서 나와 가까운 사람도 가깝지 않은 사람도 모두들 나를 루돌프라고 부른다. 어쩌면 이름보다도 더 많이 불린 별명. 불린 횟수로만 치면 본명에 더 가까운 별명. 어떤 이는 루돌프가 너무 길다며 루돌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는 루돌프 세글자를 모두 발음해 불렀다. 때로는 루, 라거나 프,라거나, 어쨌든 어떤 식으로 불리든 누군가 루돌프,라고 한다면 나는 응, 대답하는 사람. 부른 쪽을 돌아보게 되는 사람. 루돌프를 닮은 사람.
사실 루돌프와 닮은 건 빨간 코뿐이다. 뿔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잘 달리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빨간 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루돌프이고 그렇기에 나는 루돌프가 되었다. 별명은 직관적이니까, 보자마자 연상되는 거니까, 누구나 나를 보면 루돌프를 떠올리기 마련이니까.
언제부터 코가 빨갰나. 막 태어났을 무렵의 사진을 보면 얼굴이며 몸이며 온통 발그레서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마도 양 볼도 입술도 발그레. 손바닥과 발끝도, 어깨와 팔꿈치와 무릎도 온통 발그레.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발그레한 아이. 아니, 어쩌면 이때부터 코가 빨갰지만 발그레함에 감추고 있던 아이. 조금 자랐을 때 사진을 보면 희미하나마 코가 약간 빨간 것처럼 보이긴 한다. 마치 감기기운이 있어 코를 킁, 풀고 휴지로 세게 닦아낸 것 같은 정도. 잠깐 동안의 붉기 정도. 그러나 감기는 떨어져도 붉기는 도통 떨어지질 않아서 나는 다 자라서 코가 빨간 사람이 되었다.
사춘기 때 몇 번은 빨간 코를 숨길 수 있을까 해서 미백 선크림을 덧대어 바른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선크림은 지워지고 다시, 두 번, 세 번 덧발라도 세수를 하면 또 다시. 나는 얼굴의 다른 부분과 동일한 양의 선크림을 바르기로 했다. 포기.
사실 나는 내 코가 빨간 게 좋았다. 누구든 나를 만나면 쉽게 기억하니까. 아, 그 코가 빨간, 아니 루돌프를 닮은 사람, 하고. 빨간 코가 아니었다면 나는 너무 희미한 사람이었을지도. 특징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한 번을 만나도 두 번을 만나도 도통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을지도.
그러나 그건 없는 가정. 나의 코가 빨갛다는 건 사실. 코가 빨개서 누구나 나를 잘 기억한다는 것 또한 사실.
내가 꼭 해보고 싶은 것.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25일에 아무도 없는 눈 쌓인 새벽 거리를 달려보는 것. 나는 잘 달리지 못하지만 루돌프처럼, 집집마다 잠든 사람의 머리맡에 따뜻한 선물을 내어주기 위해 달리는 것처럼 그렇게 뛰어보는 것. 찬 기운에 코가 빨개진 건지, 루돌프라서 코가 빨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건 나만 아는 비밀. 나에게만 주는 선물 같은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