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촌철살인을 하기로 유명한 학부 교수님의 수업을 줄곧 따라 들은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말이 있었다. 바로 오소리 굴로 파고들지 말고 나오라는 이야기였는데, 수줍음이 많거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답답할 정도로 행동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고 아마도 더 용기 내보라는 독려였음이 틀림없다. 학생들을 좋아하는 교수님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자주 오소리 굴에 들어가는 땅굴파였다. 오소리는 나무나 바위틈, 굴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는데 오소리와 동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걸 보니 교수님이 영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항상 나를 자책하게 만드는 나의 약점이자 내가 줄곧 땅굴에 숨는 것은 바로 내가 회피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난 모든 것에서 도망친다. 남들이 욕하곤 하는 잠수 타는 인간이 바로 나다. 대부분 문제를 이런 식으로 회피하면 일이 불거지고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남에게도 나에게도 결코 좋은 결과를 초래하진 않는다.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조금 어린 시절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할지 몰라 도망쳤다. 그런데 도망치고 난 다음에는 비겁하다는 낙인이 찍혔고 나는 고립되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회피한 건 내가 더 비겁한 짓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그나마 용기 낸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 뒤에도 도망쳐야만 하는 상황이 여럿 있었다. 이상하게도 도망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 되풀이되곤 했다.
지금은 그 어린 나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계속 되뇌고 다독여 주기도 하지만, 어떤 과거의 자리는 반복해서 돌아가게 된다. 자주 꿈을 꾼다. 그리고 거기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자유로워진다. 낙하하는 아찔한 부유감을 느끼며 꿈에서 깨어난다.
그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확신하진 않지만 내가 최초로 경험한 강렬한 회피의 기억이었다. 성격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내가 어쩌지 못하는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면 나는 오소리처럼 굴속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병적일 정도로 문제를 외면하곤 하는데, 회피형 인간은 회피할수록 본인이 괴로워진다. 진창에 처박혀 숨을 쉬는 게 괴롭고, 나를 학대하다시피 비난한다. 혹시 나만 그럴까? 모르겠다. 이런 얘기는 나누어본 적이 없으니까.
얼마 전에도 일을 해야 하는데 잠수를 타고 말았다. 아득히 마음 깊은 곳으로 잠겨갔다. 아래로. 아래로.
심해로 잠수하는 다이버의 이야기를 그린 뤽 베송의 <그랑블루>라는 영화가 있다. 나는 예전에 그 영화를 보고 저건 회피형 인간의 이야기야, 라고 생각했다. 그 영화의 주인공도 나도 자주 물밑에서 올라오지 않고 싶어지니까. 바닷속에 매료된 사람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꽤 오랫동안 맴돌았다.
난 물속에서 물 밖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믿기지 않겠지만 바닷속에 있는 오소리입니다
만약 이 글이 어둡게 느껴지고 비판하고 싶어진다면 그 심정을 이해합니다. 당신은 지극히 건강하게 살아가시는지도 몰라요. 이 글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앞으로 난데없는 이야기들을 해볼까 한다. 물속을 헤엄치는 이상한 오소리가 되어서.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