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해가 갈수록 주변에 사주를 보는 사람이 늘어간다. 나도 힐끔힐끔 기웃대다가 올해의 운세를 보기도 하고, 호기심은 점성술에 자리를 넘보며 과학은 잠시 비켜달라 외친다. 타로를 보고, 올해의 운세로 1년 계획을 점검해본다.
희한한 일이지. 점점 많은 사람이 대안 종교 칵테일*을 마신다는 게.
(*대안 종교 칵테일 : 독일 작가 올리버 예게스가 한 표현. 그는 우리 세대가 여러 종교를 섞어 자신만의 종교를 ‘배합’하고 있다고 한다. 예게스에 따르면 우리는 ‘혼돈과 밀림 속 21세기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마음의 평화를 안겨줄 약물’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출처: 도우리,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한겨레출판, 2022.)
MBTI라는 과학도 유행이었지만 만만찮게 사주도 MBTI처럼 우리 일상에 파고들어 있었다. 내 주변에는 사주풀이를 즐겨하다가 공부까지 해서 꽤 멋지게 사주풀이를 해주는 언니가 있다. 어떤 날 우리는 다닥다닥 방에 모여서 서로의 사주를 그 언니에게 내밀고 ‘내 운명도 해석해줘!’ 앞다투어 나의 운명을 점쳐주기를, 나라는 사람을 해석해주기를 바랐다.
‘그거 진짜 맞아!’
‘헐. 완전 내 성격임. 맞아맞아.’
감탄사와 웃음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우리의 운명을 인질 삼아 묘하고 즐거운 순간을 만들었다. 나는 아주 심오한 풀이를 받았다. 내 사주에 의하면 아주 굳건한 고집이 있어서 절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완전 충격. 정반대로 알고 살아왔는데!
팔랑귀에다 갈대처럼 흔들려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면 누워버리는 사람에게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옹고집이 버티고 있다니. 말도 안 돼!
하지만 팔랑귀의 속성을 발휘해서 내 안에서 콘크리트 바닥같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나의 영역을 발견하면서 나는 수긍하고 말았다. (바넘 효과를 잊지는 말자.)
‘그래. 나한텐 그런 면도 있지.’
실은 언니가 사주를 풀이하는 방식이 꽤 멋졌다. 어디까지나 과학적 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신비주의 같은 사주가 통계학의 정점이 아닐까? 하며 MBTI와 다를 바 없다는 언니의 주장을 듣고 나니 정말 그럴듯한데. MBTI도 과학은 아니니까, 싶었다.
언니는 덧붙여 운명을 해석하는 건 시대마다 달라진다고 말해줬다.
‘예전에 여자 사주에 이게 있으면 이혼하거나 바람피우거나 그런 거였대. 지금은 해석을 다르게 하지만.’
언니는 그 외에도 내 약점까지 운명이라는 조미료를 쳐서 멋지게 내 성격을 풀이해줬다. 감동하기까지 했을 정도니 그 자리에 있던 우리가 ‘당장 사주 카페 열자!’ 장난 삼아 성원을 보낸 건 일종의 복채였음이 틀림없다.
사실 난 이 대안 종교 칵테일이 꽤 맘에 든다. 나에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성향이나 운명을 점쳐보는 건 꽤 멋진 미래에 대한 상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극악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저주에 가까운 종말 예언론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를테면 올해의 운세에 대박의 기운이라도 있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뭐지? 무엇으로 난 대박 날 수 있을까?’ 금전운이 있다면 ‘나는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운세가 그렇듯이 복은 준비되지 않은 자를 차갑게 외면한다. (잠깐만. 잠깐 기다려!)
그래도 난 나만의 대안 종교 칵테일을 배합해서 멋진 운명을 만들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모든 멋진 운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나는 나를 보통 망망대해에 떠 있는 부표라고 캐해석을 했었다. 그런데 슬그머니 부표를 각진 회색 콘크리트로 재질을 바꿔본다. 늘 흔들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고집이 있다니. 상처받고 오래 방황해도 끝까지 꿈을 잊지는 않을 건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슬몃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