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철학의 망치를 들고 상식을 깨부수어 나가는 일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것은 그렇게 살아왔던 나의 과거에 대한 부정이며 많은 반대자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투쟁해나가는 일이고 반드시 깨부수어진 자리에 새로이 무언가를 세워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니 한마디로 피곤한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할 바에 그냥 관성대로 사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도 인간이란, 뭐랄까. 자신의 외부로부터 주어진 상식을 부수고픈 충동에 계속 시달린다. 그 모든 피곤함을 품은 채로 기어코 해내야겠다는 생각들이 자주 우리 곁을 맴돈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꺼이 그런 충동의 방향대로 '상식'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깨부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과학자의 삶을 따라가면서, 혼돈 속에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인간의 고결함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지는 다양한 폭력들을, 전문가들의 분석과 연구들로 이루어진 상식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는지를.
전문가들이 악독한 마음을 품은 채로 대중을 속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일에 최선을 다한 것뿐이다. 혼돈 가득한 세상에, 알 수 없는 것들이 투성이인 이 세계를 근사적으로라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조금은 무디고 투박하더라도 전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작업들 말이다.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필요한 일이다. 더 세상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고 더 나은 이해로 나아가게 하니까.
그러나 그것은 곧 버려야만 하는 것이 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없게 막으니까. 더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가리고 뭉뜽그려진 세상 안에 갇혀있게 하니까.
물고기도 그런 은유이지 않을까. 인류의 관점에서 범주화된 것들. 서로 경계를 나누고 비슷해 보이는 것들끼리 묶여있는 그런 세상. 질서정연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야만 하는 그런 삶.
그러나 진짜 세상,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리쬐는 햇빛과 두발이 맞닿아 있는 이 땅, 바람 소리와 구름들, 비, 새, 달, 별과 풀들은 그곳이 어디든 그 자리에 있고 나도 그저 함께 살아있을 뿐이다. 도대체 과연 목적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을 이루면 행복해지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 이 땅에서 살아있다는 것뿐, 그러니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도래시키는 일뿐이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겪었더라도 내일은 정말 모른다. 같은 회사와 학교, 집을 오간다 하더라도 내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은 쉽게 휘발된다. 그것은 나의 착각일 뿐, 현실이 되지 못하니까. 그렇게 알 수 없는 미래 자체가 긍정적인 생각이 되어버린다. 한치 알 수없다는 것의 의미는 곧 호기심이 되고 좋든 싫든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나의 세계는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들을 하나둘씩 더 느껴보며 편안한 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