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젊은 날의 초상 - 이문열]
음울했던 지난날들을 기억한다. 그때에는 많이도 외로웠고 속절없이 밀어 부쳐지는 삶의 권태에 괴로워했다. 그래봤자야 3,4년 전에 일이지만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일기장을 들쳐보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나 힘들게 하였는지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무슨 영화나 드라마처럼 커다란 사건 따위는 없었다. 막연하게 미래에 대해 불안해했고 나 자신에 대한 모습이 자신 없었으며 당시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리라. 그중에서 크리티컬했던 경험은 군대와 사랑의 상실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너무 많이 짊어졌던 짐들의 탓 이리. 그때에 나는 너무 어려서 남이 맡기지도 않는 짐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회가 욕망하는 것들을 같이 욕망했으며,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에 애써 끼워 맞추려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관계와 나 자신, 내가 무얼 할 필요도 없이 이미 견고하게 건설되어 있던 인간 사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일상의 순간들이 서서히 나를 옥죄어오고 아프게 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이 나의 우울을 촉발시켰지만 더 세세히 나열하지는 않으리라. 어쨌든 이런 우울들의 탈출구로써 문학을 탐독하고 글로 배출했다. 그리고 여기에 와있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그런 음울한 일상을 살아가던 와중에 역시나 어두운 기분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서는 큰 충격을 받았던 책 중의 하나이다. 그 당시에 나는 나 혼자만 삶의 진실을 꿰뚫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다른 이들은 모두 멋모르고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며 그런 자신에게 심취해 있었는데, 이 책의 화자는 나와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1960~1970년대쯤에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나보다 먼저 음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동질감과 괜스레 느껴지는 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리라. 어떻게 알았겠는가. 50년 전의 도플갱어를 만날 수 있을지를.
물론 소설 속 화자만큼 격정적인 선택과 삶의 체험을 겪지는 않았다. 학교와 집, 알바를 오가며 정신적인 고뇌에 시달렸을 뿐.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으리라. 피부로 살아보려 하지 않은 것. 몸은 가만히 있는 채 세상에 대해 알은체하며 미리 낙담한 것. 극복이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3년 만에 다시 펼쳐보았다. 왜인지 그때의 내가 생각이 나서.
당시에는 나를 고양시켰던 문장들과 메시지가 이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그것들은 지금의 내가 보기엔 너무 감상적이고 눈앞의 현실과 너무 멀리 있는 것들, 그러니까 피부가 아닌 정신의 세계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필연적으로 삶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느끼는 삶이란 피부였던 것인가.
몸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 그것만이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킨다.
그러나 이를 안다고 해서 요즘의 삶에 고뇌와 방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자주 권태로워 하고 우울에 빠지며 이리저리 방황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점은 이제는 정말 몸을 활용한다는 것. 다리를 이용하여 이곳저곳으로 떠나고 달리며 손으로는 글을 쓰고 몸 전체에 감각기관들을 활짝 열어 세상을 느껴본다. 과감히 익숙한 장소와 시간들을 떨쳐내기도 하며 새로운 곳으로 모험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성숙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정말로 전보다 더 나아갔다.
그런 뿌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이제는 멀어져 버린 젊은 날이여.
그렇게 쓰고도 아직 많이 남아있는 젊음이여. 피여. 뼈와 살이여.
어느샌가 사라진 그 어둠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하며.
그렇게 도달한 오늘은 간절히 바라던 것이며 좋은 날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