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갈림길에 선 순간 이미 고통의 길에 들어서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by 이건우



애써 감추고 잊으려 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그것들은 모두 나의 일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모른 체하던 것들을 떠올린다. 펄롱이 수녀원에서 마주한 일들. 모두가 알지만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무시하던 것들.

그러나 그런 일상들이 과연 지킬만한 것들은 아님을 우리는 매일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어째서 변화하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힘들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다른 날들을 꿈꾸며 오늘 하루를 단지 견디어내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삶을 그리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도, 막상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그리도 망설이게 되는 것일까?

부정적 힘이 가득하던 지속된 권태는 이럴 때 힘을 발휘한다. 매일 나를 좀먹던 그것이 나를 구원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삶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날들을 거쳐 깨달은 인간에게 무엇이 더 무서우랴. 그렇게 몰락은 예정된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삶의 진정한 기쁨과 함께 있다. 그것이 그 자신까지 무너뜨린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스스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체성의 감각은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것이다.

펄롱은 이런 마음들로 아이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나도 이런 마음들로 살아내오지 않았나.

만약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부터 어느 쪽을 택하든 고통은 발생할 것이다.

감금된 아이를 보고도 모른 체하며 평소의 일상을 과연 건강히 살아갈 수 있을까?

아이를 구출해낸다면, 그다음은? 이전에 자신이 믿었던 것들, 쌓아온 노력들과 작별하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으로, 심지어 더 거대해진 경제적, 심리적 부담들을 짊어지고 살아내는 일은 과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선택의 순간’부터 그의 몰락은 예정된다. 무언가 바꾸어 나가야만 한다는 예감이 그를 괴롭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을 전혀 겪지 않고 살아온 결대로, 관습대로, 관성을 타고 흐르기만 하는 삶을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신이 자신의 삶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죽으니 못한 삶이지 않은가.

선택의 순간에 도달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의 과거에게 그리고 미래에게.

그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삶의 기쁨을 발견했다. 분명하게 누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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