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화해하기

<책리뷰> 면도날 - 서머싯 몸

by 이건우


행복은 무엇일까? 소설을 끝까지 읽고 책을 덮고 자연스레 떠오른 질문이다.

행복감은 세상을 사랑하게 된 그 순간 찾아온다. 다시 말해, 나와 세상의 화해로부터 온다.

자 그러면 어째서 이런 질문과 답을 내렸는지, 소설에서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래리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중산층 청년으로써,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훌륭한 비행기 조종 실력을 인정받은 앞길이 창창한 사내이다. 그런데 돌연 사회로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취직하지 않고 프랑스로 떠나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세상에 순응하지 못하고 굳이 다른 길을 개척하려고만 하는 걸까?

사실 이런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명쾌한 이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처럼.


소설 속에서는 래리가 전쟁 중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사실이 크리티컬하게 작용했다고 설명되지만, 죽음을 지켜본 모든 군인이 래리처럼 살아가지 않듯 한 개인의 삶을 풀어 설명해 내기란 우주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물리학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의 유전적 발현, 살아온 환경, 가족과 지인의 영향 등 많은 이유들을 갖다 붙일 수야 있겠으나, 그라는 존재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제3자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이와 같이 그의 행적에 혼란을 느낀다면, 래리 본인 자체는 어떠하겠는가? 그가 겪는 혼란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거대할 것이다. 지금껏 믿어왔던 것과 작별하고 정확히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저 멀리 떠나려 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불안하게 할 테니까.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한 채 그는 여전히 이해되지 못한 마음을 따른다. 과연 그의 고통을 누가 감히 상상해낼 수 있으랴.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은, 그는 이따금씩 괴로움과 고통을 느낄지라도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믿음과 일치되는 생활방식은 그를 힘들게 하더라도 그의 행복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빼놓고 잘만 굴러가던 세상, 도저히 자신과 일치될 수 없는 가치들이 칭송받고 그에 발맞추어 나아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믿어지던 세상, 떠밀려 끌려가기만 하던 세상은 그를 쉽게 낙담시켰다. 그리고 그가 세상과 맞지 않다는 느낌 자체가 그를 불행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삶임에도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흐르지 못함에 갑갑해하며 숨쉬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은 이제 그와 작별했다. 그는 이제 다른 세상과 함께이다.


우주선이나, 이세계 포탈, 죽음 없이도 그는 다른 세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세상은 그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영감이 되고 이해하고 싶은 욕구였으며,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과 화해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난과 역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세상, 세상을 보고 느끼는 감각이 변하였다.



이렇게 사람은 행복해진다. 영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순간들을 위해 살아오고 살아가지 않을까.


32487632774.20250703071450.jpg



래리 외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이 많다. 그들은 나름의 믿음대로 살아가고 그로 인해 행복감을 느낀다.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이사벨처럼 재물을 탐해도, 엘리엇처럼 권력과 명성에 집착하더라도, 소피처럼 말초적인 감각을 욕망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 그들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저주하지 않겠다. 그 나름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하겠다.


진정 믿는 대로 사는 것이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른 이들도 이런 식으로 나를 보고 있지 않았던가.


모두의 행복을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갈림길에 선 순간 이미 고통의 길에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