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가 현대인들에게 주는 지혜와 교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보면,
세이렌 세 자매가 등장한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자들을
세이렌의 노래로 홀려서
암초 지대로 배를 몰게 만드는
바다 악마들 혹은 바다 귀신들이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도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래를 들으면 그걸로 끝이다.
배에 탄 사람들이 노래에 홀린 사이
배는 암초지대로 가게 되고,
암초에 부딪힌 배는 침몰하고,
승선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한 마디로 걸리면 인생 끝난다.
어떻게 해야 세이렌이 출몰하는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오디세우스는 이 질문의 답을 멋지게 찾아낸다.
먼저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에게
자신을 배의 돗대에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묶으라고 지시한다.
만약 자신이 움직이려고 하면,
더 세게 묶으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완전히 봉인하여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않게 한다.
이런 조치를 취한 오디세우스의 배가 항해를 시작했다.
때마침 세이렌들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효과가 없다.
왜냐고? 왜긴 왜겠는가?
선원들의 귀가 꽉 막혀 있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니 그렇지.
선원들은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돗대에 꽁꽁 묶여 있던 오디세우스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부둥을 치고,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선원들은 이미 받은 지시가 있기에
그를 더 꽁꽁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다.
바로 이 방법으로 오디세우스와 그와 함께한 선원들은
세이렌이 출몰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넌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
현대 사회에 얼마나 많은 세이렌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세이렌들에 대응하여
오디세우스처럼 행동해야 하는 일이 또 얼마나 많은지를 보게 된다.
생각해보시라.
현대인들은 수많은 세이렌(사이렌)들에 둘러쌓여 있다.
수많은 유혹거리가 소리로, 진동으로, 불빛으로 전달된다.
문자가 왔다고 울려대고,
새로운 콘텐츠가 등록되었다고 울려대고,
이메일이 왔다고 울려대고,
좋아요가 눌러졌다고 울려대고,
누군가 친구를 신청했다고 울려대고,
재밌는 것을 추천해주겠다면서 울려대고,
단체 채팅방에 누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고 울려댄다.
새로운 영상이 계속 나오고,
새로운 웹툰이 계속 나온다.
새로운 게임이 계속 나오고,
새로운 드라마가 계속 나온다.
하나의 자극이 끝나면, 또 다른 자극이 나오고,
그것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자극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세이렌이다.
현대인들은 죽음의 암초지대로 계속 몰고 가는 유혹 말이다.
전자기기에서 울려 퍼지는
세이렌의 노래를 쫓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이 사고력을 잃고,
창의력을 잃고, 표현력을 잃고,
문해력을 잃고, 건강을 잃고,
돈을 잃고 있다.
전자기기에서 울려 퍼지는
세이렌의 노래에 홀린 현대인들이
우울증을 얻고, 불안증을 얻고,
공황장애를 얻고, 감정조절 장애를 얻고,
성격 장애를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이
세이렌을 피하기 위해 썼던 방법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오디세우스의 명령을 받은 선원들이
자신들의 귀를 밀랍으로 봉해 버린 것처럼
현대사회의
수많은 유혹 거리가 보이지 않게, 들리지 않게,
느껴지지 않게 봉인해버리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구독을 취소하고, 알림을 취소하고,
게임을 지우고, 어플을 지우고,
자동 로그인을 모두 취소하고
(늘 아이디어 비번을 입력해서 들어가게 만들어 놓고),
자동 결제나 간편 결제를 모두 취소하고
(결제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고),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오고,
나의 검색 정보나 인터넷 접속 정보를 수시로 지우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 가지 의문은
오디세우스 자신도 귀를 밀랍으로 봉하면 되는데,
왜 굳이 돗대에 자신을 묶으라고 한 후,
세이렌의 노래에 노출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의문은 아주 쉽게 풀린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을 이 세상에서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세이렌이라는 악마를 이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서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도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세이렌의 노래는 너무 강력한 유혹이라
듣기 시작하면 그 유혹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노래를 듣지만,
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 몸을 돗대에 꽁꽁 묶어 달라고 한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도
암초에 빠지지 않고, 바다를 무사히 항해하자,
세이렌들은 자신들의 존재 규칙에 따라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바로 이 부분에도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다.
오디세우스처럼 유혹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세이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바다를 지날 때마다
귀를 밀납으로 봉인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더 확실한 해결책은 세이렌을 이 세상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울리지 않게 방해금지 모드로 해놓는 것은
선원들의 귀를 밀납으로 봉인한 임시방편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는
스마트폰을 완전히 다른 공간에 두는 것이다.
꺼서 가방에 두거나, 사물함에 넣어두거나,
스마트폰 금고에 넣어 일정 시간 후에 열리게 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이런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아무 것도 깔리지 않은 학습용 스마트기기를 장만하고,
알뜰폰 혹은 2g폰을 사용하여
전화통화나 문자 메시지를 하는 것도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도서관에 가거나,
스터디 카페에 갈 때 스마트폰을 가져 가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술을 끊고 싶다면,
술을 먹는데 쓸 돈을
적금으로 빠져나가게 하여
자신이 쓸 수 있는
현금 자체를 줄여야 근본적 해결책이다.
술 자체를 사지 말고,
술 자리에 가지 않고,
술을 연상시키는(안주) 것을 사거나 먹지 않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술을 연상시키거나,
술을 먹자고 하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담배도 같은 방법을 써야 끊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마시멜로 실험도 제대로 보면,
오디세우스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유혹에 굴복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마시멜로 실험에서 마시멜로를 눈으로 빤히 보면서
오래 시간을 참은 어린 아이는 사실상 없다.
마시멜로라는
거대한 세이렌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은 아이들은
뒤를 돌아보거나,
눈을 감거나,
옆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양 손을 엉덩이로 깔고 앉은 후, 하늘을 쳐다보거나,
눈을 감고
마시멜로를 손으로 쓰담쓰담하면서
자기가 키우는 반려견이라고 상상하는 방법을 썼다.
귀를 밀랍으로 막은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처럼 말이다.
더 대단한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의자 밑에 두어서
보이지 않게 치워버리는 방법을 썼다.
마시멜로를 먹지 말라고 했지,
이런 방법을 쓰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니,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정당한 방법이다.
이건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을 이 세상에
제거하기 위해 썼던 방법과 비슷하다.
마시멜로라는 것이 거대한 유혹이라는 것을 알고,
보다 근본적으로
인내심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시멜로 테스트는 인내심이
강한 아이가 성공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 아니다.
오디세우스처럼
지혜롭게 유혹에 대응하고,
유혹 자체를 이 세상에서 제거하는 아이들이
성공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 마시멜로 테스트다.
수많은 세이렌들이 도사리고 있는
현대사회지만,
오디세우스에게 교훈을 얻은
수많은 현대인들이
세이렌의 유혹을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표지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