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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ug 25. 2021

무엇을 가리켜 행복이라 할 것인가?

재미로서의 행복(쾌락주의)과 의미로서의 행복(유다이모니아)

행복이 뭘까?


이런 질문의 답을 가장 빨리 찾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나라의 사전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놀라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행복(幸福)

1. (명사) 복된 좋은 운수

2. (명사)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동양문화 혹은 한자문화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한국 문화에서 행복이라고 할 때, 첫 번째 뜻은 '행운'이다. Good luck 이게 행복인 것이다. 약간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줄이 그렇게 긴지. 왜 장기적 투자가 아닌, 단기적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그렇게 많은지, 노력해야 하는 어려운 길보다 쉬운 길과 편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왜 여전히 많은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름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이다. 행운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행복 말이다.


행복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나 같은 심리학자들이 행복이라고 할 때의 개념은 사전의 두 번째 개념과 가깝다. 생활에서 만족과 기쁨을 경험하는 상태가 바로 행복이다. 그러나 이런 행복도 행복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만족과 기쁨이라는 쾌락주의적(Hedonic) 행복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이런 쾌락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의미'를 경험하는(Eudaimonic) 것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기에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 결과 얻는 성취를 통해 의미와 보람을 경험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재미(pleasure)와 의미(meaning), 과학자들은 행복을 이야기할 때 이 두 가지를 함께 다룬다. 물론 재미를 더 강조하는 연구도 있고, 의미를 더 강조하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사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염두에 두고 특정한 것에 더 집중하는 연구를 할 뿐이다. 사실 재미와 의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재미있는 일을 하다 보면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재미가 있다.


한 가지 덧붙이지만, 영미 문화권의 사람들이 행복(happiness)라고 할 때는 쾌락주의적 행복, 즉 재미(즐거움)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로서의 행복을 이야기할 때는 유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을 사용한다. 유다이모니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한 행복의 개념으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실현하는 사람이 얻게 되는 궁극적 행복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관철시키고, 자기 일생의 과업을 완수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삶에서 얻게 되는 행복, 즉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에서 오는 행복을 유다이모니아라고 부른다.


그럼 영미 문화권 사람들이 재미와 의미를 통합해서 부르는 말은 무엇이냐고? 그것이 소위 말하는 웰빙(well-being)이다. '잘 사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웰빙 안에 의미와 재미가 통합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은 행복과 웰빙을 같은 말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영미 문화권에서는 웰빙이 더 상위 개념이고, 행복은 웰빙 중에서 쾌락주의적 요소를 뜻하는 말로 한정하여 쓰는 것이다.


출처: Good childhood report 2020 (p.10)


이러한 구분은 행복을 과학적으로 측정할 때도 그대로 반영된다. 먼저 쾌락적 행복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쾌락적 행복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정서적 행복(감정적 행복)과 인지적 행복으로 구분된다. 정서적 행복은 순간순간의 경험에서 긍정적 정서를 경험했는지, 아니면 부정적 정서를 경험했는지를 말한다. 어떤 경험이 나를 미소 짓게 하고, 웃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긍정 정서(Positive affect)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경험이 나를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만들고, 짜증 나게 했다면 그건 부정 정서(Negative affect)라 할 수 있다.


인지적 행복은 감정적 행복과는 다르다. 인지적 행복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기억,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며, 이러한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정서적 행복이 단기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인지적 행복은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성격을 가진다. 어제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정서적 행복이지만, 최근 1년 간 내 삶을 좋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는 인지적 행복이다.


매년 3-4월에 발간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는 쾌락주의적 행복 중에서도 인지적 행복만 다루고 있는 것이며, 정서적 행복과 의미로서의 행복은 충분히 다루고 있지 못하다. 물론 인지적 행복을 설명해주는 요소로 자율적인 삶, 사회적 지지(사회적 관계)를 다루면서 의미로서의 행복을 언급하긴 하지만, 그 중심에는 인지적 행복이 자리 잡고 있다.


의미적 행복에는 크게 여섯 가지 세부 요소가 들어간다. 첫 번째는 자기 수용(self-acceptance)이다. 자기 수용이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단점과 약점, 자신의 실수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다. 핑계 대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그런 점까지 기꺼이 수용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수용하는 것과 자포자기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약한 점까지 수용한다는 것은 사실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다, 더 발전하려는 의지를 발휘한다는 뜻이지, 자포자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두 번째는 환경 장악력(environmental mastery)다. 하루하루 보내면서 내 삶을 얼마나 통제한다고 느끼는지, 내가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느끼는지, 나에게 능력과 자원이 충분하다고 느끼는지와 관련된다. 쉽게 말해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말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환경 장악력을 허세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허세는 환경 장악력과 완전히 다르다. 말로만 떠드는 것이 허세라면, 환경 장악력은 진짜로 해내는 것이다. 허세는 생산성이 없지만, 환경을 장악한 사람은 생산성이 있다.


세 번째는 긍정적 관계(positive relationship)이다. 긍정적 관계는 곤경에 처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의미한다. 또한 긍정적 관계는 소속감을 의미한다. 내가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느끼는 것은 인간을 잘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네 번째는 자율성(autonomy)이다. 시간 활용이 자유로웠는지, 공간 활용이 자유로웠는지, 행동 선택이 자유로웠는지 등을 말한다.


다섯 번째는 삶의 목적(purpose in life)이다. 나의 정체성을 꾸준히 심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 꾸준히 진행하는 나의 개인적 과업이 있는지, 삶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일에 몰입하고 있는지, 삶의 목표가 세부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나의 습관들은 삶의 목적을 구현하는데 유익한지 등의 개념을 포함한다.


여섯 번째는 개인적 성장(personal growth)이다. 개인적 성장은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웠는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발전했는지, 어제보다 나아진 기술이 있는지, 어제 실수했던 것을 오늘은 하지 않았는지, 작년보다 올해 더 나아졌는지를 말한다.


어떤가? 행복은 재미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의미 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의미도 있어야 웰빙이다. 순간순간의 경험도 좋아야겠지만, 삶에 대한 전반적 평가도 좋아야 하고, 의미도 있어야 한다.


행복은 재미와 의미가 균형을 이룬 조화로운 삶이다.


*참고문헌

Helliwell, J., Layard, R., & Sachs, J. (2019). World happiness report 2019. New York: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OECD. (2013). OECD guidelines on measuring subjective well-being. OECD publishing.


The Children’s Society. (2018). The Good Childhood Report 2018. London, UK: The Children’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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