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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ug 11. 2021

개인의 역량과 삶의 질

역량 = 내적(개인적) 역량 × 외적(환경적) 역량

인간의 역량!

한 사람의 역량!

역량 있는 사람!


우리는 이런 말을 종종 사용한다. 뭔가 좋은 말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막상 '역량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어볼 경우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글을 읽고 읽는 여러분은 역량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표준국어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역량(力量):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사전적 정의만으로 역량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긴 어렵다. 이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역량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역량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살펴보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삶의 질을 측정해왔던 세계적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Nov. 3, 1933~)도 그런 연구자 중 하나다.


센은 역량을 "성취할 수 있는 기능(functionings)의 선택 가능한 조합"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뽑자면, '선택 가능한 조합'이다. 센이 볼 때, 역량이란 누군가 뭔가를 하고 싶을 때, 또는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을 때, 그것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이 주변에 있어야 하며, 다양한 요소들 중에 일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면 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센이 볼 때, 한 사람이 뭔가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고유한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사람의 능력과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환경이 적절한 방식으로 조합되어야 뭔가 이룰 수 있는 것이지, 개인의 고유 능력만으로 뭔가 성취하기는 무척 힘들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는 메달리스트들을 생각해보라. 그 한 사람의 메달리스트가 진정 그 사람 고유의 역량만으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다. 부모, 코치진, 요리사, 의료진, 스폰서, 훈련장을 만들어주는 사람, 훈련장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주는 시스템 등등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이런 것이 역량이다. 다시 말하지만, 역량은 개인의 고유 역량(내적 역량)과 환경적 역량(외적 역량)의 적절한 조합이다. 이런 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결합역량이라 부른다.


자. 여기서 문제를 내도록 하겠다. 이처럼 역량은 결합역량이고, 개인의 내적 능력 혹은 개인의 노력과 환경적 지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럼 역량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개인의 내적 역량 혹은 고유 능력을 향상시키고, 잠재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즉 자기 자신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맞다. 바로 환경적 지원이다. 노력하고 있는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환경적 지원, 외적 지원이다.



한 가지 문제를 더 내도록 하겠다. 그럼 이렇게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데 필요한 개인적 노력과 환경적 지원(외적 지원)이 적절한 상태인지 부적절한 상태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심리적 요인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정답은? 그렇다. 바로 이것이 '삶의 질'이다! 우리가 그동안 삶의 질이라고 부르던 것의 실체는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필요한 개인적 노력과 환경적 지원이 충분한지 아닌지'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왜 발전경제학자들이 일인당 국민소득을 통해 개인의 삶의 질을 추론하려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편차를 고려하지 않은 평균일 뿐이고, 고른 분배와 관계없이 일인당 국민소득은 높아질 수 있다는 약점을 너무 늦게 깨달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삶의 질 문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전혀 불필요하거나, 잘못했던 것은 아니다.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잠재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환경적 지원을 '일인당 국민소득'으로만 측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대표성이 떨어진다. 그 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소득을 가진 사람에게도(혹은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그 사람 고유의 지식과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고, 더 나은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며,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전염병이나 각종 질병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글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센이 『인간개발보고서』에 기대수명, 교육, 남녀평등이라는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사실 더 많은 부분이 환경적 요소로 작용하지만, 최소한 건강해야 하고, 교육을 받아야 하며, 남녀 차별이 없어야 인간 고유의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기에 교육지수, 기대수명 지수, 평등지수를 통해 일인당 국민소득이 보여주지 못하는 삶의 질을 보완하려 했던 것이 바로 센이 만든 『인간개발보고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센델(Michael Sandel) 교수가 말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학에 들어갔다고,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고, 사업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센델의 표현대로 하자면, 능력주의 환상이다). 센델은 '성공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개인적 노력 외의) 수많은 환경적 지원이 있었음을 고려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성공하려고 노력했던 자신이 받은 환경적 지원을 현재 노력하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고도 말한다.


현재 노력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공동체!


이런 사회가 아마르티아 센이 말한 역량이 극대화되는 사회이자, 삶의 질이 높아지는 사회가 아닐까?

또한 바로 이런 사회가 마이클 센델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 아닐까?


그리고 바로 이러한 환경적 지원의 토대 위에

개인의 노력이 더해질 때! 바로 인간의 역량이 완성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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