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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ug 04. 2021

인간개발지수: 인간의 역량과 가능성에 주목하다

기대수명, 문해력, 그리고 구매력

한국인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쉽게 말해 평균적으로 한국인은 연봉이 3천2백만 원 정도 된다는 말이다(꼭 이런 의미는 아니지만, 쉽게 말해 그렇다는 거다). 우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한국의 20세 이상 성인남녀는 평균적으로 1년에 3천2백만 원을 번다! 그런데 말이다. 이거 진짜인가? 진짜 한국의 20대 이상 성인남녀는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안정적으로 연 3천2백만 원이라는 소득을 올리고 있을까?


으음...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3천2백만 원은커녕, 연봉 2천5만 원도 안 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일인당 국민소득, 너란 녀석은 도대체 뭐니?'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머리 끝까지 올라온다. 실제로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었다는 기사를 같이 보면서, '그래서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 보았다. 이럴 거면, 도대체 일인당 국민소득은 왜 필요한 건가?


이렇게 따지만, 일인당 국민소득도 좀 억울할 수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처음부터 이런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인당 국민소득(GNP per capita)은 사실 일인당 국민총생산(GDP per capita)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일인당 국민총생산이다. 일인당 국민총생산 해당 국가에서 발생한 전체적인 가치(돈)가 얼마인지 계산 후, 인구수로 나눈 평균값이다.


이렇게 보면 일인당 국민총생산이란 개념은 애초에 그 나라 사람 개개인이 얼마나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담고 있지 않다. 그냥 그 나라에서 창출된 가치의 총량을 인구수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일인당 국민총생산과 동일한 일인당 국민소득도 마찬가지다. 국가 전체의 부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보여줄 수 있어지만, 개개인의 삶의 질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는 보여주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일인당 국민소득(일인당 국민총생산)은 해당 국가가 얼마나 발전된 상태인지를 보여주기에 괜찮은 지표이지만, 개개인의 삶을 보여주기엔 무리가 있는 지표다.


어떤 나라에 있는 거대 기업이 엄청난 판매 수익을 올리고, 그 거대 기업에 다니는 사원들이 억대 연봉을 받고, 심지어 연봉만큼의 인센티브를 받으면 일인당 국민소득은 올라간다.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억대 연봉을 받고, 엄청난 인센티브를 받으면 일인당 국민소득은 올라간다. 공기업에서 특정 지역에 집을 짓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만들고, 공항을 만들면, 일인당 국민소득은 올라간다. 그런데 이런 것은 실제 개개인의 삶과는 관계가 별로 없다. 보통의 개개인들은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고, 사는 것은 늘 힘들다.


이제 일인당 국민소득에게 자꾸 인간의 삶의 질을 보여달라고, 개인의 삶의 질을 보여보라고 요구하지 말자. 처음부터 그걸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보여주려고 노력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의 질,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보여주기 위한 지표는 따로 있다. 뭐냐고? 바로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다. 인간개발지수는 1990년 5월 1일 처음 발간된 이후, 매년 5월 1일에 발간되고 있는《인간개발 보고서》에 들어 있는 국가별 삶의 질 지표로 일인당 국민소득이 보여주지 못하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조금 더 세밀하게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인간개발지수의 핵심은 인간의 역량(human capabilities)이다. 인간의 역량이란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와 관련된 요인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역량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량은 한 개인이 직업적 성취에 필요한 능력을 습득하고 사용하는 것에 제한이 없는 환경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한 개인이 어느 정도 괜찮은 삶(decent standard of living)을 사는데 필요한 능력들을 획득하고 그 능력을 사용하여 실제로 어느 정도 괜찮을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진단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바로 역량이다.



그럼 무엇을 통해 역량을 측정할 수 있을까? 어떤 요소들을 측정하고 비교해야 개인들이 어느 정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인간개발지수는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한다. 첫째, 인간개발지수는 기대수명(life expectancy)에 주목한다. 기대수명은 단지 얼마나 오래 사는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수명은 그 안에 다양한 요소들이 숨어 있다. 인간개발지수가 진짜로 알고 싶은 건 기대수명이라는 개념에 대한 수학적 수치가 아니다. 그 수학적 수치 안에 담겨 있는 의미가 알고 싶은 것이다.


높은 기대수명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먼저 한 국가 국민들의 높은 기대수명은 그 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 수준을 보여준다. 보건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유아 사망률이 낮고, 전염병 관리가 잘 된다. 또한 기대수명이 높다는 것은 그 나라의 위생관리가 잘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수도 관리가 잘 되어서 물로 인한 질병이 발생하지 않고, 마실 물이 적절히 공급되고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공중위생 관리가 적절히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심지어 높은 기대수명은 노인들에 대한 국가적 복지가 적절히 제공됨을 의미한다. 일을 할 수 없는 노인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급여를 지급하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보면 기대수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둘째, 인간개발지수는 개인의 문해력(literacy)에 주목한다. 문해력은 작게 보면 모국어를 읽고, 쓰고,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는지에 대한 개념이나, 크게 보면 개인이 사회적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보여준다. 즉 문해력은 결국 그 나라에서 개개인에게 어느 정도 교육을 보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문해력은 차별이 있는지도 보여줄 수 있는데, 어떤 나라에서 남성들은 문해력이 높지만, 여성은 낮다면, 이는 남녀차별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어떤 나라에서 백인들은 문해력이 높은데, 흑인들은 문해력이 낮다면 이것도 차별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된다. 문해력은 그 나라가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기르고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지 아니면 특정 계층(예: 고소득층)에게만 그런 기회를 허용하는지도 보여준다. 만약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문해력 차이가 극심하다면, 그 나라는 저소득층에게 적절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인간개발지수는 구매력(purchasing power)에 주목한다. 구매력이란 개인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To buy commodities for satisfying basic needs)로 정의된다. 구매력은 그냥 일인당 국민소득(혹은 일인당 국민총생산)과는 천지차이다. 어떤 개인의 월급이 250만 원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이 사람은 자동차를 구매하느라 대출을 받아서 매달 이자를 20만 원씩 내야 하고, 집도 월세라서 매달 50만 원씩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돈이 있고, 교통비와 통신비가 매달 30만 원씩 나가며, 생활필수품 구매(휴지, 쌀 등)에도 매달 20만 원씩 고정적으로 지출된다. 또한 부모님이 소득이 없으셔서 부모님에게 매달 50만 원씩 드려야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사람은 매달 고정지출이 170만 원이고, 자기가 진짜로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 자기 계발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80만 원 밖에 남지 않는다. 여기에 갑자기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비로 10만 원이 나가는 달이면, 자신에게 쓸 수 있는 돈은 70만 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바로 이게 이 사람의 구매력이다. 이 사람은 월 250만 원을 받고, 연봉으로 하면 3천만 원이지만, 구매력은 월 80만 원이고, 연봉으로 하면 960만 원으로 1천만 원도 안 되는 연봉과 다름없다. 인간개발지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렇게 실질적으로 구매력이 낮은 삶은 좋은 삶이 아니다.


물론 인간개발지수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인간개발지수가 삶의 질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인당 국민소득보다는 조금 더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 더 고민할 것들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개발지수는 쉬운 길이 아니라 어려운 길을 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인간개발지수는 인간의 삶을 쉽게 쉽게 숫자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숫자 안에 의미를 담아보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내 삶을 돈으로, 숫자로 쉽게 쉽게 보려고 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삶도 돈으로 숫자로 쉽게 쉽게 표현하지 말자. 숫자에 의미를 담고, 삶의 의미를 담아서 보아야 한다. 어렵게, 더 어렵게, 고민하면서, 더 고민하면서 개개인의 삶의 질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는 인간의 인생을 쉽게 보려고 하지 않고, 어렵게 보려고 시도했다는 것, 단순화시키지 않고, 복잡함 그대로를 수용하려고 했다는 점, 바로 이것을 인간개발지수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Alkire, S. (2002). Dimensions of human development. World development30(2), 181-205.


Bhanojirao, V. V. (1991). Human development report 1990: Review and assessment. World Development19(10), 1451-1460.


Sen, A. (2005). Human rights and capabilities. Journal of human development6(2), 151-166.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1990). Human development report 1990.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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