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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l 28. 2021

발전경제학과 GDP 접근법의 한계

단순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단순해서는 안 된다. - 아인슈타인

정치가 뭘까?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가장 널리 인정받는 정의는 '한 나라의 경제 체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와 관련된 개인 및 집단들 간의 상호작용'이다. 부동산 정책이란 것이 뭔가? 결국 경제 문제다. 생필품 물가 안정 문제가 무엇인가? 결국 경제 문제다. 세금을 줄일 것인가? 늘릴 것인가? 경제 문제다. 이렇게 볼 때 정치는 경제다. 정치경제학이라는 분야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좀 알아야 한다.


그럼 경제는 뭘까? 경제 하면 보통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은데, 그건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경제라는 것은 사실 그냥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총제적인 문제를 말한다. 경제는 '개개인이 잘 사는 것과 관련된 모든 문제'이다. 좀 고급스럽게 말하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곧 경제다. 소위 말하는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가 뭐냐고?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때 개인의 삶을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의 공화당 쪽 입장이랄까?). 케인즈학파가 뭐냐고?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다소 제한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안정시켜야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의 민주당 쪽 입장에 가깝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뭐냐고? 사유재산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하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현재 마르크스가 제시했던 진정한 공산주의를 구현하는 나라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총체적인 문제를 다루는 학문, 그렇기에 오랜 기간 동안(사실 지금도) 사회과학 분야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학문이 있으니, 바로 경제학이다(대부분의 공무원 시험 필수 과목인 이유를 알겠는가?). 또한 경제학 중에서도 국가의 정치적 판단, 심지어 전 세계적인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발전경제학'이라는 분야이다.



정치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는 작든 크든 발전경제학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들이 경제학자에게 자문을 받거나,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듣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접하는 것이 바로 발전경제학이기 때문이다. 또 정책 토론회에 나가기 전에 OECD에서 경제 관련 지표를 수집하거나, 각 나라마다 있는 통계청(한국도 통계청이 있다)에서 자료를 수집하거나, UN 자료집에서 경제 관련 지표를 조사한다면, 결국 발전경제학의 사고방식을 담고 있는 지표를 수집한 것이다.


국민의 삶의 질 혹은 자신이 관심 있는 집단이나 공동체의 삶의 질, 그도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의 질에 관심이 있어서 조금이라고 체계적인 자료를 조사해본 사람이 발전경제학을 피해 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그럼 발전경제학을 분야에서 가장 널리 유행할 뿐 아니라, 가장 오래되었고, 심지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삶의 질 지표는 뭘까? 그건 바로 1인당 GDP(1인당 국민소득) 접근법이다.


1인당 GDP 접근법이 발전경제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된 것에는(그래서 정치인들이 널리 활용해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1인당 GDP는 측정하기가 비교적 쉽다. 측정하기 쉽다는 것은 비교하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숫자로 표현된 각 나라의 GDP를 비교하고, 순위를 부여하면 얼마나 좋은가. 아주 명확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 실제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불확실한 것이 없다고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다.


둘째, 1인당 GDP는 투명하다. GDP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 데이터를 날조하기 힘들다. 일단 GDP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관들에서 자료를 보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자료 수집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여한다. 쉽게 말해 GDP는 자료 수집 과정부터 보는 눈이 많다. 그래서 부풀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최소한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보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날조할 수 있겠는가. 아주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다.


셋째, 1인당 GDP가 보여주는 경제성장은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최소한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좋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습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무엇을 보여주겠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으로 오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때 보여줄 수 있는 게 숫자다. '지난 30년 간 한국의 1인당 GDP가 이렇게 증가했습니다!'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걸 숫자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프라는 시각화 기술을 응용해서 보여주면 아주 감동적이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여기에 연출력 있는 사람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사진을 보여주다가 높은 빌딩이 솟아오른 사진까지 곁들여서 점진적으로 보여준다면 금상첨화다. 모두가 감동받고 눈물 뚝뚝 흘릴 수도 있다.


트리클다운 이론(낙수 이론, trickle-down theory)을 들어보았는가? 발전경제학이 오래도록 신봉해 온 1인당 GDP 접근법으로 '삶의 질' 문제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이론 중 하나다. 이 이론은 말한다. '국가가 앞장서서 분배 정책을 취하지 않아도 경제성장의 혜택이 빈곤층에게 서서히 녹아든다'라고 말이다. 이 말에는 이런 신념이 숨겨져 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1인당 GDP가 증가하면(경제지표가 좋아지면), 그렇게 증가한 국가적 부가 자연스럽게 구석구석 퍼져나갈 것이다'라는 신념이 그것이다. 사실 신념이라고 부르는 것도 부끄럽다. 약간 신화적인 냄새가 난다.


그리고 이 신화적인 트리클다운 이론은 이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이론이 부적합하다는 것이 여러 각도에서 증명되었다. 대표적으로 장 드레즈(Jean Dreze)와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인도의 여러 주를 비교 연구한 뒤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보건의료와 교육 같은 중요한 영역에서 삶의 질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인도의 각 주는 정치제도를 공유하지만, 보건의료정책이나 교육정책은 물론 경제성장정책도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훌륭한 비교대상이다).


또 다른 데이터는 지난 60년간 인도와 중국을 비교하여 GDP 증가와 개인의 자율성 보장이 무관함을 보여주었다. 1인당 GDP 성장으로 보자면, 인도의 실적은 중국보다 엄청나게 낮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인도는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호하는 편이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과연 무엇으로 개인의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할 것인가? 1인당 GDP의 증가인가? 개개인의 자율성 보장인가? 사실 둘 다 필요할 것이다. 국가적인 부도 증가해야 하고, 개개인도 자율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


《인간개발보고서》는 발전경제학이 신봉해온 1인당 GDP 접근법과 낙수효과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인간개발보고서》는 1인당 GDP만 고려하여 한 국가의 삶의 질을 평가하지 않는다. 각 나라의 교육 수준과 수명 요인(건강 요인)을 1인당 GDP와 함께 고려한다. 그리고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라는 새로운 지표로 국가별 순위를 도출한다. 이렇게 도출된 순위는 1인당 GDP 순위와 사뭇 다르다. 미국은 1인당 GDP로 보면 세계 1위이지만, HDI로 보면 세계 12위 정도에 머문다. 교육과 수명 이외의 다른 요인들까지 추가하면 미국의 HDI 순위는 더 내려간다.



이런 모든 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오늘날 1인당 GDP를 기준으로 국가와 지역의 삶의 질을 살펴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1인당 GDP로만 삶의 질을 측정할 때의 문제점을 간단히 요약하도록 하자.


첫째, 1인당 GDP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아인슈타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과학은 단순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단순해서도 안 된다.' 사실 개인의 삶의 질을 소득 측면에서 살펴보고 싶다면, 1인당 GDP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1인당 실질가계소득의 증가를 살펴봐야 그나마 정확하게 개개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오늘과 같이 다국적 기업들이 증가한 세계화의 시대에는 1인당 GDP의 증가와 1인당 실질가계소득의 증가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또 1인당 GDP는 가사노동 혹은 가정교육의 가치를 개인의 삶의 질에 포함할 수 없는데, 사실 아동의 삶의 질은 부모의 가사노동과 가정교육으로 결정할 때가 많고, 그 사람 평생의 삶의 질도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1인당 GDP는 이런 세세한 영역에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둘째, 평균에 바탕을 둔 모든 개념이 그렇듯, 1인당 GDP 접근법도 편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간혹 불평등이 심한 국가가 삶의 질이 좋은 국가로 보이게 되는 이유가 바로 편차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아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불평등이 극심했지만, GDP 지표로는 개발도상국 중 최상위권에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부가 특정 계층에서 편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정 계층에게 편중되긴 했지만, 어쨌든 GDP 규모가 엄청나게 컸으므로 이를 평균한 1인당 GDP도 클 수밖에 없고, 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은 세계인들은 해당 국가의 삶의 질이 좋다고 평가하게 된다. 즉 1인당 GDP는 부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부를 지배하는지, 부유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셋째, 1인당 GDP는 최종 결과만 보여주며, 그 나라에 사는 국민들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삶의 질은 건강, 수명, 교육, 신체적 안전, 정치적 권리, 환경의 질, 취업 기회, 여가 등의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1인당 GDP는 돈이 많으면 이런 다양한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보여주지만, 이런 것을 누리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1인당 GDP를 부각하면 물질주의(돈이 최고다)만 부추길 수 있다. 좋은 삶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게 하고, 그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최고라는 의식을 부추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뭔가 지표를 내세울 때는 신중해야 한다.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과학은 단순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단순해서는 안 된다.'


'삶의 질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단순화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무 단순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Nussbaum, M. C. (2011). Creating Capabilities.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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