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국희 Jul 21. 2021

삶의 질은 일인당 국민소득 평균과 다르다

국민소득 평균은 인도 여성의 삶의 질을 보여주는가?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주에는 아흐메다바드라는 대도시가 있다.


바산티(Vasanti)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초반의 여성이 사는 도시다. 아담한 체구의 바산티에게는 남편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남편은 남의 편이던가?!


바산티의 남편은 집안의 돈이란 돈은 모두 술을 사서 먹는데만 쓴다. 술주정도 심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먹고 주정을 부린다. 도박에도 손을 대서 얼마 되지도 않던 재산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돈이 바닥난 바산티의 남편은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그리고 술을 먹기 위해 정관수술(남자에게 하는 불임수술)을 받았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정관수술을 받는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저하되어 아이를 낳는 가정에 보조금을 주는 나라이기 그럴만하다. 그러나 인도는 우리나라와 완전히 반대다. 인도는 산아제한을 하고 있는 국가이며, 주정부에서 정관수술을 해서 산아제한에 일조하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렇게 받은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바산티의 남편은 술과 도박에 금방 돈을 써버렸다.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결혼 후에 부부에게 자녀가 없을 경우, 여성이 가정폭력을 노출되기 쉽다. 과학적 연구결과다. 아쉽게도 바산티 부부는 자녀가 없었고, 남편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원천 차단해버렸다. 그리고 연구결과처럼 되어버렸다. 바산티에 대한 남편의 술주정이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바산티는 거의 매일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 그리고 남편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바산티는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혼 절차가 몹시 까다롭고, 술주정뱅이에다 도박꾼에 학대자인 남편이 이혼에 순순히 응해주지 않아 무척 고생을 했지만, 이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갔다. 인도의 부모들은 지참금을 챙겨서 결혼한 딸이 돌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가난한 부모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 당장 자신들도 먹고살기 힘든데, 입이 하나 느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실제로 바산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인도 여성들은 거리에서 구걸하거나, 성매매를 하는 신세로 내몰린다. 바산티의 부모가 그녀를 버리지 않고, 다시 집에 받아준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다. 바산티는 그녀의 부모가 하던 재봉일을 도우면서 생활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늘 불안하다.


도대체 인도 정부는 뭐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가? 인도의 구자라트 주정부는 매우 바쁘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게을러서 혹은 무능해서 바산티 같은 여성들을 돌보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단지 주정부가 신경을 쓰는 일,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극빈층이 필요로 하는 지원과는 다를 뿐이다. 구자라트 주정부가 신경 쓰는 것은 경제지표, 그중에서는 주민들의 평균적인 국민소득을 향상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즉 일인당 GDP를 증진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주정부의 관심사는 온통 경제성장에만 쏠려 있다.


주정부가 주도하여 건물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고, 길을 낼 때마다 경제지표가 좋아진다. 일인당 GDP가 향상된다. 이러한 주정부 주도의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기에 평균도 함께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정부 주도 사업이 바산티 같은 여성, 바산티의 부모가 있는 가정에게 주는 영향은 거의 없다. 일인당 GDP 평균이 향상되는 것과 바산티의 삶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장 경제지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돈을 벌고, 이미 돈을 많이 벌었는데 또 돈을 벌고 하는 일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주정부는 더 잘살게 된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바산티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바산티 같은 처지의 사람을 전혀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즉 주민들의 평균적인 국민소득은 전체 주민의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한다. 평균적 국민소득은 실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는 다르다. 평균이 70점이라고 하자. 이 70점은 65점과 75점의 평균일 수도 있고, 90점과 50점의 평균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튼 70점이다. 전자는 편차가 5점에 불과하고, 후자는 편차가 20점이나 되지만, 그런 건 별로 관심 없다. 그냥 70점이면 된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라는 것이 이런 식이다. 그냥 평균적으로 높으면 되고, 평균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면 된다. 누구의 성장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고, 진짜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실제로 사람들이 평균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평균과의 편차가 어느 정도인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극빈층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적 시스템과 행정적 시스템이다. 극빈층에게 필요한 것은(바산티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그녀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보건의료 서비스다. 극빈층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저금리 신용대출이다. 극빈층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에 필수적인 교육이다. 그런데 평균적 GDP 성장에만 신경을 쓰는 순간, 극빈층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들, 그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국민소득 평균은 삶의 질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편리한 도구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이 희생시키고 있는 삶의 영역이 너무 크다면, 평균이 아닌 편차를 봐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삶의 질은 평균적인 일인당 국민소득과는 다르니까!


*참고문헌

Nussbaum, M. C. (2011). Creating Capabilities. Harvard University Press.


Nussbaum, M. C. (2001). Women and human development: The capabilities approach (Vol. 3). Cambridge University Press.


*행복을 읽어 주는 인지심리학자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작가의 이전글 정서 범주화와 이름 붙이기: 내가 느낀 정서의 정체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