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의 방향

독이 목을 타고 흐르면

by gloomee

어스름히 밝아 오는 아침, 속이 쓰려 윗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흐릿한 눈앞만큼 어제의 기억 또한 불투명하다. 홀쭉한 배와 칼칼한 목구멍이 느껴지는 걸 보니 어제도 한껏 게워 내다 잠이 들었나 보다. 텁텁한 입안에서 혀를 잠시 굴리다 이내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분명 이쯤일 텐데.


몇 번 휘적이던 팔에 플라스틱이 닿았다. 제대로 닫혀 있지 않은 뚜껑을 마구잡이로 돌려 입구를 열고 물을 비축하려는 낙타처럼 금세 한 통을 비워버렸다. 위 안에서 술과 물이 섞여 역겨운 향을 뿜어낸다. 우욱. 술이 미처 깨지 않은 채로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어 노란 위액을 뱉어내고 입을 헹구었다. 또다시 갈증이 밀려온다.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된 이유는 명백하다. 나는 술에 대한 갈증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떡이 될 때까지 마시는 술은 텅 빈 위를 채워준다. 배가 부를 정도로 술을 들이부으면 뻥 뚫린 마음이 조금은 가려진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머릿속에 브레이크도 걸어준다. 술을 마시면 배부른 바보가 된다. 나는 그게 좋아서 술을 쳐마신다.


결핍이 많은 나는 늘 갈증에 시달린다. 애정에 목마르고, 관심에 목마르고, 자극에 목말라한다. 목구멍을 뜨겁게 달구는 술, 밤과 함께 사라질 가벼운 웃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삼킬 수 있는 모든 걸 내 안에 쏟아붓는다. 그러면 내가 좀 채워질까 봐. 살고 싶어질까 봐. 술을 마실 때면 모두 변장의 달인이 된다.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입고 깊게 깔린 우울을 시끄러운 대화와 웃음소리로 꾹꾹 눌러 숨긴다. 맥주잔을 타고 흐르는 거품처럼 간혹 슬픔과 고통이 고개를 내밀지만 금세 쓱 닦아내고 또다시 잔을 비운다.


술은 내게 진통제 같은 약이자 위를 뚫는 독이다.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덤블도어는 악당 볼드모트를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호크룩스를 얻기 위해 독을 마셨다. 한 모금 한 모금이 괴로워 신음하면서도 끝까지 마셔 보울을 비워낸다. 나는 무엇을 위해 독을 마시는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려 뺨을 짝짝 때렸다. 찌릿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미 온몸에 밴 술기운을 물리칠 정도는 아니다. 다음 날이면 이렇게 괴로운 흔적만을 남기고 내 몸에 고여있겠지만 오늘도 나는 독을 마실 것이다. 나만의 호크룩스를 찾기 위해 목적 없는 목 넘김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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