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힘껏 도망치는 나를 추격하는 것은
나는 후회를 싫어한다. 그래서 내 인생의 좌표는 '이 것을 통해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좌우한다.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믿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지난 일에 미련을 갖지 않으려 한다. 지난 일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돌이켜 보지 않는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하면 자기 최면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나는 사실 굉장히 약한 정신의 소유자라서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후회라는 큰 감정을 감당할 수 없어 최선을 다해 과거를 잊는다.
후회는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루를 보내면서도 후회감을 느낄 순간은 몇 번이나 찾아온다. 업무를 보고할 때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았을 때도, 자리에서 일어서다 물을 엎었을 때도, 하다못해 멍을 때리다 잡고 있던 펜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도 다양한 형태의 후회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작은 후회들이 연속적으로 방문하는 하루의 끝은 왠지 모를 찝찝함이 맴돈다. 오늘은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피드에 뜬 상식 퀴즈를 풀어봤다. 두 개의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헷갈리던 문제를 고민하다 오답을 고를 때마다 좀 더 생각해 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런 순간이 세네 번 반복되었을 때쯤 누군가가 재미로 만들었을 이 퀴즈가 내 하루를 망칠 수 없도록 영상을 껐다. 후회는 항상 날 쫓고 나는 후회를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이렇게 후회와 술래잡기를 하며 사는 나도 가끔은 꼼짝없이 발이 묶일 때가 있다. 후회는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괴롭힐 지원군들을 함께 데려오는데 그중 내가 가장 버거워하는 것은 자기혐오와 무력감이다. 후회를 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굴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몇 번의 낮과 몇 번의 밤을 내어준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쉽게 뱉는 '아, 이러지 말걸.'이라는 하나의 생각이 주는 영향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다른 생각으로 머리를 채운다. 후회가 내 옷깃을 잡을 수 없도록 여러 갈래로 방향을 바꿔가며 도망치는 것이다.
나의 회피 실력은 나날이 발전 중이고 후회는 기회를 엿보듣 주위를 서성거리지만 쉽사리 나를 포획하지 못한다. 노련한 마인드 컨트롤을 발휘해 후회와는 거리가 먼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이 정도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열심히 떠올리기도 하고 잘하고 있다며 심장을 몇 번 두드리기도 한다. 후회는 사자처럼 사냥을 쉬는 듯 보이다가도 금세 태세를 바꿔 달려들 준비를 한다. 나는 후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언제든 쫓을 생각을 하고 있는 후회와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술래잡기는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