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끝엔 불면이

고양이는 가끔 수면제가 된다

by gloomee

까만 밤이 왔다. 무음에 가까운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까지 들리는 방 안은 사무치도록 조용하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잠에 들어야 하는데 불면의 밤은 나날이 길어지기만 한다. 모든 불이 꺼진 세상은 눈을 감아도 떠도 같은 색이다. 흑색의 천장에 오늘 하루를 그려본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아슬아슬하게 출근을 하고 쌓인 업무를 차근차근 지워나갔다. 점심을 함께하자는 동료에게는 급한 통화가 있다는 변명을 하고 혼자 빈 회의실에서 내키지 않는 식사를 했다. 퇴근 전까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고 모니터를 응시하느라 피곤해진 눈 주위를 꾹꾹 누르며 의미 없는 하루가 끝나기를 바랐다.


하루치 스트레스와 피로를 안고 돌아온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하루종일 자신을 외롭게 만든 것에 대한 세 마리 고양이의 복수인 듯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깨진 컵을 치우고 쓰러져 있는 쓰레기통을 세워 쏟아져 나온 것들을 주워 담았다. 남은 유리 조각에 고양이의 여린 살이 베일까 얼른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이런 와중에도 배꼽시계는 참 정직하게도 울려댔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샐러드를 주문했다. 고양이들의 끼니도 챙겨주고 물그릇을 채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니 정말 울 것 같이 피곤해졌다. 요새는 이런 사소한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왜 이리 버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하루의 회상을 끝마쳤음에도 잠은 오지 않는다. 밤이면 유독 또렷해지는 정신이 원망스럽다. 시간은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고 나는 머릿속으로 취할 수 있는 수면 시간을 계산했다. 당장 잠에 들어도 6시간을 채 자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내일 치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다. 양이라도 세어보자 싶어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머릿속으로 세고 있다가도 금세 샛길로 빠져 '그때 먹은 양꼬치는 정말 맛있었지..' 하는 엉뚱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고양이들은 슬슬 잠이 오는지 머리맡에 하나, 배 위에 하나, 발 치에 하나, 각자 자리를 잡는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집을 어질러 쉴 시간을 줄여주는 효심 넘치는 고양이들이 괘씸하다가도 함께 있어주지 못한 긴 시간이 미안해져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에겐 쉬이 와주지 않는 잠이 이 녀석들에게는 금방 찾아왔는지 골골거리는 소리가 점차 작아지다가 색색거리는 숨소리로 변한다. 그 숨소리에 내 호흡을 맞추다 밤이 가장 어두운 시간에 스르륵 잠에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꿈속의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