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당신이 반가워서
꿈을 꿨다. 내가 꾸는 꿈의 팔 할은 가본 적 없는, 하지만 익숙한 학교 구조의 건물이 배경이 된다. 실제 하지 않는 장소임에도 꿈속의 나는 몇 층 어느 방에 무엇이 있는지 꿰뚫고 있다. 가끔 실수로 지하에 내려가게 되면 끔찍한 몰골의 귀신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지하 깊숙이 숨겨져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곡선의 경로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오늘은 다행히 지하가 아닌 3층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왼편에 자리 잡은 화장실을 지나 하나의 교실로 들어서자 친구와 속닥거리고 있는 그 애가 보였다. 그 애가 등장하는 꿈을 꾸는 날이면 내 꿈 속임에도 불구하고 그 애가 꿈의 주체가 된다.
쳐다보는 시선을 감지했는지 친구와의 대화를 멈추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나와 그 애 사이에는 자성이 있어서 조금만 가까이 가면 서로를 끌어당긴다. 꿈은 생각보다 정교해서 웃을 때 살짝 고개를 숙이는 습관이나 콧 등에 난 점까지 재연해 낸다. 그래서 나는 수년 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어느새 친구는 사라지고 공간에는 그 애와 나만이 남겨졌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진동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안부를 물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 애는 장난 섞인 어투로 새삼스러운 질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얼굴에 떠오른 일렁이는 미소를 보며 나는 꿈속에 있음을 확신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복도를 걸었다. 심장은 왼쪽 가슴이 아닌 잡은 손에서 뛰고 있었고 언제 꿈에서 깰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 입은 토해내듯 보고 싶었다는 말과 널 그렇게 보내서 미안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신기루 같은 그 애는 다 지난 일이라며 괜찮다고 말했고 나는 이런 상황이 꿈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기억 속 우리의 모습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며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이었기에 이토록 평온한 우리를 볼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한참을 걷다 나온 벤치에 앉아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았고 꿈에서 깨면 볼 수 없을 서로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애는 이제 가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련이 가득 남은 나는 네가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짧은 안녕을 건넸다. 그 애가 가는 모습은 보지 않았다. 그 애가 웃을 때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벌써 보고 싶어 지는 얼굴을 자꾸 곱씹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며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떴다. 꿈의 여파 때문인지 가슴이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얼굴이 여전히 생생해 너를 잊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오늘 꿈에는 귀신이 아닌 그 애가 나와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