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는 내일을 맞이한다는 것은
원체 미루기를 좋아하는 나는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내일 하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산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내일이라는 흙더미로 잠시 덮어두면 오늘의 나는 조금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의 내일이 오면 몇 겹인지 모를 흙더미를 파헤쳐 스트레스, 고통, 슬픔을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오늘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내일의 나는 버텨낼 수 있을까? 내일로 미룬 내 일은 가끔 산사태처럼 다가와 며칠의 내일들을 괴롭게 한다.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우울과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뒤엉켜 오늘을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었다. 잠이 없는 밤을 보내면 지금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알 수 없어진다. 오늘도 내일도 아닌 하루들을 버티다 못해 이제는 지겹도록 당연해진 알약 몇 알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면 어느샌가 까무룩 잠에 들었다. 그렇게 내일은 또 나를 찾아왔다. 제발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어제의 내일이 내 생의 마지막 내일이 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믿음 없는 기도를 한 탓인지 무심한 내일은 매일 내 눈꺼풀을 잡아 올렸고 나는 어찌할 도리 없이 오늘이 된 내일을 견뎌냈다.
모두가 내일을 미워하며 사는 줄 알았는데 내일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썩 나쁘지 않은 오늘은 보낸 친구는 아무 걱정 없이 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들었고 병마와 싸우는 엄마는 혹시나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렸다. 할 수만 있다면 내게 남은 내일들을 나눠주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내뱉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없는 내일은 마냥 슬프기만 할 것이라 나의 내일을 갖고 싶지 않다했다. 지구의 종말이나 천재지변을 기다리던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내가 조금 더 행복했더라면, 조금 더 편안했더라면, 조금 더 너그러웠다면, 조금 더 평범했더라면 하루의 끝자락에서 또 다른 괴로운 내일이 아닌 평범한 내일을 기대해 볼 수 있었을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갔다는 안도감이 아닌 오늘 같은 하루가 내일이면 다시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날 붙들고 늘어진다. 마지막 내일이 쉽게 와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잠이 오지 않아도 약을 삼키고 스탠드 조명의 밝기를 낮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오겠지. 오늘 같은 내일일 수도 어제 같은 내일일 수도 있겠지. 가방 속을 구르며 꼬여버린 이어폰 줄 같은 생각도 내일로 미뤄두기로 한다. 내일의 내 일로 넘겨버리기로 한다. 검은 천장을 바라보던 눈이 점점 따가워짐을 느끼며 눈을 천천히 감고 뜨기를 반복한다. 눈을 감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면 내일의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오늘의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