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질병처럼 느껴지는 나날에는
힘이 쭉 빠진다.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추가 달린 것처럼 무거워서 타자를 치기가 어렵다. 평소 너무 많은 생각들로 시끄럽던 머릿속에 검은 페인트를 엎질러 나의 세상이 고요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차갑고 축축한 느낌의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온통 검은색인 머릿속 덕분인지, 때문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 하지 못하는 게 편안하다. 그러려니 두고 보던 주변인들의 눈빛에 걱정이 어리기 시작하지만, 눈까지 검게 칠해진 나는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꾸 물어온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검은색 말을 뱉어낸다. 아무 일도 없다고.
손에 힘을 줘 주먹을 쥐어봤다. 힘들다. 작은 근육을 오므렸다가 펴는 간단한 행동에 오늘 쓸 체력의 절반 이상을 소모한 것 같다. 움직인 건 손인데 괜스레 어깨가 뻐근하다. 두 눈을 감고 어깨를 꾹꾹 누르며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숨과 날숨을 합쳐 호흡이라 일컫지만 나는 요새 내뱉는 숨만 숨이라고 느껴진다. 숨 쉬는 것도 일이라는 게 사실일 줄이야.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꾸 깜빡하고 호흡을 멈춘다. 그러다 문득 괴로워져 수동적으로 호흡을 이어 나간다. 다시 숨을 들이켜고 이번엔 손바닥을 쫙 펴본다.
선천적으로 나약한 몸과 마음이었다. 햇빛 아래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체력장에서는 오래 달리기를 하다 기절한 적도 있었다. 만성적 우울증으로 학생 시절을 버텨내는 데에 애를 먹었고 아직도 남이 뱉는 한마디에 불안증이 치고 올라와 비상약을 찾고는 한다. 모두가 똑같이 겪는 12년의 학교생활을 버티지 못해 자퇴와 휴학을 반복하며 그 나이대에만 가질 수 있는 푸릇함을 낭비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1년이 채 안 되어 지쳐 나가떨어지면서 경력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포기가 쉬운 나에게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도 나아지고 싶었다. 꾸준한 약 복용과 몇 개월의 휴식으로 이제는 좀 버틸 수 있을까 했는데. 입사 3개월 만에 또다시 번아웃을 맞이하고 있다.
대부분의 번아웃을 겪는 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게 얻어맞는다. 무력하게 당하면서도 원인을 찾지 못한다. 아니, 찾지 않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정말 끔찍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블랙아이(눈에 생기는 새까만 멍)를 만든 묻지 마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이 수사가 끝날 때까지 무한정 대기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여럿일 때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때도 있다.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가만히 침전하는 것. 가만히, 가만히…
모니터를 응시하다 충혈된 눈이 느껴져 두 손으로 꾹꾹 눌러봤다.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 무얼 했는지 생각하려다 힘이 들어 그만두었다. 내 까만 세상과 같이 현생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일주일을 산 것 같은데 아직 월요일이 채 끝나지 않았다. 오늘과 같은 날을 닷새 살아내면 해방의 이틀이 찾아온다. 그 이틀도 더 이상 특별하지는 않다. 일을 하는 닷새와 다른 점은 검은색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괜찮다는 것뿐이다. 유난히 빨리 닳는 검은색 펜으로 내일의 할 일을 적어낸다. 내 일의 할 일,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