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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Apr 14. 2017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한다고요?

육아를 통해 정치의 민낯을 보다

유치원에 대한 공포심은 일찌감치 갖고 있었다. 다니던 어린이집도 박차고 나온 마당에 유치원에 보낼 이유가 없어 경험은 못해봤지만, 몇몇 엄마들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어린이집만큼이나 유치원도 심각한 문제 투성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올해로 만 3세가 되는 첫째 아이의 또래 친구 엄마들은 지난해 말, '어린이집 잔류'와 '유치원 갈아타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좋은 유치원에 보내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더라, 그중에서도 병설유치원에 당첨되면 로또 맞는 거라더라, 그런데 그 병설유치원에 다니면 낮 12시 반이면 끝난다더라, 방학도 초등학교 방학만큼 길다더라, 그래서 일하는 엄마는 꿈도 못 꾼다더라, 사립유치원도 비싸기 때문에 보내려면 아예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게 낫다더라...


한 엄마는 좋다는 병설유치원에 보냈는데 점심으로 초등학생들이 먹는 오징어젓갈이 반찬으로 나와서 아이들이 단체로 장염에 걸렸던 일화를 이야기했고, 또 다른 엄마는 병설유치원 교사들이 행정 잡무가 많아서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니 사립유치원이 낫다고 말했다. 국공립? 사립? 병설? 처음엔 유치원 하나 보내는 데 뭐 이리 복잡한지 헷갈리기만 했다. 1~2년 후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쯤 그저 운이 따라주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그때쯤 '유치원 알리미' 사이트라는 곳이 있대서 들어가 봤다. 동네에 어떤 유치원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유치원의 종류는 국립, 공립(단설), 공립(병설), 사립(법인), 사립(사인)으로 다양했다. 국공립이 좋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서 우리 구내의 국립과 공립(단설, 병설) 유치원을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나오는 곳은 병설유치원만 9곳. 국립과 단설은 한 곳도 없었다. 조급할 일이 없던 그때만 해도 단순히 이렇게만 생각하고 말았다. '국립이랑 단설은 원래 별로 없는 건가 보네... 그런데 단설이 뭐지?'


출처 : https://pixabay.com


단설유치원은 왜 별로 없을까?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대회'에서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해 논란이다. 처음엔 '단설'을 '병설'로 잘못 알아들은 현장 기자들이 '병설유치원 신설 제한'이라고 속보를 쓰는 바람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엄마들이 난리가 났다. 공립인 병설유치원은 엄마들이 선호하는 곳인데 신설을 제한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안 후보 측은 부랴부랴 "병설이 아니라 단설"이라며 수정해 해명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헷갈렸다. 단설은 뭔데? 병설이 좋은 건 알겠는데, 단설은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단설유치원은 신설하면 별로 안 좋은 건가? 그래도 공립인데 좋은 거 아닌가?


여기서 잠깐. 단설유치원과 병설유치원의 차이점은 뭘까? 영유아교육법을 한번 찾아봤다. 유치원은 국가가 설립하고 경영하는 국립유치원, 지방자치단체가 경영하고 설립하는 공립유치원, 법인 또는 사인이 설립하고 경영하는 사립유치원으로 나뉘는데 흔히 말하는 단설, 병설유치원은 공립유치원에 속한다. 병설은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초등학교에 유치원을 병설한 유치원이고, 단설은 별도의 독립적인 건물에 설립한 유치원이다. 때문에 병설유치원은 해당 초등학교 교장이 원장을 맡고, 단설은 개별 기관이니 유아교육을 전공한 이가 원장을 맡는다.


하지만 이들 유치원이 종류별로 고루 운영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유치원 알리미'에 따르면 국립유치원은 3곳, 단설유치원은 321곳, 병설유치원은 4509곳, 사립유치원은 4451곳이다. 전국 유치원 9284곳 가운데 단설은 3.4%에 불과했다. 단설유치원은 이처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고 교육의 질이 담보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설유치원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내용은 유아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육아정책연구소가 학부모들의 수요를 중심으로 2014년에 연구한 '유아수용계획 수립을 위한 유치원 취학 수요조사 적용 방안'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 단설유치원의 신설을 한다니, 엄마들은 더욱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들은 "좋다는 건 알겠는데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 뭐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겠다"고 허탈해하며 안 후보를 비난했다. 그가 단설유치원 신설을 하겠다는 이유는 뭘까? 안 후보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페이스북에 썼다.


"통학의 어려움이 생기는 등 학부모 친화적이지 않으며, 여러 가지 국가재난 상황에 대한 대응이 어렵고, 교육 프로그램 등에 대한 맞춤형 관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주위의 작은 유치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학의 어려움이 생기는 등 학부모 친화적이지 않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단설유치원이 무슨 산꼭대기에라도 위치한 것일까? 통학의 어려움은 단설유치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어 희귀해서 생기는 당연한 문제다. '여러 가지 국가재난 상황에 대한 대응이 어렵다'는 근거는 단설유치원이 별도의 건물을 두어 규모가 크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육아정책연구소의 '공립유치원 설치·운영 현황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병설유치원의 평균 학급 수는 1.3개, 단설유치원은 2.3개였다. 반면 사립유치원의 평균 학급 수는 5개였다. 국가재난상황 발생 시 더욱 중요한 건 교사 1명이 담당하는 원아 수일 텐데,  '유아수용계획 수립을 위한 유치원 취학 수요조사 적용 방안'에 의하면 2013년 기준으로 교원 1인당 원아 수는 국공립의 경우 12.9명, 사립은 14.7명이었다. '교육 프로그램 등에 대한 맞춤형 관리가 어렵다'는 것 역시 규모의 문제로 본 것 같은데, 오히려 국공립유치원은 특수교육이 필요한 경우 교육 과정을 마련할 의무가 있는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 관리 감독 역시 다른 유치원과 동일한 규정 아래 이뤄지므로 설득력이 약하다.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대회'에서 연설 중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출처 : 유튜브 화면 캡처 https://www.youtube.com/watch?v=MzL8


결국 방점은 '주위의 작은 유치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데 찍힌다. 실제로 단설유치원 하나를 설립하려면 주변의 수많은 사립유치원이 반발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단설유치원이 생기면 주변의 모든 수요를 흡수해서 사립유치원은 생존의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발언이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이 개최한 행사에서 나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발언을 찾아봤다.


"지금 저는 유치원 과정에 대해서는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은 자제하고 (박수), 지금 현재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 운영 보장하고,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 인정할 겁니다. 또 유치원이 필요로 하는 교직원 인건비, 보조교사 지원, 교육과정 운영 지원 등 확대하겠습니다."


처음엔 병설이냐 단설이냐, 또 대형 단설이냐 소형 단설이냐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듯해 안 후보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말한 것이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현장 발언을 살펴보면 안 후보의 발언은 아예 사립유치원 측의 '민원'을 해결해주겠다고 작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발언 이틀 뒤인 13일, 육아 및 보육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민의당 비례대표에 당선된 최도자 의원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형 단설유치원으로 수요 공급을 제대로 안 맞추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립유치원 및 어린이집의) 민원사항이었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안 후보는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소신을 밝힌 것일까? 아니면 최 의원의 이야기만 듣고 그저 써준 대로만 읽은 것일까? 어느 쪽이었든 문제다.


엄마가 되어 지켜본 정치의 민낯


물론 단설유치원이 무조건 좋은 대안이고 사립유치원은 탐욕스럽기만 한 곳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위험할 것이다.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일 테고, 공립 못지않게 질 좋은 교육과 운영으로 학부모들에게 신임을 받는 사립유치원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공당의 대선후보가 한낱 이익단체의 민원을 들어주고 표를 구걸하기 위해 그런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보육, 나아가 교육의 문제를 그렇게 '표 장사' 정도로 가볍게 여겨서 될까. 보육 및 교육은 이 나라의 각종 사회적 이슈들과 얽혀있다. 가까이는 교사들의 처우 및 보육·교육의 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학부모(주로 엄마인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로도 연결된다. 이는 곧 온 나라가 걱정하는 저출산 문제로 이어지며, 노동력 감소와 국가경쟁력 저하라는 거대한 이슈로도 확장된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이끌고 가겠다는 사람이라면, 고작 표 좀 더 얻어보겠다고 유치원 문제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의 문제라서 그러나? 아니면 세력화되지 않은 엄마들의 문제라서? 안 후보가 그리는 국가의 그림은 대체 무엇인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숱하게 많은 생활 속의 문제와 그 문제들을 야기하는 제도적 모순을 목격한다. 이전엔 뉴스로나 들어봤지 전혀 체감하지 못했던 각종 비합리와 부당함을 마주하며,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상처와 타격을 입지 않으면서 내 아이를 지켜내고 이 사회에서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무언가를 고치고 개선하면 좀 더 나아질 것 같은데, 정작 그 일을 담당할 정치권의 관심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정치인의 시선은 항상 자신의 권력과 정치적 생존 문제에 향해 있다. 국민의 삶과 생활의 문제는 목적을 위한 수단처럼 여겨질 정도다. 정치부 기자 시절에 내가 본, 그리고 엄마가 된 후 지켜본 정치는 그랬다.


나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결코 이 사회가 경천동지 하게 진보하진 못할 것 같아서 회사를 그만뒀다.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라는 믿음 정도는 갖고 살고 싶다. 아이를 맡길 좋은 국공립유치원이 집 근처 곳곳에 있어서 골라서 보낼 수 있고, 그래서 안심하고 회사에 나가 일도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그래서 아이 낳는 게 걱정일 필요가 없는 사회라면 좋겠다. 그 정도라면 아마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 꽤 괜찮은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설유치원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길게 끄적이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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