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고은 Apr 23. 2017

엄마들에게 꼭 필요한, '정치'

'엄마 정치' 모임을 다녀와서

정장을 입고 7cm짜리 힐을 신었다. 모셔만 놓았던 핸드백도 꺼내 멨다. 이런 옷차림이 몇 년만이었나 계산해보니 5년 만인 것 같다. 첫 아이를 임신한 후부터는 힐과 이별해야 했고, 아이를 낳고 나선 늘 단화에 캐주얼만 하고 다녔으니까. 옷장을 뒤지고 뒤지다 결국 예전에 입던 재킷과 정장 바지를 꺼내 입었는데, 다행히 입지 못할 정도로 작아지지는 않았다.


항상 두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홀가분하게 혼자 밖을 나서니 낯설었다. 오늘은 아이들을 모두 남편이 맡아 돌보기로 했다. 지나는 길에 쇼윈도에 비친 모습을 보니 5년 전 회사 다니며 동분서주 뛰어다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뭉클했다. 아이를 낳은 후 내 인생과 나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그대로구나. 변하지 않았구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았구나.


목적지는 두 군데였다. 하나는 대학 동기의 결혼식. 엄마가 된 후 만나고 싶어도 만날 방법이 요원해져 버린 대학 동기들의 얼굴을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보고 싶었다. 그나마도 아이들이 젖먹이였던 시절에는 결혼식 같은 자리는 갈 수도 없었다. 남의 잔치에 빽빽 우는 아이를 데리고 가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수유나 기저귀 갈이 등 아이 뒤치다꺼리를 생각하면 축의금만 보내는 게 여러모로 현명했다. 모처럼 하객다운 모양새를 하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엄마 정치' 모임.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하나 전 의원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장하나의 엄마 정치'라는 칼럼을 토대로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만나는 자리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의 힘겨움, 모순, 불합리를 행동과 실천을 통해 바꿔나가자는 뜻을 모은 사람들이다. 나는 이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기다렸다는 듯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했다. 그리고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는 소식에 회사 후배들에게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후배들은 신나게 동의했고 또 함께 했다. 그래서 더욱 기뻤다.


'엄마'를 공공의 장으로 꺼내자


엄마는 매우 사적인 이름이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일. 이런 일은 가정 내에서 사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이런 역할은 주로 엄마들의 몫이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라지만 아직 이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은 엄마의 몸을 통해 벌어지는 사적 영역으로 치부된다. 엄마의 역할과 그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역시 아주 사적인 일로 여겨진다. 그 이야기는 주로 하소연과 토로, 눈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해법이 너무 복잡하고 먼 곳에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의 삶에 개입하는 요소들은 사실 공적인 영역에 많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부터 사회는 각종 지원과 보호 정책을 펴지만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 저출산 문제로 사회가 곧 망할 것처럼 떠들면서도 의료계는 공포심을 조장하며 산전 검사 횟수를 늘리고, 그것을 모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게 제공되는 정부지원금은 출산 전에 일찌감치 바닥난다. 돈이 없으면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하는 일에서부터 소외되는 셈이다. 엄마들은 엄마가 되는 문턱에서부터 장벽을 만난다. 장 전 의원은 이런 이야기를 칼럼을 통해 다룬 바 있다.


'엄마 정치' 모임에서 이야기 중인 장하나 전 의원, 현 환경운동연합 권력감시팀장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욱 많은 사회적 개입에 시달린다. 육아는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므로, 공공 시스템은 필요한 교육이나 정책적 지원을 소홀히 한다. 대신 그 틈새를 기업이 꿰차고 공포심을 조장하는 마케팅을 이용해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긴다. 육아 용품, 교육 상품을 들이밀며 아이를 위해 좋은 엄마가 되라고 유혹 혹은 강요한다. 아이를 보육, 교육기관에 맡기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기도 어렵다. 국가는 엄마들의 눈높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다. 고통은 고스란히 엄마들의 몫이 된다.


공적 시스템의 룰과 제도, 사회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다. 고통 투성이로 전락한 엄마의 삶을 바꾸는 것도 결국 정치다. 무슨 법과 제도를 어떻게 만들고 고치느냐에 따라 엄마들에게 지원되는 임신 출산 바우처의 금액이 달라질 수 있고, 기업의 장사 놀음에 우왕좌왕하는 초보 엄마들이 질 좋은 육아 교육과 부모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공공 보육 기관이 동네 곳곳에 설립될 수 있다. 정치가 바뀌면 엄마들의 삶은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도 달라진다.


'정치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엄마 정치' 모임은 그런 공감대에서 이루어졌다. 22일 서울여성플라자에 모인 약 30명의 엄마들은 이 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사회로부터 강요받는 모성에 대한 압박감,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고립감과 단절감, 경력이 단절되는 경험과 그로 인한 내면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인데, 이야기하는 사람이며 듣는 사람이며 후두둑 눈물을 떨궜다.


나도 눈물이 쏟아졌다. 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서다. "아이 키우다 경력 단절되다 보니,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싶더라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바지런히 무언가를 하려 했고, 자아를 잃지 않고 인생의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다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은 사라질 것만 같은 걱정,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 같은 공포. 그것은 말과 글로 다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었다. 하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이의 똑같은 심정을 이야기로 전해 들으니 저절로 눈물이 솟았다.


그리고 또 함께 분노했다. 하소연과 눈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한 엄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데 해결은 각자가 해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고 했다. 엄마들에게 정치가 절박한 이유, 또 절박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은 물론 내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의 인생이 걸린 이 중요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코 혼자여서는 안 된다.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 한다. 다른 엄마는 "엄마가 되고 나니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정치가 너무 거대한 접근법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작은 그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행동이다. 생각들을 정돈하고 목소리를 키워서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로 발전할 수 있다.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도, 이 사회도 바뀌지 않는다.


모임 후 친구의 결혼식에 늦어 달려가는데 오랜만에 신는 힐 때문인지 발이 부서질 듯 아팠다. 느지막이 겨우 식장에 도착해 축하를 하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도 인사를 건네면서 목도 탈 듯 말랐다. 그런데 어쩐지 조금 더 행복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둡고 습한 독박 육아의 터널을 지나 혼자 이곳저곳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현실 때문일까.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 자신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어서? 아마도 거기에 더해 한 가닥 희망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사회도 내 인생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좀 더 진보하지 않을까 하는 한 줄기의 희망.


당장 많은 것이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다. 더 많은 엄마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엄마정치 ;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엄마의 정치

https://www.facebook.com/political.mamas/


매거진의 이전글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한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