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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Jul 30. 2017

돌봄을 '시장'에 맡긴 사회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 돌봄 서비스의 확충을 바라며

육아의 'ㅇ'자도 모르던 첫째 아이 임신 당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야기는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먼 지역에 있지만 일을 하고 있던,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기 위해 복직 2달 전부터 시터 면접을 10여 차례는 족히 봤다고 말했다. 늦은 퇴근 때문에 입주 시터를 구해야 했기 1박을 해가며 '합숙 면접'을 실시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시터 이모님이 예고도 없이 그만두게 되면, 그 복잡하고 어려운 시터 구하기 대장정이 무한 반복된다고도 덧붙였다.


더 큰 충격은 베이비시터를 찾는 모든 과정이 '시터O', 'OO헬퍼' 등 사설 중개 업체를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었다. 똑소리 나는 내 워킹맘 친구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모든 과정 역시 똑소리 나게 혼자서 처리했다. 그런데 과정에 국가나 정부, 지자체의 역할은 단 1%도 없었다. 나는 그게 너무 놀랍고 이상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이비시터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 고용 계약을 하는 일 등 매우 중요하지만 까다로운 과정을 모두 각자 '알아서' 해내고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베이비시터 구하는 법', '이모님 계약 시 유의할 점', 'CCTV 설치에 대한 동의 구하는 법' 등 각종 노하우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내 아이의 양육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데, 그 과정이 모두 개인과 개인 간 1:1 계약 관계로 이뤄진다고? 맙소사. 그야말로 맙소사였다. 나중에야 정부에서 운영하는 보육 지원 서비스인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에게 물었다. "정부에서 보증한 아이돌보미 선생님을 고용하면 안정적이고 더 좋지 않아?" 그러자 돌아온 친구의 답이 더욱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잘 연결이 안 되니까 조금 알아보다가 아예 포기했어.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퇴근도 늦는데, 아이돌봄 서비스는 큰 애들은 종일 돌봐주지 않아. 게다가 애가 둘이잖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연계도 힘들다더라고. 우리 같은 맞벌이는 좀 비싸더라도 사설 업체 이용하는 게 필요한 대로 베이비시터를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이모님'이 아이 키우는 사회


낮에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 여러 돌봄 노동자를 만난다. 엄마, 할머니, 그리고 시터 이모님이다. 간혹 아빠도 있지만 정말 아주 간혹이다.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시터 이모님인 경우도 많다. 아이를 낳은 뒤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생각보다 많은 시터 이모님들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던 회사나 학교 선배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곱씹게 된다. "우스갯소리"라며 선배가 해준 이야기에 '웃펐던' 기억이 떠오른다. "조선족 시터 이모님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우리 아이들 억양이 조선족 말투가 됐지 뭐야. 하하."



그러고 보면 내가 만나본 시터 이모님 대부분은 조선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 베이비시터의 임금은 월 200만 원 이상부터 시작하지만 조선족의 시세는 그보다 수십만 원 낮다고 한다. 평범한 직장인 월 200만 원 안팎임금을 꼬박꼬박 지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 중 한 명의 월급 대부분을 고스란히 베이비시터에게 갖다 주는 생활을,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부모 모두 1년씩 다 쓰고 아이 취학 전까지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5년이다. 대략 200만 원 X12개월 X5 년=1억 2000만 원. 조선족 이모님이 넘쳐나는 이유다.


돈을 써서 해결될 일이면 차라리 나을지 모르겠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한 인들은 하나같이 살얼음판 위를 걷듯, 외줄 타기를 하듯 매일매일이 아슬아슬하다 했다. 어렵게 구한 시터 이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잠적해버려 출근을 못한 이야기나, 일찍 퇴근해 집에 왔더니 아이는 혼자 놀고 있고 이모님은 안방 침대에서 댓 자로 누워 자고 있더라는 이야기는 차라리 양반이다. CCTV로 아이를 방치하거나 윽박지르는 걸 목격했지만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크게 항의하지 못한 이야기,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집에서 "시터가 몰래 아이를 납치해 갔다더라"는 '괴담'은 여느 공포영화 못지않게 엄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매일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편치 않은 심정으로, 일과 육아를 내 뜻과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때문에 첫 복직을 앞두고 대신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를 찾을 때는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있는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시스템이란 게 기대 이하로 허술했고, 보육 기관에 아이를 맡기더라도 부모가 일찍 퇴근하지 못하면 결국 부모를 대신할 돌봄 노동자를 구해야만 했다. 믿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나는 사표를 썼다. 그래도 사표를 쓸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음에 감사해야 하는 게 현실임을 안다. 만약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나 역시 주변의 워킹맘들처럼 매일매일 종종대는 일상을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돌봄의 시장화, 국가가 나서야 한다


복직을 앞두고 베이비시터 정보를 찾다가 경악했다. 민간 사설업체를 통한 베이비시터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 없었다. 신분증, 건강진단서 등 기본적 서류를 제출하고 간단한 면접을 하는 게 전부다. 설사 아동학대 전력이나 전과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명확하게 선별 규제할 방법은 없다. 또한 민간 사설업체는 영세한 인력 중개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베이비시터를 '파견 가사' 근로 인력으로 중개만 할 뿐, 보육에 대한 전문 교육을 할 의무가 없고 실제로도 소홀히 한다. 물론 좋은 시터 이모님들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허술한 차원을 넘어 아예 '없다'고 봐야 하는 그 시스템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베이비시터의 신원을 보증하고 교육해서 중개하는 역할을 국가가 책임지고 맡으면 안 되는 것일까. '아이돌봄 서비스'가 바로 그것이다.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 베이비시터(공식 호칭은 아이돌보미 선생님이다)가 찾아가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서비스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보육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가정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2년에 도입됐다. 아이돌봄 서비스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의 자격 요건을 검증하고 장기간 의무 교육을 이수케 한다. 아이돌보미로 일하려면 80시간의 교과 학습과 10시간의 현장 실습이 의무적인데, 고용된 이후에도 매년 30시간 이내의 보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아이돌보미에게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등 고용도 안정적이다. 민간 사설업체보다 몇 배는 더 믿음이 간다.


아이돌봄 서비스 홈페이지 https://www.idolbom.go.kr


그러나 현실은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녹록지 않다.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아이돌보미 선생님을 배정받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저소득층 위주로 배정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신청순으로 순위가 정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지역 센터에 문의해본 결과 "실상은 그리 체계적이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용자와 아이돌보미의 주거지 및 출퇴근 조건, 이용 시간, 아동수 및 연령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한다. 결국 아이돌보미 선생님의 '공급'이 부족하니, 선생님의 일할 여건과 의사에 따라 매칭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때문에 수요가 가장 많은 시간(어린이집 등원과 부모의 출근 시간인 오전 8~10시, 어린이집 하원과 부모의 퇴근 시간까지인 4~7시)에 선생님을 배정받기는 정말 어렵다. 부모가 서비스 신청을 하면 지역 센터에서는 연계 가능한 선생님들의 의사를 물어 배정한다. 선생님들은 되도록이면 출퇴근 여건이 좋고, 돌보기 좋은 큰 아이들을 선호한다. 근무 여건이 좋으면 한 집에서 꾸준히 일하는 경우도 많아서, 신규 연계가 이뤄지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고 한다. 나는 아이가 어리고 둘이나 되니 연계가 불가능하다 싶었는데, 오전 시간에 신청하자 바로 연결이 됐다. 오전 시간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때문에 이용자가 별로 없어서다. 결국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 여부는 소득 등 자격 문제가 아니라 수급 문제로 결정된다.


우리 집에 오셨던 선생님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이라면 아이들을 맡겨도 되겠다 싶었는데, 워킹맘에게 베이비시터가 가장 필요한 시간인 저녁에는 이용이 거의 어렵다고 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돌보미 선생님들이 원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돌보미 선생님들의 2017년 시급은 6500원. 당해연도 최저임금에 겨우 맞춘 액수다. 자신의 가을 돌봐야 하는 저녁 시간에는 아이돌보미 선생님들도 굳이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받으려고 아등바등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퇴근이 늦고 야근이 잦은 기업 문화의 워킹맘들에게 아이돌봄 서비스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그래도 부모들은 베이비시터가 필요하니, 결국 수요는 사설 민간업체를 통해 충당다. 사설 민간업체 베이비시터의 시급은 통상 8000~10000원 수준이다.


아이돌봄 서비스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나는 대한민국 보육 정책의 철학이 얼마나 부실하고 의지 역시 박약한 지 몸소 느꼈다.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부모들에게 정말 필요한 가정 보육 지원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고 발전시켰을 것이다. 관련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아이돌보미 선생님들의 처우를 개선해서, 베이비시터 일을 하려는 이들이 민간 사설업체로 몰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민간 사설업체의 부실한 시스템과 허술한 관리 감독 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었다면, 적어도 민간 베이비시터의 시장 규모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민간 사설업체를 통한 베이비시터에게도 4대 보험을 적용하고 업체에 관리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적 안전망을 탄탄히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한 것 중 어느 하나도,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2013년 5월에 ‘베이비시터 관리 체계 개선’ 방안을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등에 권고했다. 아이돌보미와 민간 베이비시터의 동일한 자격요건, 민간 베이비시터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베이비시터 교육의 표준화, 민간 소개업체의 관리 감독 강화 등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았고 이후에도 여러 보고서가 나왔지만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없다. 정부가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시행 의지가 부족하거나 후순위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통과된 2017년 추가경정예산에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아이돌봄 서비스의 정부지원시간을 연간 480시간에서 600시간으로 확대 시행하는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노동시간이 긴 대한민국에서는 사실 연간 600시간도 충분치 않다. 연간 600시간이면 월 50시간, 주 5일 근무자가 이용가능한 서비스 시간은 하루 2시간 남짓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 4시면 하원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부모 중 1명은 6시면 '칼퇴'하고 집에 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동 환경이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 이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돌봐줄 가족 없는 맞벌이 부모의 아이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어린이집에 맡겨지거나, 돌봄노동자를 구하기 마땅찮은 엄마는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구조가 이래서 나타난다.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가 책임지고 시행하는 인증된 돌봄 서비스, 모든 노동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노동 시간 단축이다.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다면, 정부가 그토록 해결하고자 하는 저출산 문제는 일찌감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것이다. 베이비시터 때문에 종종거리는 주변 모든 엄마들도, 아이 돌봐줄 사람이 없어 사표를 쓴 나도, 정부에 기대하는 바 없이 자도하고 있는 현실은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다. 좋은 베이비시터를 만나는 일이 "로또"로 여겨지는 현실, "여자 인생에 최고의 복은 시터복"이라는 엄마들의 자조적인 농담에 정부는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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