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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Feb 21. 2017

'경단녀'는 일하고 싶다

'민폐 인력'으로 전락하지 않는 언젠가를 꿈꾸며

"아, 그럼 없었던 일로 합시다."


취업 사이트에서 어렵게 찾아낸 '재택근무'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 끝에 되돌아온 답이다. 이력서에 육아 문제로 퇴사를 했기에 프리랜서 혹은 재택근무를 원한다고 썼고 사측도 재택 근무자를 뽑는다고 써놓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 1~2회는 정기적으로 출근을 해서 업무 상황을 보고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랐다. 현재 풀타임으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고정적으로 시간을 정하기 힘들다고 하니 바로 "없던 일로 하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퇴사 후 줄곧 취업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일은 찾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도무지 없었다. 질적으로나 대우 측면에서나 괜찮다 싶은 일은 모두 풀타임에 정규직이었고, 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나 재택근무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노동일뿐만 아니라 대우가 너무 값싼 경우가 많아 굳이 아이 키우며 시간을 쪼개 일할 의미가 없었다. 조금 질 좋은 재택근무는 고정적으로 사무실 출근도 해야해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나같은 경우엔 곤란했다. 퇴사 후 이제껏 내가 한 사회경제적 활동은 글을 쓰고 약간의 고료를 받은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글만 써서는 돈이 안 된다.) 아주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별 성과가 없는 것을 보면, 이 사회에서 나처럼 아이 키우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극히 드물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인다.


졸지에 '민폐 인력' 되는 경단녀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의 엄마가 최근 한 공기업의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뽑혀서 퇴사 후 몇 년만에 출근을 한다고 했다. 주당 20시간, 즉 하루 4시간 근무하는 조건이다. 정부가 추진해온 시간선택제 확대 정책의 일환이다. 그나마 엄마들에게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 중 하나다. 부럽고 축하하는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근무 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치 모래를 씹는 듯한 까끌함이 입 안에 감돌았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뽑힌 사람은 2명. 회사는 출근 첫날 두 사람에게 한 명은 오전, 한 명은 오후에 출근해 서로 업무를 이어가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의문이 들었다. 애초부터 시간선택제 근무자는 온전한 1인분 몫의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20시간 시간선택제 근무자는 주당 40시간인 전일제 근무자의 반쪽짜리이니 당연히 2명을 뽑아 온 쪽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한 걸까? '20시간 근무자X2명=40시간짜리 근무자 1명'이라는 기계적 공식은 누가 만든 것일까?


아이 엄마인 2명의 시간선택제 근무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누가 오전에 일하고 누가 오후에 일할 것인가? 오전에 일하고 일찍 퇴근하면 아이들과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지만, 오후에 일하면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늦게 퇴근해 저녁 시간에나 아이를 돌볼 수 있다. 몇 개월씩 당번을 정한다면 운 좋은 누구는 날씨 좋은 계절에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오후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고, 다른 누구는 춥고 어둑한 저녁 늦게까지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맡겨두어야 한다. 고민 끝에 두 엄마들은 사이좋게 "한 달마다 교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사측은 싫은 내색을 보였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민폐 인력'이란 이름표를 달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그러잖아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확대하고자 해온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이 사실상 껍데기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공무원인 한 친구는 "시간선택제 근무자는 일반 근무자들에게 동료로 인정받지 못하고, 마치 아르바이트생처럼 단순하고 불연속적인 잡무만 맡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의 긴 노동시간을 전제한 조직의 시간표가 존재한다. 때문에 남들보다 노동시간이 적은 시간선택제 근무자에게는 책임을 요하는 중요 직무를 맡길 수 없다. 모두 모여 의사결정을 하거나 윗선의 지시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요할 때 자리에 없으니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저출산을 극복하고 양성평등을 지향한다는 목적으로 장려되고 있지만, 실제 노동 현실과는 괴리가 큰 허울 뿐인 제도로 전락한 셈이다.


무엇이 일하고픈 엄마들을 막는가


이케아 코리아의 안드레 슈미트갈(Schmidtgall)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5년간 가정주부로 지내며 경력이 없는 40대 여성을 채용해 놀라움을 산 일화를 소개했다. 슈미트갈 대표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상당한 관리 능력이 필요하고, 그런 능력이야말로 이케아가 중시하는 현장 경험"이라며 채용의 이유를 설명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충분히 훌륭한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많지만, 엄마로서의 경험은 또 다른 차원에서 인간적 성숙도를 높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일家양득 캠페인 동영상 화면 중 캡처. 고용노동부 공식 유튜브 채널.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는 꿈같은 이야기다. 여러 경험들로 무장된 훌륭한 여성들이라 해도 발 붙일 일자리는 별로 없다.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멀쩡히 잘 해오던 일을 그만둬야 하고, 어렵사리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려면 더 큰 장벽에 부딪히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엄마들은 가정에 신경 쓰느라 일에 100% 집중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우려는 백번 옳다. 여성은 집에서 가사와 육아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혼자 지고, 조직은 누구든 조직을 위해 하루 종일 헌신하길 원한다. 엄마들은 조직원으로서 적합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자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백번 옳지 못하다. 왜 가정에서 이뤄지는 노동의 책임은 대부분 여성에게 전가되어야 하는가? 통계청의 ‘2016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남성과 맞벌이하지 않는 가구의 남성이 가사노동에 쏟는 시간은 각각 40분과 47분으로 불과 7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는 3시간 20분, 6시간 16분으로 자그마치 3시간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말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일하건 일하지 않건 가사 노동이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얼마 전 전업주부 가사노동의 가치를 2017년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연봉 3745만 원이라는 뉴스를 봤다. 그러나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들에게 이루어지는 보상은 지극히 사적인 차원에만 머문다. 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가사노동에 매몰되는 바람에 가용한 사회적 노동력을 소진한 이들에게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사노동이야말로 노동 자원을 재충전케 해서 이 사회를 정상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주요 동력인데 무임금 노동이라니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이에 침묵한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일임하는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전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 동조하는 꼴이 아닌가?


또한 왜 우리 사회의 조직들이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 얽매이느라 효율성과 생산성을 뒷전에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알아보던 프리랜서, 재택근무 일마저도 사무실 출근을 필요로 한다는 건 이런 경직된 조직 문화가 사회 곳곳에서 뿌리 깊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랜 시간 엉덩이를 박고 앉아 "나 지금 일하고 있어요"라고 얼굴 도장을 찍어야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분위기, 일의 콘텐츠와 내용보다 형식과 절차를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는 경직된 문화, 복잡한 결재라인을 거쳐야 하는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 구조 등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노동 시간이 유연하지 않고 노동 효율이 낮은 이 사회에서, 몸이 하나뿐인 엄마들은 엘리트 사원은커녕 낙오자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처지가 되거나 실제로 낙오한다. 그렇다고 다른 '전력질주' 근무자들처럼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이 다 자라길 기다리려면 여성들은 50대나 되어야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젊고 건강한 때에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잘 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 일이 되어야 하는가? 어쩌면 누군가는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가정에 신경을 쓰면 누가 회사에 남아 일을 하겠느냐'며 꿈 같은 이야기를 떠든다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현실이 아닌 꿈에 가까운 이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도 육아도 잘 할 수 있게 돕는 시스템을 고쳐 만들고 모두가 동의해 실천하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에게 유난히 행복해 보이는 북유럽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일하지 않는 여성, 아이가 있는데 일만 하는 남성을 이상하게 바라본다고 한다. 그렇게 살지 못해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자, 올해 있을 대통령 선거의 예비후보들은 그 울분을 달래주기 위한 양성평등 정책을 앞장서서 내놓고 있다. 과거 대선공약집의 끝자락에 구색 추기 으로 끼워져 있던, '여성 정책'이란 협소한 시각의 제목을 떠올리면 그래도 많이 나아지긴 했다. 반가운 일이다. 어서 빨리 좋은 정책들이 실현되길 바란다. 꿈의 현실화가 머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높아진다.


하지만 당장 나의 현실로 돌아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이를 키우니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쓰는 게 당연하다"던지, "결과물만 좋다면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던지,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인 사람은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꿈 같은 이야기가 상식이 되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부디, 내가 또다시 취업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반가운 소리를 듣게 되길 바랄 뿐이다. "없던 일로 합시다"라는 이야기 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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