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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전 Jun 05. 2023

내 사랑은 수명이 아주 짧아서, 한 번 개봉한 사랑은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상해버리곤 했습니다. 과거가 되어버린 당신들과 두 계절을 함께했던 적이 있었던가요. 원래 그런 성질을 띠고 있는 건지 보관법이 잘못되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계절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봄에 피어난 당신은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계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반짝이는 눈과 상기된 목소리는 벌써부터 여름의 햇빛과 녹음을 품은 듯합니다.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인지, 당신은 여름을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한껏 뜨거웠다가도 이내 스스로도 버거워할 정도로 습해지기도 하고, 이따금 장마가 오거나 태풍이 불기도 합니다.

당신의 여름이 궁금했습니다. 여름을 부를 때 반짝이던 눈은 그 이름 안에서 얼마나 빛날지, 또 당신의 목소리는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왕이면 가까이서 보고 듣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여름을 함께 보내고 싶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여전히 두려우나, 그래도 함께 장마를 보고 태풍을 견뎌내는 우리를 남몰래 그려보곤 했습니다.

5월이 끝나가니 매실이 철인가봅니다. 퇴근길에 늘 지나던 청과물 가게에서 매실이 가득 담긴 망을 보았습니다. 아직 설익어 노란 빛깔이 채 가시지 않은 매실은 오월의 마음을 제법 닮았습니다. 지금 꺼내자니 아직 설익었고, 여름을 기다리자니 그전에 상해버릴지도 모르는, 매실을 닮은 늦봄의 마음입니다.

설익은 매실을 사들고 가는 저들은 곧 저 매실로 청을 담그겠지요. 할 수 있다면 사랑으로 청을 담가 여름의 당신께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겠지요. 이것이 나의 봄이었다고. 잘 간직해 여름까지 가져왔다고. 그것으로 여름날 당신의 갈증이 해소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혹시 매실을 좋아하시냐고 넌지시 물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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