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004년 가을. 벌써 세 번째 옮기는 고시원. 창문이 없어도 일어날 기운이 있게 하는 그런 곳. 곰팡이가 피어도 좋고, 바퀴가 나와도 좋다. 그러나 사람이 보이는 곳.
첫 번째 고시원은 노인의 천국이었다. 초록색의 우레탄 방수칠이 되어 있는 옥상. 식당용 참치캔에는 담배꽁초와 빗물이 고였다. 넘칠 것 같은 시간의 잔상. 대나무 장대에 주홍색 빨랫줄이 늘어져, 쉰내 나는 빨래들은 바람을 기다렸다. 썩어 가는 나무 평상 위, 누런 메리야스를 입고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애먼 전신주를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삼켰다 뱉는, 할아버지의 이마에는 구름 모자가 생겼다.
두 번째 고시원은 회사원의 천국이었다. 오래되었지만, 역 앞에 있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십만 원 정도 비쌌다. 그래도 삼십 분이라도 더 잘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거기에 라면과 흰쌀밥이 무제한 제공되었다. 물리는 음식이라, 이렇게 한다는 걸 눈치챘다. 가난한 채 서울에 진입한 이들. 그 빨간 국물이, 밀가루로 찬 거북한 속을 달래 주었다.
세 번째 고시원은 현재 있는 공간이다. 앞서 말한 두 가지의 모습이 공존하는데, 좀 더 복합적인 공간이다. 방마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제공되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 창문 없이 산다는 건 시계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공간을 알게 된 후, 창문보다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는 이런 삶을 지탱하던 위대한 이 세계가 있었다.
나의 이름은 용맹전사. 기사로 태어나, 아덴 월드를 누비며 온갖 퀘스트를 깨고 몬스터를 해치우며 아데나와 아이템들을 습득했다. 새로운 장비를 구매하곤 했다. 그중에는 심장이 무너질 것 같은 행위가 있었다. 이름하여 아이템 강화. 일명 지르기. 무기나 방어구를 업그레이드하는 시스템이다. ‘무기 강화 주문서’ 또는 ‘방어구 강화 주문서’라고 불렸다. 주문서를 장비에 올려두고 마우스로 클릭해서 장비가 사라진다면, 창이 없어도 시린 외풍이 들었고, 만약 시스템창에 ‘당신의 장비가 파랗게 빛난다.’는 멘트가 뜨면, 내 방은 광휘의 빛이 모니터로 새어 나왔다. 주먹을 꺼내어 흔들었다. 성공, 그 존재를 일깨워 줬다. 이 세계는 리니지라는 MMORPG 게임이다. 일일 동시 접속자 수가 평균 4000명, 동시대 게임으로써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겼고,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겼다. 하지만 독고다이처럼 누구랑도 어울리지 않았다. 사냥과 러시를 즐겨하던 나에겐 그런 관심이 없었다. 게임을 하던 어느 날,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유저가 있었다.
“님.” 그 캐릭터가 말했다.
“네?” 내 캐릭터가 답했다.
“혹시, 용기 있으세요?” 그 캐릭터가 말했다.
용기란 사전적 단어인 ‘씩씩하고 굳센 기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기개나 정신’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기사 클래스의 공격 속도를 두 배 향상해 주는 물약을 지칭했다.
“네, 하나 드려요?” 내 캐릭터가 답했다.
“제가 창고에 아데나를 두고 와서 혹시…” 그 캐릭터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여기요, 그냥 드세요.” 그 캐릭터 앞에 물약을 5병 정도 내려놓고 답했다. 화면 속 상대방의 발 앞, 보라색 액체가 가득 찬 병이 보였다.
“헐… 나중에 꼭 갚을게요, 친추해요!”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우리는 각자의 사냥터로 떠났다.
이 게임의 본질을 모르는 이에게는 아마도 우스워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이 만든 게임 속 세상. 사람이 사는 곳보다 더한 사람의 냄새가 났다. 아데나라는 돈을 벌고, 상점에서 썼다. 개인과의 거래, 결혼, 혈맹, 대통령처럼 성을 차지하는 권력자도 존재했다. 그것을 관찰하는 신, 운영자의 모니터링 시스템. 이것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 나 같은 아웃사이더들에게는 세상을 배워 사회로 나가기 위한 발돋움 장치였다.
“저기 님, 혹시 시간 되세요?” 그 캐릭터에게 귓속말이 왔다.
“하이요. 네, 가능해요.” 나는 친구 추가가 한 명뿐이었기 때문에 단번에 누군지 알았다. 그 캐릭터는 저번에 빌린 신세를 갚고 싶어 했다. 마을에서 만나자고 했다.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끈질긴 귓속말 끝에 마을로 ‘귀환 주문서’를 클릭했다. 어디에 있던 마을로 돌아가는 참 편리한 아이템이다.
가끔은 가까이 있는 우리 집으로 귀환하고 싶었다. 하얀 마법 기둥, 솟아오르는 캐릭터를 보며 고개도 함께 올라가곤 했다. 세월의 흔적, 글자가 지워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두었다.
“교환창 열게요.” 그 캐릭터가 말했다.
‘/교환’이라는 명령어를 치면 서로의 아이템을 교환할 수 있었다. 화면에는 거래창이 생겼다. 10병의 용기의 물약이 올라와 있었다.
“너무 많아요. 괜찮은데…” 모니터 너머로 그 사람의 얼굴이 느껴졌다.
“나누며 살아야죠. ^^” 그 캐릭터는 웃음 이모티콘을 만들었다. 우측 아래 ‘예/아니요’ 버튼을 보며 커서를 천천히 옮겼다. ‘예’를 눌렀다.
“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 캐릭터가 말했다. 두 배로 늘어난 물약은 그 어떤 러시의 성공보다도 마우스를 떨리게 했다.
“혹시 같이 사냥하실래요?” 친구가 되고 싶어 물었다. 그게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살을 맞대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임을 시작하기 며칠 전, 나는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시나리오를 몸소 체험했었다. 고시원에 도착해서 적응을 하고 있었다. 욕실, 화장실, 주방, 옥상을 꼼꼼히 체크했다. 네 번째 고시원을 찾지 않겠다는 눈매로.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나는 한겨울 길을 걷다, 바가지에 한가득 찬 물을 맞았다. 등 뒤로 쫙— 뿌려지는 그 소름 돋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어두운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서리가 낀 북풍이 들이닥쳤다. 다른 방의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너 혹시, 맞니?” 복도 벽, 여덟 살까지 들어왔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가 작게나마 흔들렸다. 그날의 기억. 그 목소리는 균열의 틈으로 가족을 밀어 넣고, 주먹으로 막았다.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속으로, 왜 하필 여기야. 눈을 감고 천장을 바라봤다.
“어, 맞아.” 나는 몸만 돌며 대답했다.
“놀랐어. 여기엔 왜 온 거야?” 그는 미간을 살짝 모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선 그의 방으로 갔다.
두 명이 앉을 수 없는 방, 수척해진 두 사람은 한 사람처럼 앉을 수 있었다. 작은 침대의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싸구려 스프링마저 삐걱하지 않았다. 서로의 고시원 입성 스토리를 대충 나눈 후, 나중에 보기로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작은 침대가 관짝처럼 열려 있었다.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관에 누워 네 번째 고시원으로 옮겨야 하는, 노마드의 삶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악몽을 꾼 듯했다. 눈을 뜬 새벽,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도망가? 하고. 뭐라도 해야 했다. 몇 개의 칸막이 건넌방에 있는 그가, 다시 나를 여덟 살로 만들 것 같았다. 컴퓨터에 전원을 켰다. 그리고 리니지를 다운로드했다. 방대한 세계의 크기, 오랜 시간 걸리는 설치. 그 시간 동안 지울까, 말까를 고민했다. 이보다 몇 년 전, 중독이 되었다가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었다. 끊었던 이 세계로의 초대. 하지만 이 세계에서 관짝에 누워 죽느니, 그 세계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부터 나의 세상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리니지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사냥 좋죠, 같이 가요.” 그 캐릭터가 말했다. 몇 주 동안은 같은 새벽 시간에 만나 사냥을 했다. 채팅을 하며 점점 가까워졌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내 캐릭터가 말했다. 이곳에서 나이를 묻는 건, 곧 실제로 친구를 하고 싶다는 말과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혈맹 모임이라든지, 문자 메시지, 전화 등으로 친분을 쌓아 갔다. 심지어 결혼까지 하는 사람을 뉴스나 신문에서 접했다. 친구가 된 캐릭터의 주인은 위로 띠 동갑이었다. 레벨은 몰라도, 나이로는 인생의 선배였다.
우리는 ‘말하는 섬’이라는 곳의 여관을 빌려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좀 더 프라이빗한 비밀 대화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형이라고 부를게요.” 나는 먼저 말했다. 친구보다도 차라리 든든한 마음의 형이 좋았다.
“그래, 동생. 잘 지내보자.” 그는 말했다. 살아오며 버텨 온 이야기, 연애 이야기처럼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이어 갔다. 어렵게 누른 키보드, 쉽게 지운 문장들. 서로 조심스레 말 한마디씩을 나누었다. 그 형은 연이어서 가게를 세 개째 하고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참치집을 운영했었고, 두 번째는 라멘집, 세 번째는 PC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 말한 두 업종은, 간판의 볼트가 빗물에 녹슬기도 전에 내려야 했다. 이어서 여덟 살 이후 내가 겪은 특이한 체험과 그 공간을 듣더니, ‘정말?’이라는 말을 열여섯 번은 한 것 같았다. 재떨이 참치캔, 라면 국물, 컴퓨터 달린 방. 스쳐 지나간 고시원 유목민, 생활의 잔상들. 그 형과 나의 인생이 겹쳐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나의 속은 정말 개운했다. 그래서 뭐든지 가슴이 막히면 고해성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게임이라는 성당에서, 서로의 신부님이 되어 주었다.
“데리러 갈게. 주소 불러 봐.” 형은 딱 한 번만 묻고 더는 묻지 않았다. 십 분, 이십 분. 여관에는 두 캐릭터가 말풍선 없이 마주 보고 있었다. 모니터 밖의 나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키보드만 만지작거렸다. 멈춰 있는 두 캐릭터 사이에 손이 움직였다. 나는 그 형의 모니터 앞으로 끌어당겨졌다. 주소와 연락처를 찍어 말풍선에 띄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숨을 여러 번 나누어 뱉었다. 한 시간 정도 후, 관짝 위에서 진동이 울렸다. 정말 형일까. 아이디 용맹전사의 용맹함은 없어진 것 같았다. 던져두었던 전화기를 살짝 열었다. 머리를 긁었다. 몇 마디를 나누었다. 문고리에 걸어 두었던 잠바를 걸쳤다. 고시원 3층 계단을 한 칸씩 밟으며 내려갔다. 새벽 5시 반. 동이 막 텄다. 도로에는 어두움과 밝음의 경계가 만들어졌다. 잘하는 일일까, 생각이 계속되었다. 은색 EF 소나타를 찾아 목을 빼고 두리번거렸다. 초록색 번호판이 두드러지는 차 한 대가 고시원 앞에 정차했다. 잠시 문이 머뭇거렸다. 다른 세계에서 만났던 우리는 한동안 말풍선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라도 먼저 채팅을 하면, 정말로 이 세계의 경계를 넘기 때문이다. 말하는 섬 여관에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섬이었다. 그러나 길에는 은빛의 말을 타고 온 기사가 서 있었다.
얘기했던 PC방에 가기로 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30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주차장 옆, 팥죽색 타일들이 붙어 있는 오래된 상가였다. 3층에 자신이 운영하는 곳이 있다며 녹슨 간판을 가리켰다. 계단을 타고 올랐다. 그 형은 나에게 밥은 먹었는지, 술은 할 줄 아는지 물었다. 처음 만났지만 언제나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손길이 자연스럽게 어깨에 닿았다. 그 형도 나에게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 같았다. 게임 이용료는 무료라며 마음을 놓으라고 했다. 자신의 옆자리에 PC를 켜고 나를 앉혔다. 붉은색 ‘Lineage’ 아이콘을 클릭하고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기사의 빛나는 모습 아래 ‘용맹전사’라는 아이디가 눈에 밟혔다. 나는 더 큰 세상에 로그인을 했다. 모니터에 비친 낯선 얼굴이 보였다. 리니지 「은둔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형은 잠시 외출을 했다.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PC방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텅 빈 공기를 곁눈질했다. 계단의 콘크리트 울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문 끝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마른침만 삼키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형이 걸어와서 옆에 섰다.
“어디 갔다 왔어요, 형?” 나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 형은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마우스 옆에 툭ㅡ 하고 내려놓았다. 서리가 낀 가슴이 녹듯, 흐르는 물방울이 선명한 맥주캔 하나가 보였다.
“우리도 용기를 가지고 살자.” 형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맥주캔을 땄다. 시원하고 따뜻했다.
우리 사이에는 또 다른 거래창과 한 병의 용기의 물약이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