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설산골(先雪山骨)

단편소설

by 이겸

선설산골(先雪山骨)





나는 일어나 선풍기를 껐다. 안팎의 온도가 다른 이불을 갰다. 새벽 잠결에 느껴진 겨울의 기운.

몸에 남은 여름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딘가에 남아있을 나의 계절이 궁금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쌌을 때, 벽에 붙은 온도계는 내려가고 있었다. 손바닥을 올려 잠시 멈추게 했다. 오르내리는 것보다 고정된 게 좋았다. 삶의 유의미함을 찾지 못했고, 떠나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창문 밖 침묵에 쌓인 하얀색 차 한 대를 보았다. 눈이 날렸다. 한 송이가 나뭇가지에 걸렸다. 신발을 구겨 신었다. 문을 열어 다가가 손등에 태웠다.

느끼기 전에 사라졌다… 그 순간을 기억 속에서 빌려 다시 꺼냈다.


“혹시 어디로 가세요?” 나는 차의 주인에게 말했다. 그는 파카를 입고 있었다.

“먼저 오는 계절을 따라서요” 그는 말했다. “제가 보이나요?”

“차 위의 하얀 눈처럼 잘 띄어요. 계절을 따라간다고요?” 나는 말했다.

“방향이 같나 봐요.” 문을 열고 닫자, 천장에 쌓인 것들이 움찔했다.

“그쪽으로 가려한 건 아닌데요.” 나에게 여름은 피로한 계절의 사잇길. 쉬면 다시 마주쳐야 했다. 가보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방향을 이미 알았다. 나는 타올랐지만, 얼어붙을 수도 있었다.

“저는 단지 그늘을 바랐어요." 겹치거나, 겹치지 않는 절기가 있는 것 같았다. 차를 보는 순간 알았다. 끌림을. 호기심 보다 먼저 다가간 손. 눈꽃 한 송이로 느낀 나의 온도를 알았다.

“저도 좀 태워주실래요?”

“그러죠 뭐. 방향이 같으니까요.”


짐을 챙겨 하얀 차에 탔다. 나의 비밀이 담겨있었다. 어떤 기대를 가지고 탄 건 아니었다. 내려가는 온도를 느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삶의 주행에서 덜커덩하고, 때로는 평탄하며 가끔은 멈춰서 목적지에 내린다. 일상 속에 운전하며 지나쳐왔던, 계절의 감각에는 무디다. 차 문을 열고 발이 땅이 닿기 전까지는 모른다, 나의 계절을. 나는 짐을 만지작 거렸다. 와이퍼가 움직였고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차의 히터가 두 귀를 스쳤다. 매미 소리가 멈췄다. 주택과 시내를 거꾸로 흘려보내고 차량이 드문 도로에 들어섰다. 사이드미러에는 천장의 눈발이 날리지 않았다.

“괜찮아요?”

“네? 뭐가요?”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스쳐가는 침묵들의 이름을 지어내고 있었다.

“겨울로 가는 거요.” 걱정 섞인 숨을 뱉으며 말했다. “처음인 것 같아서 물었어요.”

“처음 아니에요. 이 여름에 눈을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하긴. 어딘지 궁금해요?”

“약간요. 어디에 가면 그 계절이 있는지요” 창밖에는 뙤약볕이 내리고 있었다.

“선설산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어요. 눈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내리죠.” 그에게 돌아가고 있는 고개를 붙잡았다. 창밖에 달린 거울을 바라봤다. 도로의 끝이 모이고 있었다.

“이름이 이상하네요. 그저 추운 지역처럼 눈이 쌓여있는 곳 이겠죠.”

“먼저 눈이 내리는 마을이라는 뜻이래요.”

“아무튼 그렇군요.” 미적지근한 말을 주고받았다.

살아가면서, 어느 곳 어느 정도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머리가 알기 전에 배웠다. 나는 짐가방을 끌어안았다.

“믿지 못하시죠?” 그는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그랬어요.” 운전대 앞으로 하얀 입김이 서리고 있었다. 곁눈질하며 호흡을 지켜봤다. 계기판에 보이는 온도계는 내 것과 동일했다. 나는 여름의 옷을 입고 있었다. 반대로의 사는 그에게 궁금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창문을 조금 내렸다. 서늘함이라는 이름의 침묵이 들어왔다.

“저는 침묵들이 좋아요.”

“… …” 대답은 없었다.

“저는 쓸데없는 대화가 싫어요.”

“… …” 대답은 또 없었다.

“저는 상처 주는 말들이 미워요” 침묵은 계속 흘렀다. 차는 달렸다. 바퀴를 타고 올라오는 돌조각의 형태가 그려지는 듯했다. 그것들은 차량의 바닥을 치기도 했다. 언제 타이어가 찢어지거나, 바닥이 고장 날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운전을 계속했다. 가방에서 작은 간식을 하나 꺼냈다.

“감언이설이라는 말 아세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거죠.”

“제가 그랬어요.” 간식을 만지작 거렸다.

“그게 상처였어요?” 날 보며 말했다. 그리곤 내 손에 든 간식을 쳐다봤다.

“하나 드릴까요? 주는 건 어렵지 않아요.” 나는 말했다. “받는 게 어려울 뿐이죠.” 작은 간식을 뜯었다.

“그렇군요. 저와는 반대네요.” 공감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끄덕임. 시선은 떠오르는 새 침묵을 향해 돌아갔다.

“완전 시골길이네요. 여긴 어디죠?”

“마을 입구로 가는 길이요.” 팔 월의 여느 농촌의 풍경처럼, 모든 것이 파랗게 바람에 쓸려가고 있었다. 하늘은 작은 새 한 마리 없이 고요했다.

“하ㅡ. 이것 보세요” 나는 입김을 불며 말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숨이 가파오를 때까지 불어봤다.

“가까워졌네요.”

“파카 남는 거 있으면 빌려주실래요?”

“여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괜찮을 겁니다. 꽉 잡으세요.” 운전대를 잡은 그를 쳐다봤다. 고개가 높게 들렸다. 경사를 올라갔다. 차는 기이한 굉음을 냈다. 출렁이는 배를 탄 것 같았다. 멀미가 시작됐다. 고개를 숙였다. 차량 매트에 입김을 뱉었다. 울렁이는 시선이 계속되었다. 모래와 자갈이 건조하게 밟히고 떨어지는 소리가 반복되었다. 명치가 잡아 끌렸다. 잠시 의식을 잃은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 전까지, 난 눈을 뜰 수 없었다.


뽀드드득, 바퀴에 숨는 여름의 눈. 생경한 밟힘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소리 들려요?”

“못 일어나겠어요…”

“이번이 아니면, 다신 못 볼 지 몰라요.” 그는 내 귀를 속삭이듯 흔들었다.

그 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를 붙잡았다. 의자에 앉아서 작게 고개를 들었다. 와이퍼는 빠르게 움직였다. 숨은 여전히 고르지 못했다. 무언가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우리 마을 크기 보다 더 넓은 들판, 하얗게 내리고 있는 눈들이었다. 아주 천천히,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늘의 색과 뒤 바뀐 것 같았다. 그곳에 내렸다. 들판의 가운데에는 넓은 구멍이 보였다. 한 참을 쳐다봐도 그곳에 눈은 쌓이지 않았다. 내 몸이 하얗게 되어가는데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여름의 겨울, 겨울의 여름을 보았다.

“저기 저 검은 구멍은 뭔가요?” 손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저긴 그쪽이 사는 곳의 여름이죠.”

“제 여름이요? 그게 무슨 소리죠?”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말을 남기고 차로 사라졌다. 불렀지만, 답은 없었다. 그를 따라 차에 올랐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저니, 여름이니 하는 말요.” 문을 닫았다. 창문들이 파르르 떨렸다.

“누구나 겨울과 여름은 공존하죠.” 그는 말했다. “저렇게 큰 구멍은 처음 봐요.”

“제가 여름이고, 그쪽은 겨울이라는 소린가요 그럼?”

“그쪽은 얼지 않아요. 전 얼어버리네요.” 알 수 없는 말을 뱉은 그 사람을 쳐다봤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시동을 걸고 히터가 나왔다. 몸에 쌓인 눈이 녹았다. 뜨거웠던 날들이 식는 것 같았다. 몸에는 희미한 김이 나고 있었다. 나는 매미처럼, 온몸으로 눈을 털며 울어댔다. 겨울과 여름에서 사는 사람.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의 남은 계절을 찾아보기로 했다.

바퀴는 눈을 타기 시작했다. 쓸려지는 눈의 웃음으로 귓가가 간지럽기까지 했다. 차는 전보다 덜 흔들렸다. 어쩌면 벌써 겨울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내린 들판을 둘러서 달리고 또 달렸다. 짐가방을 잠시 내려 두었다. 창밖을 봤다. 침묵보다 빠른 풍경이 따라왔다. 설원의 침묵은 하늘을 바라봤다. 소리 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집이요. 들판 넘어 골짜기에 있어요. 그곳은 눈이 내리지 않아요.”

“네?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나요? 눈을 봐서 좋았는데요…” 짐가방을 움켜쥐었다.

“이 마을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해요. 말해도 이해할 수 없어요. 겪어야 해요.”

“제가 처음이 아니죠?”

“네. 그 큰 구멍처럼.” 침묵은 다시 내 창가로 날아와 앉았다. 꿈같지 않은 꿈과, 현실 아닌 현실이 나의 목을 또 조르고 있었다. 침묵. 그것은 겨울과 여름의 차이처럼, 뜨겁거나 차가운 소리의 진공 같았다. 흔들리는 바퀴는 여전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도착한 겨울의 집. 선설산골의 유일한 가옥. 세 칸 정도로 작았고, 곳곳에 기와가 부서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궁이에는 숯이 까맣게 탔다. 담장이 없는 마당은 온 세상 같았다. 산 바람이 불어왔다.

“여기가 그쪽 집인가요? 정말 눈이 안 오네요.”

“제 집은 아니에요.” 그는 어느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척이 없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어디 가요?” 나는 말했다. “저는요?” 짐을 끌어안았다. 처마를 보면서 하ㅡ 입김을 뱉었다. 눈을 감았다. 하늘과 땅의 작은 파동들을 느꼈다. 어느새 떨리는 몸에 힘이 들어갔다. 짐가방을 열었다. 코펠과 버너를 꺼냈다. 맑은 눈을 찾아, 지나온 경계선을 걸었다. 한가득 담아 돌아와 버너에 올렸다. 불을 붙이기도 전에 물이 되었다. 불을 붙였다. 기포가 되어 터지고 끓어오르는 수증기, 찬 공기에 닿은 평온의 오름을 보았다. 라면을 꺼내어 부쉈다. 붉은 수프를 넣고 하얀 면을 넣었다. 코를 찌르는 매콤한 향취가 마을을 흔들었다.

“라면 드시려고요?” 경첩의 끼이는 녹이 벌어졌다.

“네. 뭐.” 나는 말했다. “근데, 손님 대접이 별로네요.” 라면을 휘적였다.

“미안해요. 설명을 못했네요.”

“네. 또 나중에 알게 될 거라는 거죠?”

“네. 정말입니다.”

불을 껐다. 코펠 뚜껑에 면을 한가득 올렸다. 후루루룩ㅡ 면을 소생하는 바람의 개운함이 마을을 붙잡았다. 후루룩ㅡ 국물이 쓸어가는 침묵의 한 모금이, 따라온 눈송이를 녹였다. 선설산골에 작은 침묵이 찾아왔다. 서로의 공간, 남은 열기만이 움직였다. 라면을 먹고 또 나누었다. 국물을 삼켰다. 입술이 부었다.

“저, 이거.” 그의 손에는 뚜껑이 덮인 밥공기가 들려있었다. “찬밥입니다.”

“고마워요.” 뜨겁지만 차가운 한 공기, 식은 겨울이 서로의 온도를 찾아내며 섞였다. 입속에 담겼다. 버려진 국물은 흘러, 담벼락이 없는 세상을 잔잔히 물들였다. 하얀 설원에 그려진 노을을 닮아있었다. 구름과 산등성이 사이에 숨어있는 침묵의 별들이 고요한 재채기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우리는 말했다. 동시에 말했다. 눈을 잠시 마주쳤다.

“잠시만요.” 다시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달은 떠올랐다. 침묵은 뒤에 숨었다. “이거…” 커피를 건네주었다. 우리는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손과 잔의 온도가 뒤섞였다.

“좋네요…” 잔에 떠오르는 것 들을 바라봤다. 그 속에서 많은 것 들을 바라봤다.

“간식 하나 줄래요?” 그는 땅에 발을 살짝 비비며 물었다. 짐가방을 뒤적였다.

“비밀 하나만 알려주면, 저도 비밀을 알려줄게요.” 간식을 손에 쥐었다.

“흠...” 그는 망설였다. 커피잔에 입술이 붙었다.

“어차피 알게 될 거라면서요.”

“아는 건 많지 않아요. 저는 구멍이 들판을 덮기 전에 떠나야 해요.” 둘을 담고 있던 커피의 진동이 멈췄다.

“제가 그 여름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너무 뜨거워서 그런가요?”

“이곳의 규칙 하나를 들었어요.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 다른 마을의 주민을 데려온다.”

“그래서 절 찾은 거라고요?”

“아뇨, 저는 찾지 않았아요.” 그는 커피잔에 김을 불어내고 있었다. “서 있었어요. 매일. 어디에서든.” 나는 그를 발견했고, 알아봤다. 눈이 덮인 하얀 차와, 날렸던 한 개의 눈송이를. 기억했다, 손에서 녹은 눈송이, 그 온도를.

“당신. 원래 여름이었군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름이었어…”

그는 말없이 어딘가를 응시했다. 숨어버린 달 뒤의 침묵을 찾는 것 같았다.


그날들이 떠올랐다. 서성이던 나날들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삶은 나를 차갑게 만들지 못했고, 계속 뜨거워야 했다. 나를 대신할 온도는 어디에나 있었다. 나를 강요했다. 뜨겁게 또 뜨겁게. 나는 차가워지는 방법을 까먹었다. 잊었다. 잃어버렸다.

“말해보세요. 그래서 나한테 보였던 거죠?”

“말해도 믿지 못할 거예요.” 그는 말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줄 순 없나요?”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 …” 말을 잇지 못했다. 궁금함 보다는, 그 뒤의 내가 설 장막이 스쳐갔다.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이미 모든 건 시작된 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선설산골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구멍은 원래 없었거나. 내가 만들어낸 여름 같았다.

“그럼, 말해볼까요?”

“글쎄요...”

“이곳엔 한 명만 존재할 수 있어요. 저는 떠나야 합니다.”

“네?” 나는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나보단 당신에게, 이 겨울이 더 필요하니까.” 툇마루의 찬 기운이 서까래를 타고 퍼졌다. 마을의 풍경은 숨을 쉬기 어렵게 했다. 가슴은 하얗게 얼었다. 그와 나는 같은 계절이었지만, 온도가 달랐다. 나는 같은 것도 지웠다. 나는 그를 멀게 했다.

“내가 갈게요.”

“그렇지만, 이미 만들어졌어요. 당신의 구멍이에요.”

“원래 구멍은 작았나요? 그전, 집주인이라던지요.” 식어 버린 커피를 마셨다.

“언덕을 오르고, 들판이 나올 때. 그 사람의 구멍이 나타난데요.” 그는 말했다. “전 작았어요, 당신의 여름이 더 뜨거웠나 봐요.” 나는 마을 입구에서 멀미를 했던 기억과, 눈의 소리가 떠올랐다. 그 구멍은 들판을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당신의 여름은 차가웠나요?”

“글쎄요… 그 차가움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요? 단지, 당신의 뜨거움이 저보다 큰 걸 봤네요. 누군가를 따스하게, 아니. 그걸 넘어 뜨겁게 하는 게 당신의 위안이었겠죠. 정작 자신은 얼어붙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리고 내 앞에 서서 손을 비볐다. 나에게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요? 당신의 뒷모습은 언제나 겨울이었어요. 그걸 보지 못하는 것뿐이지만. 나는 이 파카를 벗으면, 다시 여름으로 돌아가겠지만. 차가웠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며 돌아갈 거예요. 이제 당신도, 당신보다 더 큰 구멍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구멍이 더 큰 그대여. 행운을 빌어요.”


좁은 방에서 매미의 유충처럼 웅크리고 겨울잠에 들었다. 일어나 보니 툇마루에는 그의 파카가 놓여있었다. 팔을 한 짝씩 넣었다. 온몸이 오싹하게 달아올랐다. 맥박이 느려졌다. 가방에 챙겨두었던 비밀을 꺼냈다. 누군가의 편지였다. 나는 위로의 말들을 챙기지 못한 채, 남들의 세상을 떠돌았다. 계절에 상관없이 뜨거워져야 했다. 그 편지를 읽고 다시 읽었다. 내가 태어난 계절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보낸 비밀이었다. 내가 보낸 계절은 중요치 않았다. 나의 계절을 기억해 주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구멍을 보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바퀴는 눈 위에서 헛돌았다. 바퀴에 손을 댔다. 눈 아래의 땅을 녹였다. 차는 높은 언덕을 유려하게 올랐다.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광활한 하얀 들판, 나의 거대한 구멍.

그 사이로 모든 침묵의 눈송이들이 내려갔다. 나는 지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얀 매미가 울었다. 모든 침묵은 나의 모습이었다. 나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