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오늘처럼, 폭풍우가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면 그날이 생각났다. 지휘자의 단상에 선 나의 모습을.
좌측 창, 바이올린의 높은 현. 우측 창, 첼로의 낮은 현. 마치, 오케스트라의 합주 같았다.
소파에 숨긴 지휘봉으로, 그날의 곡을 떠올렸다. 악장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내 차가 심벌즈같이 쿠앙- 곤두박질쳤다. 두 눈에는 유리가 찔걱거렸다. 검은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손을 뻗어 닿을 수 있을 만큼 허락된 곳. 어둠의 마에스트로.
걷는 것조차, 발걸음 수를 계산해서 움직이는 삶.
모든 것을 지휘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이 틀렸다.
2년 전 도시를 버렸다. 은퇴가 준, 긴 은거.
이 별장에는 내 몸뚱이 하나, 보조인 한 명이 전부다.
모든 동선은 규칙을 만들어 다녔다. 창문을 기준으로 정 가운데 소파만 남겼고 현관을 제외한 문들은 제거했다. 소파를 기준점으로 네 방위를 정해, 몇 번 움직이는 식이었다. 지팡이 없이 길을 외웠으나, 보조를 받아 화장실에 가는 게 곤욕이었다. 제대로 닦지 못했고, 콧바람이 옆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서 한 번을 시원하게 본 적이 없었다. 트럼펫처럼 이탈한 음, 용변 보는 치부마저 지휘하지 못했다. 내 숨은 고장 난 악기처럼 새어 나왔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문을 열고, 열두 번 울면, 식사를 했다. 내가 맥주를 마실 때 나오는 딸꾹질이 비슷했는지, 보조인은 가끔, 하나. 둘. 셋 카운트를 새며 별장이 울리도록 손뼉을 쳐댔다. 그놈의 화장실 때문에, 이제는 좋아하는 맥주도 한 병으로 줄이게 되었다.
"배가 고프네, 제때 좀 알아서 주겠나?" 나는 보조인을 부르며 말했다.
"기다리세요." 보조인의 대답이 작게 들렸다. 잠시 식기류가 거칠게 부딪혔다. 산책을 거부하는 나와 붙어있었고 시간을 자주 물었기 때문에, 서로가 같은 온도를 공유하지 못했다. 주방용품의 달그락 거림, 음식들의 썰림은 커졌고 창밖은 천둥이 내리쳤다. 식탁에 탁- 내려놓는 순간 고요해졌다. 식탁 근처에서 발이 끌렸다. 단추가 모서리에 닿고 케첩을 짜는 듯 침을 뱉는 것 같았다.
"다 됐어요." 보조인이 말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귀는 창문을 향해 있었지만, 접시가 느껴졌다. 정수리에 보청기가 달린 듯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벼락이 내리쳤고, 지붕과 창문까지 흔들렸다.
"또, 정전이야 젠장!" 보조인이 말했다. 서랍들이 마구잡이로 진동했다. 지하실 방향으로 발이 끌렸다. 멀리서 라이터 부시깃이 돌아갔다.
"정전 속의 정전이라니..." 나는 혼잣말을 하며 애먼눈을 감았다 떴다. 작년에도 그랬다. 지하실 발전기면 가볍게 해결될 문제라서, 크게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나에게는 냉장고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데 우웅- 거리던 컴프레서 작동이 멈췄다. 지하실 층계의 울림이 느껴졌다. 플래시 버튼이 눌렸다. 바지에 옷깃이 스치며 올라왔다.
"아이씨! 발전기 나갔네. 거지 같은 산골, 이 날씨에 어쩌라는 거야." 보조인이 말했다.
"제대로 누른 거 맞나 자네? 겨우 작년인데 까먹은 건가?" 나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지하실 입구, 점등 스위치가 딸각딸각 빠르게 눌렸다. 주방 쪽으로 가는 발은 끌지 않고 쿵쿵 밟혔다. 곧이어 휴- 이를 무는 숨들이 느껴졌다.
"내가 할 테니 발전기까지 데려다주게." 나는 일어서서 말했다. 정적이 흘렀다. 냉장고가 열렸다.
"맥주 한 병만 마시고요. 좀 기다리세요!" 보조인이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냉장고 안쪽 병들의 떨림이 평소보다 작게 불규칙했다. 펑- 병뚜껑이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꿀꺽꿀꺽 맥주가 목에서 넘어간다. 작은 탄성이 들렸다.
"나도 한 병 가져다주게나." 나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다시 소파에 앉았다. 보조인의 목구멍에 탄산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정적이 흘렀다. 식탁의자가 길게 끌렸다.
"이게 끝인데요?" 꺼억- 보조인은 허공에 말했다. 달려가서 튜바 같은 목을 잡고 싶었다. 보조인이 삼키고 뱉는 모든 것이, 내 접시로 떨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는 잠시 잠잠해지는 듯했다.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작금의 사태가 어쩌다 일어났는지를 떠올렸다. 사실 보조인과의 사이는 꽤 각별했었다. 스물네 시간 돌봐준다는 게, 얼마나 곤욕이고 또 감사한지를 알았다. 성품도 훌륭했다. 매일 책도 읽어주고 점자도 알려줬다. 일상의 명암을 함께하니, 얼마 안 가 친해졌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이곳 별장은, 모든 잡음을 피하려고 아주 깊은 곳에 만들어졌다. 전기와 전화 없이 발전기만 설치했다. 보조인은 가끔 장작을 패 온다고 했지만, 불을 쬐려는 목적이 아닌 것 같았다. 늘 싫다고 했다. 화로 안에 타는 나무들이 쌓인 채 쩍- 하며 터졌다. 마치 공연도중 나오던, 불결한 재채기 같았기 때문이다. 보조인의 눈과 발은 나에게 있었다. 나의 단상은 주인을 잃었다.
산책. 그게 문제였다. 현관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누구의 보조를 받으며 걷고 싶지 않았다. 사실, 길을 외우지 못했다. 보조인의 한숨이 길어질수록, 책을 읽어주는 날이 줄어들었다. 나는 산을 매입했는데, 산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었다. 멈춘 것 같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직접 지하실을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주방까지 외운 동선, 기억을 추가하면 될 것 같았다. 보조인의 플래시 버튼이 따각- 켜졌다. 위치를 가늠했다. 냉장고를 향해 발을 옮겼다. 적막 속에 뛰는 맥박이 목을 타고 느껴졌다. 속으로 남은 위치까지 숫자를 셋다. 셋, 둘, 하나.
쾅- 하고 보조인이 맥주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나는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폭우가 내렸다.
"맥주 없다니까요? 나참, 말을 못 믿네." 보조인이 말했다.
"지하실에 가려고 했다네." 나는 말했다. 머리 긁는 마찰이 느껴졌다. 접시가 신경 쓰였다.
"거긴 왜 내려가요? 발전기 고장이라니까." 보조인이 말했다. 톤이 올라가고 있었다.
"자네가 할 줄 몰라서 내가 가지!" 나는 걸었다. 바닥에 질척이는 액체가 느껴졌다.
"바닥 청소도 안 하고, 술이나 퍼마시는 건가?" 나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비아냥대지 마세요, 직접 닦을 거 아니면. 발전기 기름이니까" 보조인이 말했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숨소리가 팔을 뻗을 정도에서 느껴졌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남은 맥주 좀 주겠나? 속이 답답해서." 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잠시 후 콧바람이 짧게 한 번 느껴졌다. 보조인의 발이 끌렸다. 식탁이 병 바닥으로 스쳤다. 그리곤, 침이 넘어가 듯 들이켰다. 끄어억- 성대의 떨림이 얼굴 앞으로 쏟아졌다.
"이런, 어쩌죠? 없네요." 보조인이 병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체! 서른 병을 다 마셨다는 게야? 배달부 구하기도 힘든데. 미친 게로구만." 나는 내민 손으로 허벅지를 내리쳤다. 냉장고로 발을 옮겼다. 옆으로 한 걸음 움직이니ㅡ 따라서 보조인의 한 걸음이 바닥에 긁혔다.
"기름바다라니까. 들어오지 마세요." 보조인의 머리 긁는 손이 느껴졌다.
"여긴 내 땅이고! 내 별장이야! 뭔데 나를 막는 건가?" 나는 말했다.
"직접 닦던가요." 보조인이 말했다. 발이 멀어지며 기름에 스쳤다. 주방 창고 쪽 같다. 헤집는 선반, 가볍고 무거운 것들이 내리쳐졌다. 바닥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 서로의 영역은 넘지 않았다. 마치 피아노와 첼로처럼. 보조하는 악기가 음을 넘어서 하모니가 깨졌다.
무언가 끼워지고, 둔탁하게 바닥에 쳐졌다. 질퍽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느껴졌다. 창문 밖에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잊고 있었다. 다시 생각했다. 차라리 빌어먹을 기름 대신, 비가 새어 들었으면 했다. 저 녀석의 눈깔 안쪽은 빗물 같겠지, 나는 기름으로 차버렸어라고.ㅡ
둘 다 섞일 수가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았다. 바닥을 닦으라고 해야겠다. 오늘 꼭 냉장고를 열어야겠다. 냉장고 손잡이가 아니라, 유리병에 손톱을 부딪혀 잡고 싶었다. 기포가 머리까지 울렸다.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지금은 하프가 그려진 흑맥주도 상관없었다.
기다란 막대기가 팔을 스쳤다. 바닥이 퉁- 하고 내리쳐졌다. 창밖에는 벼락이 쏟아졌다. 별장이 울렸다.
"그 걸레로 해 보시던가요." 녀석이 말했다. 의자와 식탁이 긁히며, 맥주병 주둥이에 앞니가 닿는 게 느껴졌다.
"아까 다 마셨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 나는 의자를 향해 고개를 내리고 말했다.
"이거 음료인데, 그리고 뭔 상관이죠? 내 거 내가 먹겠다는데." 녀석은 맥주 주둥이를 빠르게 빨았다. 밟고 있는 기름이 지직- 얼어버렸다. 검은 냉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기름 묻은 대 걸레를 들었다.
"고작 이 걸레 하나로 어떻게 닦으라는게냐? 이 미친놈아! 당장 내 집에서 꺼져!" 나는 식탁 위로 휘두르며 말했다. 말캉한 뭔가에 부딪혀 파르르 떨렸다.
"아! 내 눈!" 녀석이 포효했다. "당신과 똑같이 되길 원해? 어!!" 녀석은 신음하며 말했다. 의자가 빠르게 끌렸다. 거친 숨이 앞으로 닥쳐오는 게 느껴졌다. 녀석의 소매자락이 올라왔다. 쿵!ㅡ 내 등과 머리가 땅에 닿았다. 바닥의 떨림이 산을 울렸다. 나는 어둠 속에서, 마지막 악장 심벌즈를 느꼈다. 녀석의 신발이 가슴팍을 쓸며 지나갔다. 현관 문이 끼익- 열리자마자. 쾅! 닫혔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에서 시침의 떨림이 느껴졌다. 티칵. 티칵. 이윽고 뻐꾸기는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뻐꾹- 한 번만 울었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식탁으로 발을 질질 끌면서 옮겼다. 손으로 테이블을 더듬거리며 훑었다. 맥주병을 들어, 찰랑 거림을 확인했다. 주둥이를 기울여 빨아 마셨다. 맥주는 탄산이 없었다. 유리병은 뜨거운 화염병 같았다. 현관 쪽으로 병이 휘잉- 날아갔다.
팡! 하고 터지는 파편들이 별장을 울렸다.
"그래. 가거라." 나는 말했다. 소파에 숨긴 지휘봉이 떨렸다. 옷에 묻은 기름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던 창문은 아무 떨림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 청중들의 야유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 속의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