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이 Jun 12. 2022

우리는 열 개의 해와 살고 있다


5월은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햇살은 투명하면서 적당히 따스하고 바람은 너무 차지도 푹푹 찌지도 않아 상쾌하다. 거리의 초록이 가장 싱그러워지는 달,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잎사귀들이 눈부신 달이 5월이었다.

걸어서 힘든 것보다 땀이 나는 게 싫은 나에게 5월은 운동하기 최적의 달이기도 했다. 낮에도 19도 정도라 한 시간을 걸어도 땀이 흐를 정도는 아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파리나 모기가 아직 없어 요리를 하기에도 좋다. 그래서 해마다 5월이면 튀김처럼 환기가 필요한 음식을 더 많이 해 먹곤 했다.



그런데 올 해는 5월 초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느닷없이 30도가 넘는 고온이 연일 이어졌고 급기야 폭염특보까지 발령됐다. 꺼내놓은 봄옷을 다시 집어넣고 급하게 여름옷을 뒤적거렸다. 

올 초 옷장을 정리하면서 옷가지들이 아직 박스에 뒤섞여 있는데 난감했다. 반팔과 반바지를 꺼내면서도 당혹스러웠다. 6월, 7월, 8월까지 차례대로 입을 옷들의 순서가 흐트러졌다. 정작 한여름이 됐을 땐 어떻게 지낼지 난감했다. 

제철 음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계절은 하나의 규칙이다. 봄과 여름은 엄연히 다른 계절이고 그 철에 맞는 날씨와 기후가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겨울이 지나면 봄은 슬며시 왔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른 여름이 들어앉았다. 그리고 여름은 길고 강하게 와서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오래 동안 지속된다.      


먼 옛날, 요 임금 시대에 하늘에 해가 열 개나 뜨는 이변이 나타났다. 원래 옥황상제의 아들들인 해가 하나씩 하늘로 오르기로 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하늘에 뜬 열 개의 불덩어리 때문에 산천초목은 말라갔고 그 어떤 것도 생존할 수 없었다.  

결국 요 임금은 뛰어난 궁수 예에게 하늘의 해를 떨어트려 달라고 부탁했다. 예는 붉은 화살과 하얀 화살 열 개를 가지고 해를 하나씩 쏘아 맞췄다. 원래는 해 열 개를 모두 떨어트리려 했으나 세상이 암흑이 될까 걱정한 요 임금이 화살 하나를 감춘 바람에 지금처럼 해가 하나만 남게 되었다.     



기후위기는 어느덧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잦은 산불과 폭염, 가뭄, 그로 인한 기아와 전염병 발생 뉴스는 해마다 반복된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터전을 잃은 북극곰들이 먹이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 굶어 죽는 사진은 모두의 심금을 울린다.

 기후변화의 주범은 온실가스다. 그런데 온실가스를 구성하는 메탄, 이산화탄소, 오존 등은 모두 경제발전과 관련이 있다. 축산업의 발달, 난방과 냉방, 각종 공장의 가동, 높은 소비 수준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한데 모여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 



몇 년 전 이상 기온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낀 때가 있었다.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수시로 넘나들던 무시무시한 해였다. 해가 거의 24시간 내내 떠있는 것처럼 하늘은 쉬지 않고 열기를 뿜어냈다. 

한밤의 짧은 어둠이 찾아오면 그제야 사라진 해를 향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후, 공포스럽게도 해가 다시 떠오르고 세상은 다시 불구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진짜 하늘에 해가 하나만 떴는지 확인하고 싶은 날들이었다. 

 


신화는 하늘에 열 개의 해가 떴던 시절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활을 잘 쏘는 예가 아홉 개의 해를 떨어트려 겨우 세상을 구원했다. 현대에는 인간이 창조한 열 개의 해가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우리 모두가 예가 되어 해를 떨어트릴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모두 파국으로 갈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