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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Jun 22. 2022

짜장면의 쓴맛


신호등 불이 녹색으로 바뀌어 막 건널목을 건널 때였다.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오더니 요리조리 보행자 사이를 파고들었다. 오른손에는 핸들, 왼손에는 철가방을 쥔 남자의 뒷좌석엔 파란 음식물 쓰레기통이 실려 있었다.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른 오토바이는 인도로 올라서더니 이번엔 다시 차도를 건너려 눈치를 봤다. 좌우를 살피던 남자는 잠시 차들이 뜸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차선 몇 개를 바람처럼 가로질렀다.   

장난감 같은 플라스틱 헬멧 아래 덥수룩한 반백의 머리가 나부꼈다. 남자는 허름한 중국집 간판 아래 오토바이를 세웠다. 남자가 빈 그릇이 가득한 철가방을 들고 중국집 문을 열자 테이블 몇 개 없는 좁은 홀과 지저분한 주방이 보였다.    

행주인지 걸레인지 알 수 없는 수건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싱크대 주변을 차지하고 있었다. 금방 배달을 마친 남자는 이제는 팔을 걷어 부치고 싱크대 앞에 섰다. 우리 동네 최고령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수십 년 전 내가 어릴 때부터 짜장면 배달을 했다. 요즘처럼 외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이삿날이나 중요한 손님이 오셨을 때 빠질 수 없는 중국 음식. 그중에서도 입맛이 없을 때 짜장면은 꼭 떠오르는 별미였다. 

쫄깃하고 뜨끈한 면발에 고소하고 달콤한 소스, 가끔 씹히는 비계 달린 돼지고기는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어쩌다 운 좋은 일요일, 밥하기 싫은 엄마가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부르릉 소리를 내며 순박한 얼굴의 청년이 현관에 들어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빗지도 않은 더벅머리에 점처럼 작은 눈, 하얀 얼굴에 볼은 늘 불그스레했다. 



이윽고 마루에 랩에 싸인 짜장면 그릇 세 개가 늘어섰다. 그런데 뭔가 평소와 달랐다. 짜장의 색깔이 꺼멓다 못해 시커멨고 랩을 열자 화근 내가 물씬 풍겼다.

“총각! 이거 탄 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녹색 중국집 그릇 안의 짜장은 타서 군데군데 숯처럼 덩어리가 져있었다. 

“오늘은 제가 프라이팬을 잡았거든요. 짜장은 세게 볶아야 맛있는데…”

알고 보니 아저씨는 중국 음식을 배우려고 틈틈이 불 앞에 서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마침 주방장이 나가버려 아저씨는 이때다, 하고 짜장면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국 그날의 짜장면은 실패작이었고 우리 집에서 퇴짜를 맞았다.       



“형은 철가방 드는 게 그렇게 좋아요?”

“나? 난 그냥 내가 좋아.”

용태는 또 웃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예상한 대답을 하지 않는 기삼이가 무척 신기했다. 

“형, 왕자병 아니에요?”

“왕자병? 몰라 뭐 왕자도 괜찮겠지. 난 철가방 드는 나도 좋고, 왕자인 나도 좋고……또 뭐 다른 거 하게 되면 그런 나도 좋아할 거야. 난 내가, 너어어─무 좋아.”

<동화 짜장면 불어요! p147>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한정돼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성공의 기준을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 혹은 세상에서 알아주느냐에 맞추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잘하는 일은 대가가 별 볼일 없고, 좋아하는 일은 쳐다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자신이 잘하면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데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능력이 아닐까 싶다.    

 


열아홉 살 기삼이는 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하지만 자신의 직업을 하찮다 여기지 않는다. 지위고하 막론,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반기는 ‘짜장면’이라는 음식을 배달하는 일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기삼이는 현재 짜장면을 배달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중에 무엇을 하든 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할 거라는 거다.



수십 년 전, 우리 집에 다 탄 짜장면을 배달해주던 아저씨는 지금도 여전히 짜장면을 배달하고 있다. 아저씨는 아직도 중국집 사장님이 되거나 주방장이 되지 못했다. 

신호가 바뀌면 엄청난 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어린 오토바이족들과 민트색 유니폼으로 멋을 낸 21세기형 배달의 기수들 가운데에서 아저씨는 여전히 빨간 중국집 오토바이로 동네를 누빈다. 



아저씨에게서 짜장면을 시켜 먹어 본지는 아주 오래됐다. 언젠가 한번 중국집 코 앞 공원 벤치에서 어떤 남자가 짜장면을 시키더니 배달비 천 원을 꼭 받아야겠냐고 항의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도 흰머리를 휘날리며 한 손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아저씨의 하루가 그 옛날 아저씨의 짜장면처럼 씁쓸한 맛은 아니기를, 이제는 원래 짜장면이 그렇듯이 고소하고 달콤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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