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0년
“너 요새 뭐 하고 있니?”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난 자리였다. 모인 이유는 비극적이었지만 다들 얼굴 본지가 한참 되어 자연스레 근황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거기엔 어린 시절 이후 나를 처음 보는 분도 있었다.
“그냥… 글 쓰고 있어요.”
스스로도 떳떳지 않았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글…?”
주름진 얼굴들에 커다란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책 쓰고 있어요.”
그분들 대부분은 내가 동화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무슨 상도 받았다는데, 상금도 많았다는데…한 분 두 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내 앞에서 꺼내고 나누기 시작했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기분이었다. 내 일인데도 남의 얘기를 듣는 듯했다. 언제 적 일인지 기억조차 흐릿흐릿….
집에 돌아와서 내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동명이인이 있어서 이름 뒤에 ‘동화’나 ‘동화작가’를 넣었는데도 거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활동을 안 하고 있으니 자연히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분명 아침에 눈을 뜨고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체(?)이지만 인터넷 상으로는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 소설에 나오는 립 반 윙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령의 술을 훔쳐 먹고 한바탕 놀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스무 해가 흘러버렸다는.
기억 소생술을 써 10년 전 그날을 떠올려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에 전화를 받았더니 앳된 음성의 출판사 직원이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대상을 받으셨습니다!”
국내 굴지의 출판사와 대형 방송국이 함께 주최하는 전통 깊은 동화 공모전이었다. 상금이 자그마치 천만 원이나 됐다. 그때까지 만져본 상금 중 가장 컸다. 원고지 2 백매도 안 되는 분량의 동화에 주어지는 보상으론 과분하다 싶을 정도였다.
‘대상’이라는 타이틀은 내게 화려한(?) 동화작가로의 인생을 보장해 주는 약속 같았다. 만날 응모하는데 왜 걸리는 데가 하나도 없냐며 엄마의 구박을 받는 처지였는데 하룻밤 새에 인생이 역전됐다. 그 때문인지 전화를 받을 때도 담담했던 내가 수상 소식을 전하며 엄마 앞에서 울컥! 했다.
난생처음 상을 받기 위해 방송국 구경을 했다. TV에서만 보던 방송국 사장님과 악수를 하고 심지어 짤막하지만 그날 오후 뉴스에도 나왔다. 내가 상 받는 장면이 떡하니 영상으로 몇 초간 흘렀다.
아 내가 저렇게 생겼구나. 옷을 좀 더 신경 써서 입을걸. 하필 그날 아침 단골 미용실이 문을 닫아서 아무 데나 문 연 곳을 찾아들어갔다. 80년대 스타일 미장원 원장님이 나와서 마치 수십 년 만에 손님을 받는 것처럼 어색하게 드라이를 해줬다.
얼마 후 수상작이 책으로 나왔다. 첫 책이자 상금을 받고 내는 책이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는 책이라고 부모님이 더 뿌듯해했다. (부모님은 책을 내려면 출판사에 인맥이 있어야 하는 줄 아셨다.) 일일이 사인을 해서 친척과 친지들에게 뿌렸다.
통장으로 상금이 들어왔다. 처음으로 카드 대금 결제일이 두렵지 않았다. 갑자기 배포가 커져서 좀 과하다 싶은 금액도 막 질렀다. 앞으로 또 상을 받으면 되니까 그때는 걱정이 없었다.
자신감은 딱 1년을 갔다. 그때까지였다. 그 천만 원으로 10년을 살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