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작가인데

수상소감이 문제였나

by 겨울이


오늘도 도서관까지 걸어간다. 집에서 3킬로 거리라 운동 삼아 걷기 딱 좋다. 무거운 책가방이 어깨를 짓누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일론 천으로 된 가벼운 가방을 메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는 약간의 난관이 있다. 얼추 다 왔는데 맞은편에서 누군가 반갑게 나를 향해 다가온다. 환한 표정과 빨라지는 걸음걸이를 보면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친척이라도 만난 사람 같다.

“도에 관심 있으세요?”

그러면 그렇지.

“같이 공부 좀 해보실래요?”

워낙 단련이 되어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얼굴을 보니 부처님 공덕을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

그 말에 홱 기분이 나빠진다. 아무리 그래도 부처님 공덕을 많이 받은 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수상한 사람들에게 접근을 당하는 일이 자주 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꼭 나에게만 다가오는 그들. 가끔은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나의 무엇이 그들의 촉을 건드리는지.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 횡단보도 앞에서 축축 처지는 가방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 때 역시나 그들이 신출귀몰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아이들 가르치시나 봐요.”

파마머리를 한 중년 여자가 내 책가방을 유심히 보며 말을 걸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학습지 교사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묵직한 가방과 수수한 차림으로 뚜벅뚜벅 생활의 최전선을 걷는 여자. 사실은 약간 수척한(?) 안색이 그들을 유인하는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나는 가방에 책을 다 넣을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보조가방도 종종 드는데, 그러면 더 큰 오해를 일으켰다. 홍보사원이나 보험 설계원, 심지어 지금 나를 귀찮게 하고 있는 ‘포교원’으로 의심받아 건물 출입을 제지당한다.

딱 한번, 가방 때문에 우호적인 관심을 받은 적이 있기는 하다. 도서관 앞에 서 있는데 어떤 어머니가 혹시 자신과 같은 글쓰기 교실 회원이 아니냐고 물어왔다. 책가방은 때로 원치 않은 선입견을 씌워주지만, 그래도 그날만큼은 최소한 내가 글 쓰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는 오늘도 수많은 책이 꽂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씩만 가도 어찌나 새 책이 쏟아져 나오는지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한국인의 일 년 독서량은 정말 초라한 정도라는데 이렇게 엄청난 책들을 다 어디서 누가 소화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많은 책 중에 내 책은 없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작가의 입장에서 책들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시각으로 책들을 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한때는 신문에서 어린이 책 서평이 나오는 주말을 기다렸다. 신간 동화나 수상작을 메모해 뒀다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사서 보았다. 도서관 어린이실 새 책 코너에서 다른 작가들의 신작을 보며 초조함과 부러움도 느꼈지만 나도 빨리 쫓아가겠다는 의욕도 불탔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 아름 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가방은 무거워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방을 가득 채운 것은 책이 아니라 금덩어리였고 내 가슴엔 희망이 가득 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을 달관하고 초월한 듯 새로 나온 동화책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내 안의 치열한 불꽃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리라. 해봐도 안 되더라는 자포자기가 어느새 자리를 잡아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다.


사실 상을 받고 시상식 팸플릿에 쓰일 수상 소감을 요청받았을 때 거기에 대뜸 이렇게 적었었다.

앞으로 작가로서 보다 독자라는 자리에 머물지라도, 동화라는 꿈을 꾸고 싶다고. 사실 모든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독자가 아닌가. 내 딴에는 겸손의 표현이었는데 괜히 멋 부리느라 한 말이 씨가 된 것 같았다.


일이 안 풀리니까 그런 것 하나까지도 마음에 걸렸다.


매거진의 이전글대상을 받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