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전성기(?)
상을 받았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발표 기회도 생겼다. 마치 ‘각광받는’ 신인 작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알음알음으로 그 달에만 서너 편의 청탁을 받았다. 어린이 잡지, 계간 동화 잡지, 모 문학잡지의 동화 코너 등 다양한 지면이었다.
원고지 30매 분량의 단편 동화를 뚝딱뚝딱 썼다. 지금 와서 읽어보면 참 부끄러운 수준인데 그땐 일러스트까지 곁들여 인쇄되어 나온 내 글을 접하는 기분이 짜릿하기만 했다. 동화의 묘미는 역시 일러스트라고 감탄했다. 예쁘고 환상적인 그림 때문에 잘 못 쓴 글도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우쭐하고 부푼 가슴으로 매일 아침 공모전 사이트에도 들어갔다. 거의 일 년 내내 있는 다양한 동화상 공모전들. 단편, 중편, 장편에 신인, 기성 불문하고 문호도 넓다. 모두 나에게 기회의 손을 내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큰 상을 받았으니 또 이름난 상을 받고 싶었다. 이번에는 이왕이면 그럴듯한 장편으로. 무겁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모두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원래 흥미가 있었던, 한국적인 판타지 동화를 열심히 구상했다.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나름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자화자찬하며 글을 써나갔다.
예전에는 응모를 할 때 지금처럼 온라인이 아니라 우편으로 작품을 받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공모전 마감 전날은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처지 같았다. 혹시 오자라도 있을까 밤을 새우다시피 읽고 또 읽고 당일 아침까지 작품을 만지작거렸다.
프린트 버튼을 누르기까지 최소 수십 번은 읽었을 것이다. 알싸한 잉크 냄새를 풍기며 착착 튀어나오는 인쇄된 종이들을 보면 약간의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었다.
작품을 부치기 전에 제본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사무용 집게나 클립으로 묶으면 무성의해 보일까 봐 인쇄소에 가서 스프링이나 본드 제본을 했다. 표지 안에 별지를 따로 넣을지, 어떤 색깔과 재질로 할지까지 신경이 쓰였다. 우체국에 가서 부쳐야 하는데 대개 토요일이 마감이라 문을 여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며칠간 긴장하고 잠을 못 잔 상태라 얼굴은 백지장 같고 머릿속은 멍한 진공상태로 우체국 카운터에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유령 같은 몰골에 봉투 전면에 큰 글씨로 무슨무슨 문학상 응모작이라 적혀 있으니 접수하는 직원에게조차 내 절박함을 들킨 모양새였다.
그런데 내 고생과는 상관없이 매번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원래 응모할 때는 예감 같은 것이 있다. 상을 받았던 작품도 우체국에서 부칠 때 잘 될 것 같다는 기분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품을 응모할 때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접수를 하는 순간에 이미 알았던 것 같다. 뭔가 부족하고 미흡하다는 것을. 작품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오히려 응모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나중에는 편의점 택배로 접수했는데 엄마는 속도 모르고 분실된 것 아니냐고 했다. 편의점이 아니라 우체국 등기로 보냈어야 했다며 내 부주의(?)를 탓했다.
사람이 절실하니까 진짜 몇 번은 분실을 의심했다. 심사 결과가 나오면 총 응모작수가 발표되는데 보통 수백 편에서 천 편 가량이 넘는 적도 있었다. 우연히 내 작품이 실수로 누락되거나 분실되어도 아무도 모를 수 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신춘문예, 고시, 대입시험… 모든 시험의 낙방생들이 겪는 쓰라림이 있다. 바로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발표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결과를 접했을 땐 허탈감, 실망감으로 눈앞이 노래졌다.
그런 응모를 한 해에만 여러 번, 그 후로도 해마다 하다가 마침내 우체국에 발걸음을 끊었다. 어느새 온라인 접수가 보편화된 것이 다행이었다. 이제는 우체국 직원 보기에도 민망한 시점이 왔다.
마음을 추스르고 당선작들은 어떤 작품인지 내 작품은 뭐가 부족했는지 복기하는 심정으로 심사평을 열심히 찾아본 적이 있다. 그런데 심사위원 이름이 아는 분이 아닌가. 바로 한 해 전 내게 상을 주신 중진 동화작가셨다. 원래 심사위원급이 한정돼 있어 이 상 저 상 돌아다니다 보면 다시 만나곤 한다.
시상식 후 시간 있을 때 작품을 많이 써두라며 다정한 조언을 건네셨는데 그때는 그 말씀을 흘려들었다. 작품을 써서 발표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쓰는 족족 당연히 책이 되어 나오거나 응모하면 작품이 뽑힐 줄 알았다. 그분이 혹 내 응모작을 읽으셨을까, 나를 기억하실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등단까지는 수월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현실의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상을 받았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고 어쩌다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