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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Oct 22. 2023

4. 눈물이 흐르는 방

–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4층짜리 그 건물에는 층마다 방이 12개, 화장실이 하나씩 있었다. 주로 이십 대에서 서른 초반의 여자 공시생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화장실은 복도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문과 마주 보는 방은 인기가 없었다. 온갖 이유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소음 때문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수십 명의 여자들과 몇 년을 살았다.


방은 1평 정도에 불과해도 독방이지만 화장실은 공동으로 써야 했다. 화장실 안에는 변기 칸이 두 개 있었는데 누군가 세면대를 쓰고 있으면 맘 놓고 볼일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변의가 솟구칠 때마다 늘 아무도 없는 고적한 화장실을 찾아 위아래층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드디어 화장실을 통으로 마음 놓고 쓸 수 있구나 할 때, 꼭 누군가 들어왔다. 세면대 수도를 틀어 화분에 물을 주거나 걸레나 속옷을 빨거나 심지어 머리를 감을 때도 있었다. 드물지만 창문가에 딱 붙어 흡연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참 화장실은 그러고 보면 쓰임새가 무궁무진했다.


특히 방에서 떠들면 벽이 얇아 항의를 받을까 싶었는지 으레 화장실에서 친목을 다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음료수나 간식을 먹어가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화장실 칸 안에 누가 있는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중요한 볼일도 못 보고, 그렇다고 인기척을 내자니 실례인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고 한동안 갇혀 있었다. 죄를 지은 것처럼 숨을 죽이고 끝나지 않는 대화를 듣고 있자면 귓속으로 온갖 원치 않는 비밀과 뒷담화가 흘러들어왔다.     


“바로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야. 나는 바로 이 칸막이에서 죽었어. 생생하게 기억나. 올리브 혼비가 내 안경을 갖고 놀려서 여기 숨어 있었지. 문을 잠가 놓고 울고 있었는데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그러더니 뭔가 이상한 말이 들리더라고….”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p192, 문학수첩)      


호그와트에서 보내는 두 번째 해, 해리 포터는 거대한 위험에 직면한다. 전설 속의 비밀의 방이 열렸다는 소문과 함께 여러 명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게 습격당한다. 해리 포터는 자신이 범인으로 오해받게 되자 비밀의 방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직접 나선다.  

울보 머틀은 50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 계속 그곳에 살고 있다. 억울함 때문인지 계속 화장실에서 통곡을 하기 때문에 ‘울보 머틀’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애당초 머틀이 화장실에 들어간 이유도 짓궂은 친구의 놀림 때문에 울기 위해서였다. 

유령이 된 후 하수관을 통해 이동하는 능력이 생긴 머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 늘 울적해하는 머틀에게 항상 물이 흐르는 축축한 화장실은 사후에 머무는 장소로 잘 어울린다.     


각종 시험 날짜가 공고되면 그 건물의 여자들은 얼굴이 점점 검게 변해 갔다. 시험을 앞둔 초조함에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시원하게 변도 안 나오고 건강도 바닥을 쳐 모두 화장실에 들어가면 함흥차사였다. 심한 변비에 걸린 나는 종종 용을 쓰다가 혈변을 보기도 했다.  


겨울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 합격자 발표날이 되면 그 건물의 화장실은 또 다른 물소리로 출렁였다. 세면대에서 수도를 세게 틀어 눈물진 얼굴을 벅벅 씻다 보면 변기 칸막이 안에선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흠칫하며 거울을 통해 굳게 닫힌 칸막이 문을 응시했다.  


내가 자리를 떠나고 나면 그 누군가는 비로소 칸막이에서 나와 찬물로 눈물을 씻고 거울 속 말개진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가 뚜벅뚜벅 어딘가로 걸어갈 것이다. 화장실에서는 그렇게 모두의 비밀과 아픔과 슬픔이 뒤섞이고 씻겨 나갔다.


너무 좁아 키가 큰 사람은 대각선으로 잘 수밖에 없었던 그곳의 방. 그 작은 방에서 살던 생면부지의 젊은 여자들은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만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고 서로의 흉허물을 나누고 희미한 교집합을 만들었다. 만약 화장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까. 젊음의 한때를 버티고 있었던 그 공간 그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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