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어디 안 가는 사람

2025.10.04

by 겨울이


드디어 택배차의 자취도 끊기고 동네는 서서히 명절 모드로 접어들고 있다. 마지막까지 선물을 배달하던 택배 기사도 어제까지였고 이제는 집집마다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상자만 쌓여 있다. 오늘 새벽 마지막으로 청소차가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가자 이제부터 일주일 간은 세상이 완전히 정지하겠구나, 하는 실감이 왔다.


언제부턴가 명절이면 사람들은 두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과 안 지내는 사람, 그 중에서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이번에도 명절 연휴 전국 공항 이용 인구가 5백만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연휴를 연휴답게 사용하는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오히려 그래서 긴 연휴를 지겨워하고 지루해한다.


엄마는 오늘 새벽에 골목 건너편 3층 주택의 창문이 모두 컴컴한 것을 봤다고 했다. 고령으로 기력이 달리고 많은 약을 복용하는 엄마는 낮동안은 주로 휴식을 취한다. 자연히 밤에는 잠이 안와서 불면증을 호소하며 tv를 틀어놓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며 새벽까지 깨어 있다. 앞집 마당에도 차가 없더라며 자못 염탐이라도 한 듯한 엄마의 말투에서 어쩐지 푸념이 읽혀졌다. 확실히 연휴에도 아무데도 안 가는 우리 집은 인구상으론 다수편이면서도 심리적으로는 확실한 약자쪽에 가깝다.


예년만 해도 10월 추석이면 더위를 피해가 음식 장만하기도 보관하기도 좋은 시기였다. 늘 전 따위를 부친 후 하룻밤 둘 장소가 마땅찮던 우리 집은 차라리 늦은 추석을 반겼다. 하지만 이제 대형마트에서 전과 나물을 사는 처지가 되었지만 올해는 10월에도 더워 땀이 뻘뻘난다.


음식을 하지는 않지만 올 해에는 작년에 비해 사과와 배 등 과일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 하필 평소 보관용으로 쓰던 오래된 냉장고가 고장 나 냉장 기능이 시원찮다. 해마다 명절 때면 늘 이렇게 선물이 치우치거나 겹쳐 처치곤란한 것들이 생긴다. 누군가에게 주려고 해도 집집마다 넘치는 것이 사과와 배이니 절대 환대받을 선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다 비슷해서 누군가가 안 먹는 밤을 우리 집에 '나눔했다'. 평소 '나눔'이라는 말을 싫어해서 차라리 그냥 준다라고 하는 편인데 누군가는 자꾸만 자기에게 불필요한 것을 우리 집에 나눈다.


밤이 많이 들어왔다며, 금방 삶았고 맛이 좋다라고 하며 주었는데 막상 밤은 냉동실에서 막 꺼낸 듯 차고 채 익지도 않아 딱딱했다. 제대로 익지도 않은 밤을 먹어보니 맛이 좋다라며 주는 사람은 우리 집에 자기가 필요 없는 밤을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아버지의 지인은 국산만 판다고 하는 마트에 속았는지 버젓이 24년도 라벨이 붙은 한우를 선물했다. 고기는 선홍색을 띄고 있었고 포장도 멀쩡했지만 종이 라벨은 닳아서 허얘진 상태였다. 구워서 먹어보니 누린내가 심해서 끓여서 국으로도 못 먹게 생겼다. 마트는 버려야 할 유통기한 지난 고기를 선물세트로 처분해 버렸고 우리 집은 그 쓰레기통이 됐다. 누군가에게 음식 쓰레기 폭탄을 돌렸는데 우리 집이 당첨된 기분이다. 해마다 선물을 받지만 올 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너무 더운 날씨에 가을옷 입을 시기를 놓쳐 버리는 것 같다. 긴 팔과 두꺼운 옷을 세탁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명절 연휴 전에 맡겨야 겠다 싶어 부랴부랴 단골 세탁소로 갔다. 휴가는 5일부터 9일까지라고 써붙여 놓고도 가게문은 닫혀 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평소 방송 출연하는 것을 자랑하며 tv에 나올때마다 문자로 홍보도 빠지지 않던 곳이다. 안 그래도 영업 시간도 짧은데 그간 주5일제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리가 먼 다른 세탁소를 찾아 갔다. 휴일에도 열고 늦게까지 영업하는 모습을 오며 가며 봤던 곳이다. 나오는데 나이든 가게 사장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데 오히려 남들 쉬는데 가게를 열어줘서 내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시장 골목에는 단골 채소가게도 아침 일찍 문을 열고 한 카페는 추석 연휴 내내 영업하며 추석이 끝나면 쉴 거라고 안내해 놓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미용실에 갔다가 자신은 긴 연휴가 싫다고 하던 원장이 떠올랐다. 휴일이 많으면 뭐하냐며 일주일씩 놀면 가게세는 어떻게 내냐고 했다. 연휴때 문 닫을까봐 서둘러 머리하러 갔더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세탁소에 다녀 와서 서둘러 도서관에 가 연휴 동안 읽을 책을 빌려왔다. 독서의 달이라고 두배 대출을 해줘 다행이었다. 도서관에는 주말이기도 하고 연휴 전 마지막 날이라 책 빌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명절 때마다 아랑곳없이 묵묵히 책을 쌓아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사람들을 도서관에 가면 많이 본다. 나 역시 연휴때야말로 마음 편하게 책 속의 세상에 빠지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추석 전 마지막으로 마트 배송을 기다리고 있자니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졌다. 엄마의 말과는 달리 골목 입구 3층 주택은 층마다 사람이 있는지 불이 훤했고, 앞집도 어슴프레하게 조명이 내비쳤다. 왠지 우리 편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이번에 다 같이 '어디 안 가는 사람들' 이 될 작정인지 모른다. 그것이 우리들의 추석 연휴 계획이다.

작가의 이전글4. 눈물이 흐르는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