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동화를 별로 읽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도 딴청을 하면서 어린이실을 그냥 패스했다. 동화를 쓰려면 많이 읽기도 해야 할 텐데 엉뚱한 책들만 기웃거리고 있으니 목표가 뭔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 나오는 동화를 읽을수록 점점 더 동화에 흥미가 없어졌다. 글 쓰는 삶은 미궁으로 빠져 들어갔다.
초등학생도 웹소설을 즐겨 읽는 시대가 왔다. 스토리텔링과 장르물이 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더 많이 출판됐다. 일러스트는 아예 애니메이션 화풍을 채택해 한 페이지 가득 만화가 들어 있기도 했다. 만화책인지 동화책인지 헷갈렸다.
스타일의 문제보다 나를 좌절시킨 건 아무래도 요즘 동화가 다루는 소재였다. 동화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동화를 읽으면서 나와의 공감대를 찾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나이 들고 찌들고 기억력 후퇴한 중년인데 요즘 동화에서 거리감을 느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 날,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두껍고 페이지수 많은 책들로만 빌려온 동화책 몇 권이 나를 오랜만에 동화의 세계로 다시 끌어당겼다. 요즘 많이 나오는 장르물이 아니라 교실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었다. 주인공들은 모두 친구 관계를 고민하고 친구를 사귀고 싶거나 따돌림을 두려워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우정을 찾아갔다.
추석 연휴 직전, 갑자기 엄마의 휴대폰이 먹통이 됐다. 폰이 오래되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데 연휴 뒤로 차일피일 미뤘더니 그만 방전이 되어 버렸다. 꺼진 폰을 다시 켜자 갑자기 코드 비번을 넣으라고 하는데 도대체 설정하지도 않은 코드 비번이 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부랴부랴 지하철 역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역에서 내려 다시 서비스 센터로 가는 버스로 환승해야 했다. 이미 오전 시간이 다 가고 있어 대기줄이 얼마나 길지 걱정이 됐다. 유일한 낙이 폰으로 문자 보내고 유튜브 보는 것인 엄마라 혹시 당장 수리가 안 되면 어쩌나 심란했다.
"거기 학생들, 어디까지 가요?"
맨 뒷자리를 흘끔 대며 기사 아저씨가 물었던 것이 그 순간이었다. 버스 안에서 기사의 음성을 듣는 때는 주로 주의나 안내 같은 업무적인 일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하철 역이요!"
최소 세 명 정도의 발랄한 여학생 목소리가 합창했다. 바로 앞 정류장이 우리 동네의 여자 고등학교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오늘 시험 봤어용! 까르르~"
"그래에~ 시험은 잘 봤어?"
"네에~ 까르르~"
구수한 중년 기사와 여고생들 간의 대화가 버스 안을 훈훈하게 채웠다. 흔치 않은 이 버스 안 풍경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시하고 있을 때 기사는 갑자기 느닷없는 이벤트를 열었다. 학생들이 인사를 잘해 예쁘다며 선물을 줄 테니 손을 들라고 했다. 선물? 내 머릿속에 큰 물음표가 떠오르는 동시에 여학생들은 참새떼처럼 저요! 저요! 를 외쳐댔고 드디어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내 기대보다 훨씬 성숙하고 예쁜 여학생은 애쉬 그레이 컬러로 염색한 머리가 잘 어울렸다. 기사 아저씨가 '인사를 잘하는 학생'에게만 준다는 선물은 컵라면이었고 아저씨는 여학생을 버스 앞에 세워둔 채로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승객들에게 인사까지 시킨 후에 건네주었다. 나는 혹시 아저씨가 여학생에게 노래 한곡 뽑고 들어가라고 할까 자못 궁금했는데 누군가 여기가 관광버스냐고 농담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의 사설이 길었던 편에 비하면 선물은 대단치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고등학생에게 적당한 순수한 상품 같기도 했다. 어쨌든 여고생들은 희희낙락하며 즐거워했고 아마도 한 날 버스 안에서의 추억거리는 물론 다음 날 교실에서 떠들 수다거리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기사 아저씨는 그 이벤트가 장기인 듯 계속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이내 여학생들이 욕 섞인 자기들만의 대화를 시작했고 버스도 지하철 역에 당도해 다행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고서야 그 여고생 무리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모두 네 명이었고 그중 둘은 깜찍하게도 비슷한 몸집에 둘 다 큰 헤어 롤을 앞머리에 말아 마치 쌍둥이 같았다. 그 둘이 '써니' 같은 청춘 영화 속에서 주인공 옆을 지키는 조연이라면 아까 앞으로 쾌활하게 나섰던 여학생은 대화를 주도하고 심지어 친구들에게 오늘은 욕을 자제하자며 타이르는 것이 그 무리의 중심인 듯싶었다. 외모도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밝고 명랑한, 어쩌면 내가 그 나이때 되고 싶었으나 절대 될 수 없었던 유형. 넷이 한 몸이라면 그 어떤 것도 추억으로 만들어 버릴 듯한 용감 발랄한 소녀들이 부러웠다.
나는 빌려온 동화책들을 며칠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오랜만에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푹 빠져들어갔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애들이었고 무리를 지어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쳤다. 그 안에는 무리의 방향을 지휘하는 리더이자 반의 인기인이 있었고 나머지 여자애들은 무리에서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기꺼이 그 애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을 희생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친구' 관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는 학교 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나는 내 학창 시절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친구가 많았던가, 아니 친구가 몇 명쯤 있었던가, 무리를 지어 다녔던가, 아니던가. 내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헤쳐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의 이 비사교적이고 비관적이며 소극적인 성격으로. 나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무리 속에 끼기 위해 무언가를 했던가, 아니 지레 포기했던가. 그래서 나는 한 번도 함께 깔깔대거나 욕을 하거나 으쓱대거나 해보지 못했던가. 외로운 줄도 모르고 혼자 하교하는 생활을 선택했던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던가.
나라고 친구가 없어도 좋다고 느꼈을 리 없다. 다만 나를 알아주고 나와 잘 맞는 친구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런 친구를 만나기 전에 누구라도 함께 어울리기 위해 맹렬히 노력하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다 커버린 지금은 뭐 어떠랴, 진정한 친구가 무언지 누가 알랴, 와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나의 영혼의 단짝인 그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그저 같이 떠들고 소리 높여 웃고 우스꽝스러운 추억을 만들 그 누군가들을 만드는 것도 어떠랴 싶어진다. 최소한 그런 노력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