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라는 검은 글씨가 회색 철제문에 박혀 있었다. 한때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선 물품 창고 구석에 오도카니 놓인 변기가 화장실이었다. 나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2층에 달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지하 민속 주점, 1층 편의점 위에 두 개 층을 사용하는 학원. 그곳이 내가 면접에 합격한 직장이었다. 근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다니는 그곳에서 나는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영어를 가르쳤다. 자격증, 심지어 졸업장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수업은 10분 간격으로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쉬는 시간에도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 화장실 갈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학원 화장실은 내부에 따로 있어서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고 입구에는 남자용 소변기가, 대변기는 딱 하나만 존재했다. 가끔 무심코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소변기 사용 중인 남자 선생님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문을 닫곤 했다. 그래선지 남자 선생님들도 소변기를 잘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화장실의 칸막이 문이 고장 났다는 거였다. 문은 어찌 된 일인지 비틀린 상태였고 당연히 걸쇠가 걸리지 않았다. 칸막이 안에 들어가면 한 손으론 옷을 내리고 다른 손으론 최대한 문이 닫히게 걸쇠를 잡아당겼다.
그래도 문과 벽 사이에 조금의 틈이 남아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 상황을 벗어나려면 최대한 빨리 볼일을 보고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집이 거기에 사는 사람에 대해 알려주듯, 화장실을 보면 그 직장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둥대며 그런 생각을 했다.
10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그곳의 아이들과 통하는 점은 없었다. 중학생들은 젊은 여자 선생에게 야한 농담을 하고 심지어 욕설을 내뱉어도 혼이 나지 않았다. 학교가 아니라 학원, 그것도 이름난 입시학원도 아닌 동네의 시시한 학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가장 힘든 건 아이들을 다루는 것도, 적은 월급도 아니었다. 배고픔이었다. 9시 반이 돼야 학원이 문을 닫는데 그때까지 아무도 저녁을 먹지 않았다. 뭘 먹고 오라는 소리도, 뭘 먹어도 되냐고 묻는 이도 없이 원장님을 포함해 모두가 그냥 굶었다.
참다못해 뛰어 나가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사 왔다. 어떤 날은 종이봉투 가득 붕어빵을 사 오기도 했다. 모두가 눈치를 보다가 내게로 모여들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든 호떡을 이리저리 찢어 먹고 있는데 원장님이 지그시 웃으며 말을 걸었다. 맛있냐고.
“누나가 다음 날 할머니한테 그 얘기를 다 했거든.
그랬더니 할머니도 그 귀신을 본 적이 있다고 하셨어.
그때 만약 빨간 휴지를 달라고 하면,
갑자기 화장실에 불이 난대.”
“파란 휴지를 달라고 하면?”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파란 휴지를 달라고 하면, 변기에서 퍼런 손이 쑥 나와서
변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대. 그러니까 아무 대답도
하지 말고 버텨야 해. 너도 조심해.”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키즈엠)
내일은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는 날이다. 그런데 누나가 자꾸 무서운 이야기를 해서 동구는 한잠도 못 잔다. 할머니 집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귀신을 봤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찜찜한 것은 사실이다.
할머니는 동구와 누나가 온다고 맛있는 것을 잔뜩 해주셨다. 그런데 너무 먹었는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 누나에게 다급히 도움을 요청하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이제 살았다 싶은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문을 마구 흔들어 대며 기분 나쁘게 묻는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어느 날, 고장 난 화장실을 피해 위층의 학생용 화장실로 갔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있는데 내가 가르치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선생님! 빨간 휴지 줘요? 파란 휴지 줘요?”
누군가 나인 걸 알고 장난을 쳤다.
“파란 휴지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럼 파랗게 목이 졸려서 죽는대요.”
“빨간 휴지는?”
“피 빨려서 죽고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 얘기였다. 영어를 곧잘 한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는 새 학원에서 인기 강사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잘 다룬다고, 원장님이 컴플레인이 들어온 다른 강사의 반을 나에게 맡겼다.
하지만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영어는 백화점 문화센터, 도서관 문화 교실,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도 배울 수 있었다. 학생이 자꾸만 줄어들자 원장님은 근처 초등학교에 방과 후 영어 교실을 무료로 열자고 했다. 학생들과 등산을 가고 간식을 사주기도 했다.
열 명이 넘는 강사들은 학원에 목을 매고 있었다. 가끔 쥐가 나와도, 계단에 누가 무단방뇨를 해도, 욕을 한 학생이 사과를 안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들은 쇠락해 가는 학원의 승객이었고 이곳은 그들에게 종착역과 비슷했다.
닫히지 않는 화장실 문을 최대한 움켜쥐고 서둘러 볼일을 볼 때면 나는 늘 울적해졌다. 내 손에 쥔 카드는 언제나 빨간 휴지 아니면 파란 휴지였다. 망할 것이 빤히 보이는 학원을 관두지도 즐겁게 다니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간다고 해서 환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버티는 건 더 싫었다. 그러면 영원히 화장실에 갇혀 숨죽여 살아야 하니까.
원장님은 내가 날씨도 추운데 저녁도 못 먹고 고생해 관두는 줄 알았다. 아이들이 더 떨어질까 봐 인사도 하지 말고 나가라고 해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렇게 했다. 사실 그곳을 나가서 내가 걸어 들어간 곳은 진짜 찬 바람 쌩쌩 부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래서 가끔 내가 틀린 카드를 뽑은 것은 아닌지 뒤척이기도 했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 막다른 골목에서 양자택일의 순간을 맞곤 했다. 산다는 건 늘 그렇게 이거 아니면 저걸 택하라 강요하지만 그 어떤 길도 지름길이 아닐 수 있다는 건 나중에 배우게 되었다. 이래도 저래도 망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선택도 성공으로 만드는 건 내 몫이라는 건 그보다 더 후일에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