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서 가난은 아름답던데

인생은 동화가 아니야

by 겨울이


동화 한 편 발표하지 못하고 책도 내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됐다. 꾸준히 도서관을 찾아 신간을 읽고 자극을 받았지만 마음과는 달리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해마다 쏟아지는 공모전 수상작들이 반짝반짝 빛난다면 내가 쓰는 글은 시시하거나 구태의연한 것 같았다.

버는 돈도 없는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납세의 의무는 꼬박꼬박 돌아왔다. 사실 아주 젊었을 때에는 노후를 대비한 연금 제도에 시큰둥했다. 나중에 뭐든 성공하면 쥐꼬리만 한 연금에 연연할 필요가 없을 줄 알았다.


한때 집안이 어려웠을 때 내 앞으로 된 청약통장을 시원하게 깨서 엄마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걸 당연하게 여겼을지언정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다. 한마디로 앞으로 얼마든지 벌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보험료 청구서를 받아보곤 적나라한 현실과 마주했다. 보험료를 산정하는 모든 소득과 재산 항목 위에 ‘공란’이라는 검은 스탬프가 땅땅 찍혀 있었다. 부지불식 중에 부모님의 집과 소득을 내 것처럼 여기며 사는 동안 내 명의로 된 재산 하나가 없었다.


동화 속에선 ‘가난’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내 소녀 시절의 애독서였던 19세기 미국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가난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배경이다. 종군 목사인 아버지는 남북전쟁의 한 복판에 가 있고 어머니와 네 딸이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쪼들리는 가정을 돕기 위해 각자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버텨내고 크리스마스에도 원하는 선물은 그림의 떡인 데다 무도회에 초대받아도 입을 옷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등 가난으로 생기는 에피소드가 책 속에서 끝도 없이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무능력한 가장에 궁상맞은 집구석 이야기이다. 하지만 만약 이 가정에 ‘가난’이 없었더라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서로를 아끼는 화목함이나 더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가족의 훌륭함이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이 수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으로 현재까지 칭송을 받고 있다. 진정한 인간미와 가족의 소중함은 고난 속에서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현실에서 우리의 가난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들으면 훈훈함이 아니라 답답함만 느껴진다. 가난이란 그저 가정의 불화를 불러오고 개인의 불안함만 가중시키는 불행일 뿐이다.


다행히 글로 수입을 올리는 기회가 들어왔다. 어느 출판사에서 내는 ‘인물 시리즈’ 집필을 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어린이용 위인전을 쓰는 일이다. 글은 내가 쓰지만 저자는 ‘편집부’로 나가는 작업이다.

주인공은 우리 사회에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다. 나는 그에 관한 자료를 취합한 후 어린이 책에 걸맞게 구성하는 일을 맡았다. 이미 그에 관한 저서가 여러 권 나와 있는데 대부분 비슷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었다.

한 인물의 알려진 생애에 내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하지만 기록을 장면으로 서술하는데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저술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하자. 그 이유는 그가 돈이 없어서 일수도 있고, 공부를 못해서 일 수도 있다. 나는 주인공을 미화하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는 대로 사실에 입각해서 저술하고자 했다.

하지만 편집인의 생각은 달랐다. 무조건 긍정적인 시각에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꾸미고 싶어 했다. 말 그대로 ‘위인’에 걸맞게 우호적으로 그려달라는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부터 우러러봤던 수많은 위인들의 실제 생애가 조금씩 부풀려진 것은 아닐지 궁금해졌다. 물론 그건 내 추측에 불과할 수 있다.


한때 ‘문학의 시대는 갔다’ 혹은 ‘소설은 끝났다’라는 말을 누구나 입에 담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동화라는 장르를 선택했을 때는 ‘해리 포터’의 광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나는 ‘해리 포터’를 통해 동화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능성을 느꼈다. 동화는 시나 소설보다 한계도 있지만 환상을 넓게 포용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동화 작가는 흔히 생각하는 고리타분하거나 무조건 가난한 글쟁이가 아니라 성공과 부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고 그러면서도 꿈과 상상이 숨 쉬는 자신만의 세계를 소유할 수 있는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글을 발표할 수 있고 책이 팔려야 가능하다. 동화 작가라는 나의 꿈도 내 기대 속에서 부풀려진 것이거나 한낱 백일몽처럼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