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쌍화차

뜨겁고 달콤한 노년은 없을까

by 겨울이


겨울이 다가오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누군가에게는 환상적인 눈과 겨울 스포츠의 계절일지 몰라도 언젠가부터 겨울은, 조심스럽게 빙판길을 건너가듯 아슬아슬하고 긴장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겨울 혹은 겨울이 다 갈 때쯤, 사고가 터지곤 했다. 겨울이 가져오는 자연재해는 혹한과 폭설이 아니라 바닥 누수, 동파, 보일러 고장 같은 이름으로 왔다. 오래되고 낡은 주택 살이의 숙명이었다.


얼마 전 눈이 제법 내린 다음 날이었다. 쓱싹쓱싹~하는 경쾌한 소리에 2층 계단에서 내려다보니 뒷집 아저씨가 열심히 옥상을 청소 중이었다. 뒷산에서 날아온 낙엽이 옥상을 뒹굴다 눈이 녹은 물길을 따라 우수관을 막는 경우가 있다. 옥상에 물이 빠지지 않고 차 있으면 천장이 새는 모양이었다. 뒷집의 옥상은 방수가 약한지 녹색 우레탄을 덧칠한 자국이 기운 것처럼 누덕누덕했다.


별생각 없이 방에 들어와 벽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천장 구석부터 벽 한 면이 젖어있었다. 어제까지도 아무 이상 없었던 것 같은데 줄줄 흘러내린 물로 벽지가 얼룩덜룩해졌다. 옥상과 집 외벽 전체를 방수 공사 한 것이 불과 2년 전인데 벌써 하자가 생기다니. 공사 자체가 날림이었는지, 혹은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속상하고 답답했다.


서둘러 온갖 집수리 업체, 설비 업체, 인테리어 업체 명함이 빼곡한 지갑을 뒤져보니 뜻밖에도 방수 사장님의 명함만 보이지 않았다. 허둥지둥 계약서를 찾아 거기에 적힌 번호로 걸었지만 이번엔 아예 받지를 않았다.

문득 눈앞이 캄캄해지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건장하긴 하지만 사장님은 70대의 노령이었고 공사 때 데려온 인력들도 모두 나이 든 분들 뿐이었었다. 분명 사업을 그만둘 정도로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망연자실할 때 문득 명함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방수와 페인트 칠을 돕는 일꾼들 중 가장 고령으로 보였던 할아버지의 연락처가 있었다. 맡은 일만 하고 퇴근하는 다른 분들과는 달리 할아버지는 허드렛일 담당으로 마지막까지 남아 뒷정리를 했다.

안 그래도 마당의 나무 가지치기, 보일러실 깨진 유리틈 막기, 거실에 못 박기 등 노후한 우리 집에는 손 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엄마는 이때다 싶었는지 할아버지에게 자잘한 일들을 모두 부탁했고 나는 그의 호주머니에 5만 원이 든 봉투를 몰래 넣어 주었다. 2년 전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추우신데 커피 한잔 드릴까요? 아니면...”

“뭐 딴 거 있어요?”

배가 볼록하니 오동통하고 머리가 벗어진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 3일 연속 같은 남방셔츠에 조끼를 입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땀에 절어 쉰 냄새가 물씬 풍겼다.

“쌍화차 있는데 드릴까요?”

“쌍화차? 그거 좋지.”


할아버지는 보통 커피를 주는데 웬 쌍화차나며 반색하셨다. 갖은 한약재는커녕, 커피 믹스처럼 한 상자에 50개씩 넣어 파는 쌍화차 믹스였고 고작 계피 냄새 풍기는 다디단 설탕물에 불과했다. 그래도 뜨거운 물을 붓자 잘게 썬 대추며 잣 등이 고동색 액체 위로 둥둥 뜨는 게 보기는 그럴싸했다.

“어이구 좋다.”

할아버지가 김이 펄펄 오르는 종이컵을 받아 들고 히쭉 웃었다. 컴컴한 동굴 같은 입 안으로 하나밖에 없는 앞니가 보였다. 바로 그 해 우리 아버지도 별러오던 치과 치료를 받아 앞니를 해 넣었기에 유독 노인의 앞니에 시선이 갔다.


동글동글한 인상에 토끼 같은 앞니 때문에 더 사람 좋게 보였다. 할아버지는 그 후로도 엄마의 요청으로 두 번 더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마당 하수구를 청소해 주면서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부르라고 선선히 말하곤 했다. 올 때마다 엄마와 내가 서로 비밀리에 돈봉투를 찔러 넣어 주는 바람에 짭짤하게 부수입을 올렸다. 그가 방수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는 하루 일당보다 많으면 많았지 모자라지는 않았다.

“또 쌍화차 있으면 줘요.”

그리고 올 때마다 아예 먼저 쌍화차를 달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방수 사장? 명함 없어요?”

할아버지는 방수 사장님과는 달리 전화를 금방 받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거칠고 신경질적인 태도였다. 우리 집이 어딘지 설명하는 것도 한참 걸렸다. 할아버지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방수 사장이 주는 일을 안 한 지 꽤 되었다며,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 거라고 했다.


“죄송한데 휴대폰 번호 좀 알 수 없을까요? 가게 전화를 안 받으시네요.”

그는 귀찮은 듯 구시렁대며 한참 후에야 전화번호를 불러 주었다. 그간 우리 집 일을 할 때 수고비를 매번 챙기며 고마워하던 모습은 온 데 간데없었다. 뭔가 잔뜩 언짢은 일이 있었는지 고슴도치처럼 날이 선 분위기였다.


그의 명함에 적힌 주소를 다시 들여다봤다. 우리 동네에서 큰길 하나 건너편이었다. 대로변 뒤로 들어가면 오래된 빌라가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찬 좁은 골목이 나온다. 문득 공사가 끝나자 다른 일꾼들이 버리고 간 간식 빵까지 다 알뜰하게 가방에 넣어 가던 모습, 심지어 대문 앞에 내놓은 책더미까지 누구 준다고 자전거에 싣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동네에는 노인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알고 보니 내가 사는 구가 서울에서 노인 인구 비율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하철 역 빵집과 카페도 들어서기만 하면 온통 테이블을 점령한 노인들 천지였다. 하지만 희희낙락 여가를 즐기는 노인들보다 길거리에서 힘들게 폐지 리어카를 끌거나 생활정보지를 뭉텅이로 가져가는 노인들이 더 많았다.


어쩌다 밤늦게 거리를 지나다 보면 버스 정류장 벤치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할아버지, 어느 집 대문 앞에 망연히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를 봤다. 어디로 가시냐고, 혹 누구를 기다리시냐고 문득 묻고 싶어 지게 만드는 쓸쓸한 모습의 노년이었다.


그리고 외로움보다 더 도드라지는 건 성마른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저 앞을 지나쳤을 뿐인데 자기 길을 막았다며 역정을 내는 할아버지 때문에 눈이 동그래질 때가 있었다. 고령의 부모님 역시 자주 집에서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감정이 격해지시기에 생전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쌍화차 드세요.”

마트에서 주문한 쌍화차 믹스 한 봉을 끓는 물에 타서 아버지에게 권했다. 평소 당뇨 때문에 믹스 커피도 안 드시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엔 달달하고 뜨거운 쌍화차 한잔도 필요하다.

“이거 참 맛있네.”

곶감, 초콜릿, 양갱, 단것이라면 다 좋아하는 아버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평생 낙천적이고 유순하던 아버지에게서 짜증 내고 신경질 부리는 모습이 많이 나타난 건 모두 노년에 들어서였다. 쇠약해져 가는 몸, 그보다 더 흔들리는 정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불안과 초조가 부모님의 평온을 흐트러트렸다.

무럭무럭 김이 피어오르는 쌍화차를 한 모금 넘겼다. 코 끝에 맴도는 향기로운 계피향과 입안에 퍼지는 강렬한 단맛에 평소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늘 이렇게 뜨겁고 달콤하게, 생의 황혼을 달랠 수 있다면. 쌍화차 한잔으로 그게 가능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