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글 쓰는 일이야
또 변기가 막혔다. 이번 겨울에만 다섯 번도 넘는 것 같다. 불과 며칠 전에도 고생했는데, 또 오물로 가득 찬 변기를 보니 기가 막혔다.
점심을 먹은 후 아버지가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계셨다. 뭔가 수상했지만 일이 바빠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나중에 나오시기는 했는데 뭔가 허둥지둥하시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셨다.
한참 후,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열어보고서 말문이 막혔다. 변기 턱까지 차오른 누런 물이 금세라도 넘칠 것처럼 위태로웠다.
아버지가 사고를 치신 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물을 연신 내리면서 오히려 변기에 배설물이 가득 차게 된 거였다. 그래 놓고 민망스러운지 아버지는 말씀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하긴 아버지가 변기를 막히게 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에는 우리 변기의 배수구가 작아서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다. 사실 변비 때문에 변기가 막히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집의 주범은 주로 아버지였고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연세가 많아지면서 아버지는 병원 출입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성인병 관리 수준이었다가 점점 더 진료과목이 광범위해졌다. 현재 아버지는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역류성 식도염 등 다양한 치료약을 드신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 전후로, 주무시기 전까지 서너 시간 간격으로 하루 종일 복용해야 하는 약들이 수북하다. 그런데 이런 고혈압 혹은 고지혈증 약에 포함된 성분이 변비를 불러오는 것이다.
요즘 동네에는 변기를 뚫어달라고 마땅히 부탁할 곳이 없다. 처음에는 한두 번 해주던 철물점 아저씨는 가게를 닫고 이사를 가면서 아예 본인이 쓰던 ‘전문가용 관통기’를 내게 팔고 갔다. 변기가 자주 막히는 우리 집이 걱정되었는지 여러 번 시범을 보여 주며 잘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런데 가장 추운 1월, 변기가 또 막혀서 드디어 내가 관통기를 잡았다. 냄새 때문에 욕실 창문을 열고 작업을 하자 추위로 온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연신 관통기의 쇠줄을 뺐다 넣었다를 반복하며 구부러진 배수관으로 쑤셔 넣었다.
변의 크기가 너무 클 때는 웬만큼 노력해도 쉽게 분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내 노하우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결국 30분 넘게 끙끙대고서야 변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막힌 오물이 흘러내려갔다.
더러워진 욕실 바닥 청소까지 모두 해치우고 악취를 뒤집어쓴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과연 철물점 아저씨가 이 일을 싫어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버린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그 후에 닥치는 우울감 같은 것이 있다. 뭔가 내가 부모님의 뒤치다꺼리에 소모되는 것 같고 내게 집중해야 할 시간을 뺏기는 것 같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보지만 흐트러진 마음을 쉽게 다잡기 힘들다. 하루 중 이래저래 집안일에 치이는 시간을 빼고 나면 온전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별로 없다. 어떻게든 시간을 쥐어짜 내지 못하는 나의 능력 부족이다.
언뜻 무가치해 보이는 일상사에서 의미를 발견해 내기란 무척 힘들다. 대부분 시간 낭비나 헛수고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럴 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예전에 읽은 일화 한 가지를 떠올려 본다.
설날을 맞아 어떤 원로 시인의 댁에 제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대학 시절에 시인에게서 시를 배웠고 후에 추천을 받아 시인이 됐다. 안부를 나누던 중 제자 하나가 부끄러운 듯 고백했다.
“저는 사실 요새 시를 못 쓰고 있습니다.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그러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회사 다니는 것도 시 쓰는 것이지.”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