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루 홈런을 맞다
나는 원래 스마트 폰을 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요 근래에는 화장실에 갈 때에도 폰을 놓지 않고
수시로 화면을 들여다본다. 심지어 울리지 않은 폰의 소리를 환청으로 들을 때도 있다.
부동산에서 혹시 전화가 올까 봐서다.
한 달 전쯤 1층을 전세로 내놨다. 우리 집은 수십 년 전에 지은 다가구 3층인데 중간의 1층만
세입자가 살고 있다. 현재 세입자는 10년 전에 두 자녀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이제는 모두 장성한
어른이 됐다. 그 기간 동안 집수리를 할 틈이 없었고 이제는 헤어질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다음 달 중순이면 전세 계약 만료일인데 여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집값이 제일 싼 변두리 지역이라 전세금은 1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보러 오는 사람만 많지 정작 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자꾸 허탕을 치자 부동산에서도
질려하는 눈치고, 점점 찾는 사람마저 줄어든다. 일단 계약을 한 후 ‘올수리’를 하려고 하는데 집수리를
안 해서 안 나간다는 식이니 난감하다.
그런 중에 큰 평수를 찾는다는 손님을 부동산에서 데려왔다. 중년 싱글 남자지만 짐이 많아 방이 세 개인
우리 집을 보자마자 첫눈에 마음에 들어 했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있지만 당연히 통과될 것이라
생각해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부동산에서 더 나은 세입자 후보를 데려왔다. 이번에는 대출을 받지 않고 당장 들어올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모자 단 두 식구인 데다 인상도 수더분해 내 마음에도 들었다.
그동안 부동산 계약 같은 큰일은 당연히 엄마의 몫이었다. 중개사에게 내놓는 것도, 전세 가격을 결정하는
것도, 세입자를 상대하는 방식도 모두 엄마가 알아서 하셨다.
그런데 작년부터 엄마의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 급기야 나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기에 이르렀다.
생전 처음으로 부동산 여러 곳에 문의해 시세를 알아보고 중개인이 집을 방문하면 보여줘야 했다.
현재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의 현관을 두드려 내부를 구경시키는 일은 당황스럽고 민망한 경험이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집주인 면전에서 집의 상태를 깎아내리는 방문객들이었다.
자신들의 사생활을 낯선 타인들에게 노출시켜야 하는 것은 현재 세입자이지만, 이 집의 가치를 놓고
난도질을 당하는 것은 집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집을 보여줄 때마다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흥정을
하며 한없이 추락하는 자존심을 맛봤다.
그나마 두 명의 세입자 후보가 모두 계약을 하고 싶어 해 다행이었다. 오히려 양쪽 모두를 저울질하며
처음으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수고해준 부동산 양쪽 중 하나를 실망시켜야 하는 난처한 처지가 됐다.
상황은 며칠 후 급반전됐다. 대출 신청을 넣었던 독신남은 우리 집이 1인 가구 수준에 너무 크다며 거부당했다. 내일이라도 계약을 할 것처럼 굴던 모자 손님은 다음 날 하루 종일 부동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중개사 두 명이 모두 한숨을 쉬었다.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계속되는 부동산과 세입자 후보들과의 밀당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당장 응모하고 싶은 공모전이 있어도 마감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워드 창을 띄워 놓아도, 책을 펼치고 있어도 글자 한 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하니 있는데 휴대폰으로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로그인을 해보니 익숙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보낸 답장이었다. 내용이 뻔히 예상이 돼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두 달 전쯤 접수한 원고 투고를 잘 검토해 보았으나 출판으로 연결되기에는 부족했다, 는 답변이었다. 겨우내 매달렸던 동화 작품집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루 동안 일어났다. 두 번의 안타를 맞은 후 마지막으로 만루 홈런을 맞은 투수가 된 기분이었다. 삼 연속 거절의 피날레는 이렇게 출판사의 답장이 장식하고 말았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