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쓴다
언제부턴가 새벽에 잠이 깨는 날이 많아졌다. 불현듯 눈을 떠보면 새벽 2시, 아직 한밤중이다. 밤에 자려고 누워도 쉽게 잠을 못 이루고, 새벽에 갑자기 눈을 뜨면 그때부터 다시 잠을 청하기 어렵다.
멍하니 눈을 뜨고 어둠을 묵묵히 응시한다. 온 집안이 고요한데 혼자 깨어 있자니 무슨 특별한 존재가 된 것도 같고 기분이 묘하다. 어떤 작가들은 새벽 두세 시에 일어나 글을 쓰면 제일 잘 써진다고 하던데. 하지만 차마 그럴 엄두가 안 나 다시 눈을 감아본다.
드디어 1층 전세가 나갔다. 보러 오는 사람만 많고 안 나가던 집이 전세금을 천만 원 낮추자 하루 만에 계약됐다. 그간 부동산에서 언제 방문할까, 외출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한 달을 생각하면 속이 시원해야 마땅했다.
가격을 내리면 집이 나간다는 건 진리인가 싶었다. 잠시 너무 헐값이 되어버린 전세금 생각에 착잡해졌지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잔금이 들어올 날짜만 기다리며 도배장판 등 집수리만 신경 쓰기로 했다.
“LH 대출인 건 알고 계시죠? 평균 5주 걸립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알고 보니 새 세입자는 LH 주택공사에 전세대금 대출을 받아 우리 집에 들어올 거라고 했다. 지금부터 신청을 하면 서류 심사에 1주, 대출금이 입금되려면 최소 4주가 걸린단다. 한 달 후면 현재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내줘야 하는데.
전세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지금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아 들어오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늘 그런 식으로 전세를 놓아왔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동네에서는 전세를 찾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LH 혹은 SH 대출 신청자란다.
엄마는 크든 적든 현재 전세를 사는 사람이 자기 돈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셨다. 그 배경에는 바로 전세금을 95퍼센트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부동산에서는 오히려 LH 손님을 더 반긴단다. 단 절차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두 달 정도 넉넉히 잡고 진행했어야 했다.
가계약금 100만 원을 받아놓고 1주일이 흐르자 슬슬 걱정이 됐다. 부동산에 연락해 보니 전에는 5주가 걸린다더니 이제는 대기가 밀려 6주, 7주까지 각오하란다. 오히려 나보고 도배장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충고까지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전세금 1억을 내줘야 하는 날이 한 달 남았다. 한 달 내로 1억을 마련해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동산에 일찍 내놨어야 했다. 설사 LH 대출이라는 제도를 알았어도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줄 몰랐다. 그때부터 나의 불면이 시작됐다.
이리저리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 모을 생각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 나이 먹도록 모아놓은 돈이 없어 나이 든 부모님까지 돈 마련에 고심하게 했다.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부모님이 평생 동안 마련한 유일한 집 한 채다. 전세를 주기 시작하면서 항상 집의 3분의 1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부채 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낄 때가 이렇게 전세계약이 만료돼 세입자를 내보낼 때다. 이제 와서 뾰족한 수도 없고 이러지도 못하는 사이 날짜는 하루하루 가고 있다.
정해진 날짜가 있는 것은 공모전도 마찬가지다. 올 초부터 도전할까, 말까를 고민해왔던 공모전은 여러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가 모두 거절당하자 더 절실해졌다. 하지만 머릿속이 돈 걱정으로 사로잡혀 있어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노트북을 켜놓고 이 궁리 저 궁리하고 있다가 무조건 일어나 집을 나섰다. 그대로 집 안에 있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발 밑이 쿵쿵 울리면서 발바닥으로 자극이 전달돼 왔다. 날이 쌀쌀했지만 조금 걷자 몸에 피가 돌면서 훈훈해졌다. 무엇보다 뛰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었다.
다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최대한 남은 기간 동안 무조건 쓰기로 했다. 작품의 질이나 완성도를 떠나 써야만 했다. 그마저도 안 하면 이 비어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