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
난장판 亂場-판
명사 : 여러 사람이 뒤엉켜 함부로 떠들거나 덤벼 뒤죽박죽이 된 곳.
이미 몇 년 전, 내가 학년부장을 하던 때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빨리 학교에 와봐야할 것 같다고 2학년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내심 자랑스러웠다. 내가 가르쳐 올려보낸 학생들이 건전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는구나 하면서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해서 마주한 현실은 대자보가 아닌 전단지였다. 그 때 이미 큰 곤욕을 치뤘고 해당 과정에서 교사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내가 유일하게 울지 않은 졸업식이 이 기수가 졸업할 때였다.
부탁의 글이라 적힌 종이를 다시 받아드니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나며 읽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 때보다도 더 말이 안되는 내용이었기에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파쇄기에 파쇄해버렸다. 모든 진실을 알고 난 지금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기록을 할 수 있다. 학생회의 건의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학생회는 학생들에게 이를 전달을 하는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어버렸다.
공정성이라니, 정말 좋게 표현해서 공정성을 잃었다 라고 하는 것이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봐도 이 학교가 치 떨리게 싫어질 만큼의 표현들만 골라 사용해서 파일로 만들어 정리해 단톡방에 공지라고 업로드했다. 그 파일만 읽을 학생들은 당연히 반발을 했고 모든 불만들이 쏟아져나왔을테다. 주말동안 그 불만은 또 다른 불만을 만들고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걷잡을 수 없는 눈보라가 되었을 것이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온갖 통계의 오류를 다 가지고 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본인들의 탐구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해도 그 조사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문항들을 제작하고 설령 문항을 잘 만들었다고 해도 결과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불만을 한가득 품고 시작한 설문조사가 신뢰구간이 어느 정도 확보될 리가 만무하다. 다트 던지기 하는게 훨씬 더 수학적 확률이 높을 것이라 호언장담한다.
말도 안되는 조사를 하고 그 말도 안되는 문항들을 정리해서 결과를 도출하여 부탁의 글 말미에 적어 자신들의 요구사항들을 적어왔다. 필체 대조를 해보았을 때, 심지어 두 명 이상의 학생회 임원이 작성을 한 글이었다.
난 깨달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라는 말의 명백한 뜻을. 어떠한 문항들인지도 알 수 없으며 모든 결과들이 어쩜 그리도 서로 모순되는지 정말 놀랄 노자였다. 내가 이런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질 지경이랄까.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었다. 학생부에서 어느 정도 해결을 할 것이고 그렇게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한 건 나의 오만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학교가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월요일은 수업이 2,3교시 뿐인 날이었고 이미 2명의 상담이 예정되어있는 날이었다. 가장 오래 기다려왔던 학생들의 상담이었기에 철저한 준비를 마친 만반의 상태였다. 나도 학생도. 우린 언제 상담을 할 지까지 각각 다 정해두었다. 학생부장님이 오시더니 오늘 저녁에 최종 관리자=교장선생님께서 토론의 장을 대강당에 만들어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다고 하셨다. 응? 무슨 이야기일까? 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의 야간수업을 준비하고 월요일의 아주아주 중요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눈 코 뜰새없이 바쁘고 학교 단톡방에는 학생부장님께서 공지를 올렸다. 오늘 전자기기 사용과 관련하여 교장 선생님께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마련하셨습니다. 관심 있는 학생과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학생은 대강당으로 오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합니다. 식의 내용이었다.
이 공지가 올라오고서 상담이 예정되어있는 우리 반 남학생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우리의 상담은 어떻게 되냐는 것이었다. 본인은 여기에 참석하지 않는데, 선생님께서는 참석하시지 않으실까 하셔서 연락을 했다고 했다. 이 연락을 받았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 역시 별로 참석할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상담을 강행하고자 했으나 가봐야하지는 않을까하는 학년부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일단 끝나는 대로 상담을 진행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살펴보니 3학년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석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난 최종 관리자가 학생들을 모아 이런 장을 만든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고 심지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코로나 때,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귀가 문제와 관련해서 이런 토론의 장을 만든 적이 있다. 그 때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정신이 올바로 박힌 상태였기 때문에 토론이 진행이 되었고 이상한 말은 한 우리 반 학생이 전체적으로 이상해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정상적인 결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변화했다.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학생이 이 곳에는 없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모두 모아서 토론을 해보자는 가정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지면 결국 뒷수습은 담임의 몫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교감 선생님께서 메신저를 보내셨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몇 시에 대강당에서 이런 일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선생님들께서도 참석하셔서 의견 제시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보통 교사라면 어떨까? 아니 보통 교사라는 가정조차 삭제해버리자. 내가 이런 메신저를 받은 조직의 구성원이고 나의 학생들이 저 곳에 모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곳에 가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 아이들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변화했을까? 아니였다. 교사도 변화했다. 아이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관리자가 메신저까지 보냈다면 아무리 관심 있으신 선생님 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한들, 담임 교사라면 당연히 참석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꼰대라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이 생각이 꼰대여도 내가 꼰대가 맞고, 그 반 학생들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오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이 일이 남 일인 것이지. 강 건너 불 구경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불 구경조차 하지 않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이런 생각인 것이다.
특히, 1학년 담임쌤들은 1학년들이 그 곳에 모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퇴근을 했다. 1학년 학생들은 전자기기의 사용으로부터 대단히 자유로운 것인가? 그럴리가 만무하다. 기분이 더욱 상한 건 이 뒤에 벌어진 일들 이후로 생각할수록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전자기기 사용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학생부장님이 마이크를 잡고서 기숙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셨다. 갑자기 이 이야기는 왜 나오지 했는데 학생들이 이제와서 기숙사 관련해서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정말 물타기도 이런 물타기가 없다. 작년에 내가 학생부장을 할 때 이미 모두 공지하였고 끝난 이야기인데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얘들은 자신들의 무지함을 이런 식으로 뽐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인지 박수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 다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최종 관리자가 마이크를 이어 받았는데, 명불허전이다. 자신은 기숙사 관련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는 말로 시작을 했다. 학생부장 깔아뭉개기 1인자 답게끔 자신은 좋은 할아버지인 마냥 항상 모든 것이 바뀔 때는 여러분에게 충분한 의견을 구하고 진행을 하니 걱정을 하지 말아라 등 작년에 내가 당했던 패턴의 반복이었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 우리의 조상은 대단히도 똑똑하셨고 옳은 말만 하셨다는 걸 몸소 느낍니다.
인트로가 끝나고나서 지금부터 계급장을 떼고 말을 하자며 말도 안되는 60년대 군대식 화법이 이어진다.
아이들은 계급장이 뭔지도 모른다. 의견이 있다면 무엇이든 다 들어줄테니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갑자기 한 명이 손을 든다. 고3 학생이다. 이 학생의 학교 생활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우리 선생님들은 모두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발언권이라는 것도 모르고 토론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토론을 맡겨놓으니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친구가 손을 드니 서로 박수를 치고 오~하면서 호응을 해주고 그 학생은 자기가 뭐라도 된 것 마냥 으쓱해져서는 미리 써온 대본을 들고서 따지듯이 말 끝마다 맞죠?를 외치면서 자신이 변호사가 된 것마냥 취조를 하고 있다. 최종 관리자는 당황하여 일단 대화를 통해서 답변을 해주지만 아이들은 곳곳에서 야유도 한다. 기가 막힌다. 나는 토론회장에 와있는 것인가, 야유회장에 와있는것인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숨이 막혀오고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정말 이 미친 짓을 계속 해나가야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만 든다.
최종 관리자는 간간히 담임 교사 탓을 한다. 담임들이 반에 들어가서 각자 상이하게 전달을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가 만들어졌다라고 말을 한다. 담임들이 원죄를 가지게 되는 이유다. 원죄가 없더라도 이렇게 누명이 씌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상이하게 전달을 했을까? 우리는 각 반에 들어가기 전에 모여서 회의라는 걸 하지 않는 무뇌들인가?
고등교육을 마쳤고 심지어 더 높은 교육을 받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별하며 살아온 교사들이 본인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논리가 나는 정말이지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교사의 신뢰와 교권은 본인이 추락을 시키면서 도대체 이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가정교육이다.
아이들은 공정성과 당당함을 잘못 배워왔다. 자신의 할 말을 다 하는 것이 공정하고 당당한 것이라 배워왔다. 누구에게? 부모님에게.
어떻게 자기 할 말을 다하는 것이 공정하고 당당한 것인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할 말을 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지. 아무 말이나 다 하고 싶다고 내뱉는게 공정한 것이 아니다. 무례함을 당당함이라 배워와서는, 아주 본인이 자랑스럽다는 듯 서 있는 애들을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거기다가 차별에 대해서는 얼마나 민감한가. 그런데 공정을 잘못 배웠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차별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너네가 생각하는 공정이 무엇이니? 나는 열심히 노력한 만큼 대우 받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것이 공정한 세상이라 생각한다. 너네처럼 노력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얻고자 하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욕심이다. 징징거리기만 하고 있는 것이 어찌 공정인가. 자기들이 공정하다는 착각, 당당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지도 않고 그저 좋다고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심해서 말도 안 나온다.
금쪽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이곳에 와보면 두 눈으로 확인이 바로 가능한데. 뭐하러 그런 것을 보는 것인가.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이 부모들의 잘못이다. 원인은 부모에게 있다.
콩콩팥팥, 내가 절대적으로 믿는 사자성어다. 아이가 이상하다면 부모는 반드시 이상하다. 부모가 이상하지만 아이는 정상적일 수 있다. 대게 그러한 경우는 아이가 힘든 상황 속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전자기기 사용을 어떻게 하고 있고 이 아이들이 지금 이 대강당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려주고 두 눈으로 봐야한다. 하지만 아마 보고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아이가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지를. 우리 아이 말 잘한다 하면서 박수를 칠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냥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잘못 되었다는 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온 몸을 지배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두렵고 무서워서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난 상처를 너무 잘 받는 사람이라 상처를 마주했을 때,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과거에는.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면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견뎌내지고 있는 것이지 나의 본성과 내면이 단단해진 것은 결코 아니란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내가 나가고부터 벌어진 일들은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그 안에서의 일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라서 교사의 근간을 뒤흔들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