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破壞)

학부모로 인한 기능 상실

by 낭만방정식

1. 때려 부수거나 깨뜨려 헐어 버림.

2. 조직, 질서, 관계 따위를 와해하거나 무너뜨림.

3. 재료 또는 소자가 충격을 받아 부서지거나 기능을 잃게 되는 것.


난 자부심이 있는 교사였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할 만큼 학부모님과의 통화를 통해서 많은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아직은 너무 좋아서 공교육의 현장에 남아있고 싶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사람.

그런 말이 부정을 탄 것일까. 아니면 나의 오만방자함을 꾸짖는 것이었을까.


최종 관리자를 향한 민원 전화

그건 거기서 종결되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학년 부장을 불러 전화번호 하나를 넘겼고 우리 반 학부모님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으로 기초 조사 자료를 검색하고 있던 와중에, 바로 눈에 띄어버린 숫자들.

이상하게도 나의 반 학부모일 것 같다며 웃었던 옆 반 선생님의 얼굴에 웃음도 사라진 뒤였다.


무엇이 그리도 학부모를 언짢게 만들었을까.

나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었고 나도 몇 번이고 분개했지만 참았던 부분이었다.

일단 학생을 불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했다. 하지만 학생은 자신의 부모에게 한 이야기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로 흥분을 한 것이냐 물었음에도 그건 아니지만 별 일이 아니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모른다는 아이에게 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의 태도와 다른 사람 앞에서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야할 지 모르겠고 그런 이야기들로 너무나 혼란스럽던 나였다.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감쌌다.

'과연 내가 이런 이야기를 이 학생에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그저 잔소리일 뿐이고 듣기 싫은 이야기일 뿐인데 뒤에 가서 내 욕이나 하겠지.'

과연 교사가 이런 생각을 하는게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자. 하다가도 이런 생각이 차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똑같이 이 이야기를 학부모에게 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아무래도 그 이후부터 부모에게 난리를 친 듯하다.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난 나의 부장에게 보고를 한 다음,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부.

이미 전화를 받을 때부터 목소리가 경직되어있었고 세상 모든 날카로움을 다 가지고 있는 말에 베일 뻔 했다.

나 또한 굉장히 딱딱한 채로 첫 마디가 나갔다. 거기서부터 이 대화는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학부의 방어기제가 튀어나오면서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난 얼마 전, 엄마가 과거에 쓰던 갤럭시 폰으로 학교 폰을 교체했다. 따라서 자동 녹음이 되는 폰으로 전화를 했다. 이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무언가 증거로 남기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나의 이 감정을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녹음본을 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뜸 이야기는 왜 자신의 아이를 싫어하냐는 것이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싫어하세요?"

난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보았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직설적으로 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빙빙 돌려서 이야기를 하는 성향이라 정확하게 팩트만 이야기해야 알아듣는다는 조언을 수천 번 들었던 나인데, 정말 혼란스럽기가 그지 없었다.


거기다가 인터넷에 꼰대를 검색하면 나오는 모든 멘트가 쏟아져나왔다.

나보다 인생을 살아도 더 많이 살았다느니,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라느니

그렇구나. 인생을 많이 살면 무조건 아는 것이 더 많고 부모의 마음이란 세상 그 어느 마음과도 비할 바가 못되니 모든 모순들 마저도 참으로 만들어버리는 0과도 같은 힘을 가졌구나.


어느 순간 내가 개인적으로 올리는 모든 공간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가고 나의 성향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 내가 무슨 성향인지 되묻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질문은 몇 개고 해도 된다며 이야기 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난색이 짙어졌다.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난 교무실에서 벗어나 빈 교실로 향했다. 그러면서 나의 교육관의 근간이 뒤흔들렸다.

고작 이 학부 한 명으로 인해 내 교육관 전체가 흔들리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슬프고 짜증이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렸다. 그 때마저도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던 학부의 말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난 정말 자부심을 가지고 교직 생활을 해왔고 해오고 있는데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하는지 너무나도 억울했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 나오는 조인성 배우처럼 울기 시작했다.


나는 충격을 받아 멘탈이 모두 부서지고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기능마저 모두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이야기는 한 시간 가량 지속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중에는 예뻐해달라고 한다.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 모든 말투와 억양은 한껏 나를 비아냥 거리고 나를 아랫 사람 대하듯이 했다.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학부모님들과의 관계를 모두 깨부셔버렸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분풀이를 듣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하겠다.

부장님과 다른 선생님이 나를 찾으러 왔다. 복도에서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오셨다고 했다.

꺼이 꺼이 서럽게 울어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마음 아파하셨다.

이런 동료분들이 나의 곁에 있어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임을, 마음이 놓이면서 더욱 목놓아 울었다.


파괴되어가는 나를 어떻게라도 붙잡고 싶어서 나는 계속 되뇌었다.

"이 학생은 1명이다. 이런 학부모는 1명이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고 그렇지 않은 학부모님들이 더 많다. 잊지 말자. 이 한 명 때문에 내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지 말자.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그럼 그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네가 무시하는 것이다."


퉁퉁 부어버린 눈 나에게 남은 수업 세 시간

어떻게 해야할 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수업은 해야하기에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인공눈물을 건네던 아이들.

그리고 당연히 상담을 하고 이번에도 또 애들 이야기에 공감해서 우셨구나 하고 말하던 아이들.

이렇게 정말 다수의 아이들이 내 곁에 있다.

파괴되는 와중에도 내 정신을 붙들고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이유다.


상담까지 끝마치고 퇴근하는 길.

집에서 나를 마주하게 될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이런 일을 몰랐으면 한다. 하지만 날 보자마자 울었느냐 묻는다. 피곤해서 눈이 좀 부었다고 땀이 많이 나서 하도 닦다보니 눈 밑이 이렇게 벌개졌다고 둘러댔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아무 말 없이 팩 하나를 내 얼굴에 얹고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또 흘렀다.

나도 누군가의 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통화 후 수업을 하고 상담을 하는 동안 불현듯 떠오르던 학부의 말들.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극복할 것이다. 나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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