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를 읽고

by 리하

1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 문득 답답함이 밀려와 당장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열어 이전에 여행지에서 썼던 글을 하나씩 꺼내어 보았다. 이때의 난 이런 생각을 했구나...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진과 영상들 그리고 그 순간의 기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여행을 다녀온 기억으로 매일을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역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인가보다. 여행지에서는 즐거운 일만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일상을 떠나 느낀 새로움과 소소한 기쁨, 그리고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들은 여행하며 생긴 어려움까지 다 덮어주는 것 같다. 어려움도 미화할 수 있는 건 일상이 아닌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참 부러웠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직접 그려 자신만의 여행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진으로 장면은 남길 수 있지만, 그림에는 그곳에서 받은 인상도 함께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마음에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메모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미래의 나를 위해 일단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말미에 작가가 가끔 지하철 안에서 올라프스피외르뒤르라는 이름의 작은 주머니를 꺼내본다는 언급이 나온다. 여행의 추억을 꺼내먹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니. 내가 출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도 저마다 각각 힘들 때 꺼내 먹을 여행 보따리를 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오랜만에 꺼내 본 나의 여행 주머니는 동이 나 있어, 다시 채울 때가 된 것 같다. 이번에는 무엇보다 여유를 가득 담아 오고 싶다. 계속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은 저 멀리 낯선 나라에 두고, 그냥 나로서 존재해도 된다는 마음을 배워 오고 싶다. 이렇게 만든 추억 조각들로 또 몇 년은 버틸 수 있겠지. 떠날 곳을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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