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에 대하여
휘황찬란한 별마당 도서관을 배경으로,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20분 동안 카페의 빈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간신히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채였다. 새로 산 옷으로 가득 찬 쇼핑백은 바닥에 늘어놓았다. 우리 맞은편에 앉은 커플은 쿠키를 잘라서 먹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태권도 시범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별마당 도서관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지으며 사진을 찍어 댄다. 친구에게 말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수백 명이 동시에 떠드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그래도 꿋꿋하게 일어나, 줄 서서 베이글도 사고 옷 입어보며 쇼핑도 한다. 베이글과 크림치즈로 가득 찬 쇼핑백을 들고, 몰을 휘젓고 다닌다. 사람들은 나를, 아니 내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쳐다본다. 8,500원짜리 베이글을 잔뜩 산 나는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해진다. 가챠샵에 들러 요새 유행한다는 뽑기도 해 본다. 반짝반짝 빛을 내는 뽑기 통에서, 내가 원하던 캡슐이 나온 그 순간, 도파민이 돈다. 기분이 좋아질수록 지갑에서 카드가 쉽게 나온다. 손목 위 쇼핑백 줄은 점점 선명해진다.
몰에 다녀와서 항상 하는 일이 있다. 방바닥에 쇼핑백을 주르륵 내려놓는다. 구입한 물건을 하나씩 꺼내어 살펴본다. 다시 입어보니 묘하게 안 어울리는 것 같은 옷, 캐릭터에 관심도 없는데 뽑은 키링들. 내 방은 물건으로 더 채워졌는데, 마음은 공허하다. 분위기를 타서 과소비를 했구나 후회한다. 매장의 화려한 조명과 커다란 공간은 모두 사라지고 방 안에 나 홀로 남는다. 오늘따라 집은 유독 작게만 느껴진다. 다음에는 합리적인 소비를 할 것이라 다짐하며, 침대에 누워 간신히 핸드폰을 확인한다. ‘이번에 더현대에서 팝업한대. 가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몰을 방문한다. 사람들이 특히 대형 쇼핑몰을 좋아하는 이유는 몰이 ‘복합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공간에서 식사, 테마별 쇼핑, 오락까지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대형 몰은 전국의 유명한 음식점, 핫한 디저트,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팝업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며 조금이라도 사람들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애쓴다. 날씨도 몰을 막지 못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양이 작열하는 날에도 몰은 굳건히 그 자리에 서서 우리를 반긴다. 에어컨을 파워 냉방으로 틀고서.
4층이 넘는 뻥 뚫린 천장을 보면서 마음껏 공간감을 즐긴다. 나 혼자서는 가질 수 없는 거대한 공간. 소음과 조명을 견디며, 약간의 돈으로 이 공간을 사람들과 나누어 가진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언제든 조용히 묻혀버릴 수 있다는 묘한 해방감도 함께다. 주말 평균 십만 명이 방문한다는 몰 안에 서서, 나는 개인이 아니라 ‘쇼핑객 십만 명 중 한 명’이 된다. 약간의 돈으로 친절함을 마음껏 누리며 ‘이 정도의 소비는 할 수 있는 사람’과 ‘트렌드에 민감한 MZ’라는 타이틀을 한 번에 달 수 있는 곳. 몰은 이토록 완벽하다.
두 잔째 마시는 커피는 바닥나 가고, 태권도 기합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머리는 핑핑 돌고,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는 주황빛 조명 탓에 어지럽다.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 간신히 입을 떼어 친구에게 말한다. “이제 집에 가자.” 그리고 내게 남은 건 –32000, -24000, -57800, -19000 총합 132,800원. 내가 절대 소유할 수 없는 그 공간을 5시간 동안 빌린 대가.